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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역사상 가장 외로웠던 여성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

by 엘아라
Pilo_Swedish_Queen_Consort.jpg 소피아 마그달레나, 덴마크의 공주,스웨덴의 왕비


스웨덴의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는 덴마크의 공주로 태어났으며 전통적인 적국이었던 스웨덴의 왕비가 됩니다. 덴마크는 스웨덴과 사이가 자주 나빴기에 소피아 마그달레나 역시 덴마크 공주로 스웨덴 궁정에서 사는 것은 그리 녹녹치 않았습니다.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스웨덴의 왕위계승자였던 구스타프와 결혼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의회의 주도로 이뤄진 결혼이었기에 소피아 마그달레나의 시어머니였던 로비사 울리카는 크게 반발했으며 며느리에게 절대 호의적으로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800px-Luise_Ulrike_von_Preu%C3%9Fen_-_Queen_of_Sweden.jpg 로비사 울리카 왕비, 소피아 마그달레나의 시어머니


게다가 소피아 마그달레나의 남편이이자 후에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3세가 되는 구스타프 역시 아내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내는 물론 여성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었는데 이때문에 궁정에서는 그가 "동성연애자"라는 소문이 파다했었습니다. 구스타프는 의례적으로 아내를 대했으며 부부는 의례적인 상황에서만 함께했었죠.


Gustavo-III%2C-Rey-de-Suecia_1777-by-Roslin.JPG 구스타프 3세, 소피아 마그달레나의 남편


소피아 마그달레나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아마도 아들들이 태어나는 시기였을 것입니다. 남편 역시 그녀와 자주 함께 머물렀으며 이때문에 아이들이 태어났었죠. 하지만 이 상황은 소피아 마그달레나에게 치욕적 상황에 직면하게 만듭니다. "동성연애자"로 알려졌던 구스타프 3세에게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서 소문이 돌자, 정치적 문제로 아들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던 모후 로비사 울리카 왕비가 공식적으로 소피아 마그달레나의 아들이 국왕의 아들인지에 대해 조사를 하게 했었죠.


국왕이 자신의 아들로 인정한 아이를 모후가 다시 조사하게 한것은 국왕과 왕비 모두에게 치욕적 일이었으며 실상 역시 국왕 부부의 사생활을 들춰낸것이었기에 역시 치욕적 상황이었습니다. 구스타프 3세와 소피아 마그달레나 모두 로비사 울리카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구스타프 3세는 죽기전에서야 어머니를 만나서 용서를 했지만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시어머니와 다시는 말하지 않게다고 맹세했으며 이를 지켰었죠.


Gustavs_III_of_sweden_family.jpg 소피아 마그달레나와 구스타프 3세, 그리고 아들인 구스타프 아돌프


행복도 잠시,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남편과 다시 떨어져 살았으며 그녀의 남편은 곧 암살당합니다. 어린 아들이 국왕이 되었을때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정치적행동은 하지 않고 아들을 키우는데만 집중했었죠.


아들이 자라서 결혼했을때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시어머니와 달리 며느리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했었습니다.


G_IV_A.jpg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프레데리카 왕비


하지만 소피아 마그달레나의 아들인 구스타프 4세 아돌프는 귀족들과 마찰을 빚었으며 결국 왕위를 뺏기고 추방당하게 됩니다. 아들 부부와 손자손녀들은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처가인 바덴 대공가로 떠났었죠.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아들을 따라가지 않고 스웨덴 궁정에 남았습니다. 아마도 아들이나 손자를 위해 할 일이 있었을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소피아 마그달레나의 시동생인 칼 13세에게는 후계자가 없었기에 후계자를 선출해야했습니다.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손자인 구스타프가 왕위계승자가 되길 바랬을수도 있었지만 스웨덴 귀족들은 더이상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연결되길 거부합니다. 결국 칼 13세의 후계자로는 프랑스의 장군이었던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가 오게 됩니다.


800px-Charles_XIV_John_as_Crown_Prince_of_Sweden_-_Fran%C3%A7ois_G%C3%A9rard.jpg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 후에 스웨덴의 칼 14세 요한, 스웨덴 왕태자로 스웨덴 군복을 입은 모습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베르나도트의 아내였던 데지레 클라리에게 호의적으로 대했던 몇안되는 인물중 하나였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궁정은 소피아 마그달레나의 동서이자 칼 13세의 왕비였던 헤드빅 샤를로트 엘리자벳 왕비가 주도했는데 왕비는 프랑스 양식을 고집하고 프랑스 사람들에게 둘러쌓여있던 데지레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었고 이때문에 궁정 역시 새 왕태자비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었죠.


Dezyderia_Bernadotte.jpeg 데지레 클라리, 후에 스웨덴의 데시데리아 왕비, 스웨덴 궁정 예복을 입은 모습


하지만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베르나도트 가문이 자리잡는 스웨덴 궁정에서 역시 소외 당하게 됩니다. 그녀가 자신의 아들이나 손자에게 궁정의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는 의심을 받았었죠. 그녀는 아들이나 손자에게 편지를 쓰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는데, 베르나도트와 친분이 있었던 마담 드 스탈이 스웨덴을 방문했을때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가 그녀의 책을 다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라면서 왕비에 대해서 호의적이 되었죠. 그리고 마담 드 스탈의 중재로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손자와 연락하는 것을 허락받을수 있었습니다. 물론 편지는 사전에 검열당했지만 말입니다.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궁정에서 점점더 소외당했고 건강도 악화되죠. 그리고 아들이 쫓겨나고 4년쯤 지난뒤인 1813년 사망했습니다.


Sophia_Magdalene_of_Sweden_c_1792_by_Niclas_Lafrensen.jpg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


전통적으로 스웨덴 궁정은 덴마크 공주들에게 힘든 곳이었으며 소피아 마그달레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암살당했고 아들과 손자는 쫓겨났었죠. 그리고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아들과 손자의 지위를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것을 맥없이 지켜봐야만 했었습니다.


옛 왕가의 사람으로 특히나 전국왕과 왕위계승요구자의 어머니로 궁정에서 살아야했던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아마도 스웨덴 역사상 가장 외로웠던 삶을 살았던 사람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https://youtu.be/4AZ-1RHgB0s

"구스타프3세의 결혼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될수 있는 스웨덴 드라마에서 소피아 마그달레나 역할을 맡은 배우, 그녀는 실제로 덴마크 출신이라서 리얼리티를 더 살렸다고 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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