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리네 폰 홀른슈타인(1815-1859)
후에 홀른슈타인 백작부인 카롤리네로 알려지게 되는 카롤리네 막시밀리아나 마리아 폰 슈피어링 Caroline Maximiliana Maria Freiin von Spiering은 1815년 슈피어링 남작인 카를 테오도르 폰 슈피어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829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카롤리네의 어머니는 딸을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려 합니다. 카롤리네가 15살이었던 1831년 카롤리네는 자신보다 19살이나 많던 호른슈타인 백작인 카를 테오도르 폰 호른슈타인과 결혼합니다. 호른슈타인 백작 가문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7세와 그의 정부였던 호른슈타인 백작부인의 후손으로 계승권이 없는 비텔스바흐 가문의 방계 가문중 하나였었습니다. 카롤리네는 호른슈타인 백작과의 사이에서 두명의 아들을 낳습니다만 지위와 재산때문에 한 결혼이었기에 결혼 생활을 그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결혼후 카롤리네는 궁정을 출입할수 있게 되었으며, 카롤리네의 미모에 대해서 바이에른 궁정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833년 국왕 루드비히 1세는 카롤리네를 만났으며 아름다운 카롤리네를 본 루드비히 1세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서 자신의 미인갤러리에 넣어두게 됩니다.
비텔스바흐 가문의 방계 가문 출신이었기에 호른슈타인 가문은 바이에른 궁정에서 높은 지위를 얻고 있었는데, 카롤리네의 두 아들들은 루드비히 1세의 손자들이자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들인 루드비히와 오토의 놀이친구였다고 합니다.
결혼후 수많은 파티에 참석하면서 살았던 카롤리네는 파티에서 한 사람을 알게 됩니다. 바이에른 근위대 장교였던 빌헬름 폰 퀸스베르크 남작이었죠. 그 역시 유부남이었는데 둘은 비밀리에 연애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퀸스베르크 남작의 아내가 죽자 카롤리네는 남편을 떠나 퀸스베르크 남작과 함께 동거를 시작합니다. 이 사건은 큰 스캔들로 퀸스베르크 남작은 근위대에서 쫓겨났으며, 카롤리네의 남편은 아내의 이혼요구를 거부했고 대신 그녀가 다른 남자와 사는 것을 묵인해줬었습니다.
후에 카롤리네는 남편이 죽은뒤 퀸스베르크 남작과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