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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접근하고 정의하는 방법

이제 게임을 시작해볼까요

첫 미팅을 가면 말을 꺼내기가 참 조심스럽습니다. 특히 첫마디가 그렇습니다. 첫마디를 어떻게 꺼내느냐에 다라 결과가 달라지거든요. 어색한 분위기를 걷어내면서 일 얘기를 꺼내야 하니 준비가 많이 필요합니다. 상대방과의 신뢰도 쌓아야 하고 다음 약속도 이끌어내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짧습니다. 체감상 첫 미팅은 통상의 그것에 비해 곱절은 부담스럽습니다.


부담스러운 이유는 또 있습니다. 아마 이게 주된 이유일 겁니다. 첫 미팅에서 대강이나마 문제를 정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팅에 들어가면 접하는 모든 정보와 순간이 분석대상이 되며 추론의 재료가 됩니다. 말 그대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임합니다. 첫 미팅에서 100%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방향성이라도 설정해 두어야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간이 제일 귀하지 않습니까. 


그럼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고 정의해야 할까요. 이번엔 그 얘길 해보겠습니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면 뜬구름만 잡게 된다


The number one most important skill for a Data Scientist above any technical expertise — [is] the ability to clearly evaluate and define a problem.
데이터 분석가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은 문제를 정확히 평가하고 정의하는 능력이다 - Cameron Warren -


문제는 다양하게 발생합니다. 장기적인 방향성을 잘못 설정해도 생기고 운영상 미숙으로 효율이 떨어져도 생깁니다. 일시적으로 자금줄이 마르거나 조직 구성원들의 마음이 맞지 않아도 생깁니다. 관련법령이 바뀌거나 시장이 흔들리는 경우, 기술의 진화에 뒤떨어지거나 윤리적 문제 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유형의 문제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상호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정의는 이렇게 얽히고설킨 문제 상황을 분명히 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문제 해결의 첫 단계죠.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해결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기까진 누구나 쉽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문제정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이죠. 하지만 우린 이 중요한 기술을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배워본 적이 없으니 막상 필드에서 부딪치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속한 분야나 관점에 따라 문제정의의 양상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어려움을 더합니다. 비즈니스나 관리 관점에서 문제정의는 바람직한 상태(혹은 바라는 상태)와 현재 상태의 차이를 식별하고 명확히 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공학에서 문제정의는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나 도전을 명확히 하는 과정이죠. 사회과학에서 문제정의는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그 구성 요소를 분석하며,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교육에서 문제정의는 학습자가 당면한 과제나 상황을 살펴보고, 학습을 위해 방해요소를 제거하거나 보강해야 할 요소를 파악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큰 틀에선 비슷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보니 어떤 방법론을 적용해야 할지 긴가민가합니다.


우리에겐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하지만 정돈된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문제해결이란 큰 틀에서 작동하는 기술이니 분야와 관점을 막론하고 한 번 겹쳐볼까요. 중요한 요소들은 대부분 겹칠 테니 문제정의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요소들이 보일 겁니다. 분야 특수성까지 망라한 문제정의 기술이라면 분야나 관점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종합적이며 체계적이며 정돈된 접근법을 연구해보자


우선 문제가 되는 상황(혹은 현재 상태)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 들어가야 할 것 같군요. 여기엔 주변과 환경 조건에 대한 기술까지 포함합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조건과 흐름, 주변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 불편함 혹은 부족함을 인지한 시점, 그리고 인지된 부족함이 끼치는 영향 등을 담아야 합니다. 투머치하다 싶어도 써주세요. 마치 실험실에서 기압과 온도, 습도를 기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구체적이고 상세할수록 전반적인 상황파악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제삼자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작성하는 게 좋습니다. 


조직이나 개인이 바라는 이상적인 상황(혹은 목표나 과제)도 명확히 써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명기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에 개봉작의 관객 평점 +0.5점을 달성하고자 한다'나 '새로운 배터리셀의 전력효율을 5% 향상시킨다'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가 설정되면, 이를 중심으로 현 상황과의 격차를 측정하고 접근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모호하면 방향성이 흔들리기 쉬운 만큼 수치로 표현해 주는 게 편합니다.


