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포기 안할래!

가벼운 역사이야기 : 데이지 그레빌이 집착한 남자는?

by 엘아라

앞쪽 이야기인 "말해봐!나보다 부인이냐고!"https://brunch.co.kr/@elara1020/529와 연결이 되어서.....


베레스포드 경과의 연애사건으로 "수다쟁이 브룩"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데이지 그레빌은 1893년 시아버지가 죽으면서 이제 레이디 브룩이 아니라 워릭 백작부인이나 레이디 워릭 쯤으로 불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성품은 변하지 않았죠.


663px-'Daisy'_Greville,_Frances_Evelyn_Maynard,_Countess_of_Warwick_by_Lafayette_(1898).jpg 데이지 그레빌, 워릭 백작부인


베레스포드 경과의 사이는 그렇게 좀 나쁘게 끝나버렸습니다. 뭐 데이지 입장에서는 남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베레스포드와의 관계는 잊고 싶은 일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곧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여기게 되죠.


그녀가 연애질을 하게 된 인물은 "조"라는 애칭으로 알려졌던 조셉 레이코크였습니다. 조셉 레이코크는 백만장자이자 군인이었던 인물로 보어전쟁에도 참전했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유명한 이유는 그가 유명한 바람둥이였기 때문이었죠. 그는 30대가 되어서까지 결혼하지 않고 여러 여자들과 연애질을 했었죠. 그리고 여기에는 데이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Burnham_churchill_jul1900.jpg 1900년 보어전쟁에 참전했던 전우들의 모임, 가운뎃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조 레이코크입니다. 그 오른쪽 옆은 윈스턴 처칠 -0-;;;


데이지는 1898년 무렵 임신을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남편이 아니라 조 레이코크였죠. 안그래도 데이지는 스캔들 메이커였었으며 적들도 많았습니다. 이때문에 스캔들이 될 것을 우려했던 웨일스 공은 비록 늘 데이지에게 호의적이었으며 후하게 대해줬지만 이때는 둘을 떨어뜨려 놓아야한다고 여겼고 둘을 떨어뜨려놓게 됩니다. 어쨌든 데이지는 1898년 아들을 낳았죠.


699px-Countess_WarwickSon1906.jpg 조 레이코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함께 있는 워릭 백작부인


하지만 바람둥이였던 조 레이코크는 이 사이 다시 또 다른 귀부인과 연애질을 하게 됩니다. 상대는 6대 다운셔 후작의 아내였던 키티라는 애칭의 캐서린 메리 힐이었습니다. 키티는 역시 사교계의 유명한 여성으로 데이지의 친구이기도 했었습니다. 1899년에서 1900년사이 조 레이코크와 다운셔 후작부인의 연애질이 발각되었으며 이에 화가난 다운셔 후작은 아내와 이혼하기로 결심했고, 결국 다운셔 후작 부부는 이혼하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스캔들은 더욱더 커졌고 결국 조 레이코크는 1902년 이혼한 키티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데이지는 조 레이코크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못했으며 그가 결혼한 후에도 연애질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1904년에 딸을 낳는데 그 아이 역시 조 레이코크의 딸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런 상황은 스캔들을 더욱더 겉잡을수 없게 만들 가능성이 커졌고 결국은 데이지는 조 레이코크와의 관계를 포기해야만했었죠. 그리고 이런 상황은 그녀가 더이상 연애질 보다는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자선사업이었는데 데이지는 특히 교육에 관심이 많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동등한 교육을 받을수 있게 해야한다고 여겨서 여러곳에 학교를 세우는 등의 일을 했었죠. 상속녀였던 그녀는 자신의 재산을 이런 좋은 일에 쓰기로 한것이죠.


'Daisy'_Greville,_Frances_Evelyn_Maynard,_Countess_of_Warwick,_by_Ellis_and_Walery_(1890s).jpg 데이지 그레빌, 워릭 백작부인


....이렇게 훈훈하게 끝날줄 알았지만.........

to be continue....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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