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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Dec 09. 2016

님펜부르크 미인갤러리의 인물들(29)

마리 폰 프로이센(1825–1889)

마리 폰 프로이센, 1843,슈틸러


후에 바이에른의 왕비가 되는 마리 폰 프로이센 Marie von Preußen (1825–1889)은 1825년 프로이센의 빌헬름 왕자와 그의 부인인 헤센-홈부르크의 마리아 안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였으며, 백부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였습니다. 어머니인 헤센-홈부르크의 마리아 안나는 동서였던 루이제 왕비가 죽은 뒤 프로이센에게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프로이센 궁정을 이끌어나갔을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 전쟁으로 위기에 처했던 프로이센에 루이즈 왕비와 함께 귀감이 되는 여성으로 알려져있었습니다. 

 

마리의 부모인 프로이센의 빌헬름과 그의 아내인 헤센-홈부르크의 마리아 안나


마리는 오래도록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에른스트2세의 신부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1842년 바이에른의 왕위계승자였던 막시밀리안과 결혼하게 됩니다. 

프로이센 출신이었던 마리는 개신교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바이에른은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는 종교에 관계하지 않고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여러가지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시아버지가 양위한뒤 왕비가 된 뒤에는 많은 왕비들처럼 자선사업에 집중했으며, 남편이 죽은뒤인 1872년에는 가톨릭으로 개종했었습니다. 그녀의 두 아들인 루드비히와 오토는 모두 바이에른의 국왕이 되었는데 특히 장남인 루드비히2세는 바이에른의 많은 건축물들을 지었던 그 루드비히 2세입니다.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2세와 마리 왕비 그리고 두 아들인 루드비히와 오토


미인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바이에른의 국왕 루드비히 1세는 첫째 며느리의 아름다움에 만족했으며 이런 아름다운 며느리의 모습을 초상화로 그려서 미인갤러리에 걸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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