아울러 성공 여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도 미리 정해두면 좋습니다. 이 단계는 결과를 평가할 지표나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입니다. 앞서 관객 평점 +0.5점이 목표라면, 어느 시점에서 어느 채널의 집계를 기준으로 할지 정해주는 것입니다. 이를 달성하면 분석을 포함한 일련의 접근법이 성공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공 기준은 조직의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 분석의 역할 혹은 기여도를 인정받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동원 가능한 데이터도 써둡니다. 여기엔 데이터의 수집 채널, 품질 여부를 포함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변수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학습 프로그램 참가자 만족도 향상을 위한 분석이 필요하다면 성별이나 연령대 같은 변수보다는 프로그램 접속 시간대, 지속 시간, 접속 빈도, 요청사항이나 후기 등의 변수가 더 효과적일 수 있거든요.  이런 정리 과정은 데이터 수집에 드는 비용이나 기술적 한계, 규제 사항과 같은 제약조건을 자연스럽게 점검하게 만들고 분석에 필요한 시간, 예산, 인력 등을 계산할 수 있게 합니다.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대안을 찾도록 도와줍니다.


이제 문제를 한 번 기술해 볼까요. 아래 간단한 예시를 통해 한 번 살펴보죠.

문제는 써보는 게 중요합니다. 정말이예요.

예시: 스마트폰 북미시장 점유율 감소


Step 1. 현재 상황과 상세 배경

   지난 3개월간 우리의 스마트폰 북미시장 점유율은 평균 10.7%로, 6개월(11.3%), 12개월(11.9%), 24개월(13.1%) 전에 비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북미시장이 3% 내외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점유율 감소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매출과 순이익 역시 하락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조만간 점유율 10%마저 깨지는 게 아니냐 하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 이탈 고객집단의 주요 특징이나 패턴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부족한 상황이다. 마케팅 부서를 비롯한 관련 부서에서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Step 2. 목표와 평가기준

   조직의 목표는 북미시장 점유율을 6개월 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분석은 점유율 하락이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다각도로 평가하고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도출된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필요한 장단기적 조치(신제품 출시 및 라인업 개편, 광고 전략 수정, 맞춤형 프로모션 등)를 진행하고, 그 효과를 시장 점유율로 평가할 예정이다. 12개월 이내 북미시장 점유율 11.3% 탈환시 성공으로 간주한다. 


Step 3. 가용 데이터 및 제약조건

   내부적으로는 구매 및 수리이력, 성별, 나이, 공홈 접속 빈도, 고객 서비스 요청 내역 등의 데이터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외부적으로는 SNS 반응, 미디어 반응조사 등도 활용 가능하다. 마케팅 부서와 협업하여 시장 지표 및 경쟁사 전략 분석 결과, 이탈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데이터도 수집할 예정이다. 시계열 분석을 우선하되 분석이 가능한 데이터와 그렇지 않은 데이터는 구분해서 진행한다. 수집 데이터의 품질은 전반적으로 양호하지만, 일부 데이터의 경우 누락된 부분이 있어 활용에 주의가 요구된다. 분석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3개월이며, 분석인원은 3명으로 구성된다. 시간과 비용의 문제로 외부 컨설팅 고용은 어렵다.


비록 간단하게 구성해 본 예시지만 결과가 궁금하네요. 과연 점유율 반등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문제를 제대로 기술하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문제를 제대로, 상세히 기술하는 작업은 세 가지의 목적을 가집니다. 첫째, 문제의 정확한 범위와 경계를 설정합니다. 이를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해 동원되는 자원을 적절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합니다. 둘째,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명확히 표현합니다. 이는 드러난 증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셋째, 문제가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문제 해결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하나 유념하셔야 할 부분은 조직의 목표와 분석의 목표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직의 목표는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맞이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태를 말하죠. 대부분 드러난 현상의 반대입니다. 위의 예시도 그렇습니다. 분석의 목표가 시장 점유율 확보가 되면 분석결과 역시 판매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틀어질 여지가 생깁니다.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거나 문제와 무관한 해결책을 제시하게 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소비자의 취향과 동떨어진 광고 콘셉트나 불친절한 수리정책이 문제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분석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문제 해결을 위한 현 상황의 재구성입니다. 들여다보기 전까진 아무것도 속단할 수 없습니다.


사소하지만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고객 서비스가 나쁘다'보다 '지난 분기 동안 고객 불만 접수가 30% 증가했으며, 이는 주로 배송 지연과 관련이 있다'처럼 구체적인 데이터와 관찰 결과를 포함시켜 주는 식이죠.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데이터라는 도구로 문제에 접근하는 만큼, 사용하는 용어에서도 효율성을 더해주는 게 좋습니다.


외부 관계자로 분석에 임하는 입장이라면 내부 상황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길 권합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건 한계가 분명하거든요. 물어볼수록 배경과 흐름이 선명해집니다. 내부 관계자라면 자세한 수치나 관련 자료를 미리 확보해두는 것 만으로도 협업이 원활해집니다. 어차피 해야할 일이다 생각하면 마음은 편해집니다. 


이제 게임을 시작해볼까요. 아니 어쩌면 벌써 시작된 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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