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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Jul 12. 2019

카스트라토이야기(7) 카레스티니 : 두번째

영광스러운 날들과 말년의 비참함

카레스티니는 1733년 19월 30일 런던의 헤이마켓 극장에서 런던 무대에 데뷔하게 됩니다. 이것은 당시 영국 음악계에서 고립되어있던 헨델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했었습니다.


오래도록 영국의 음악계를 장악하고 있던 헨델과 그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여러 사람들은 헨델에게 반기를 들게 됩니다. 특히 헨델이 가장 선호했었던 카스트라토였던 세네시노는 헨델을 견디지 못했고 결국 헨델의 오페라단의 주요 인물들과 함께 탈퇴합니다. 게다가 이때는 정치적 문제도 엮이게 되는데 국왕 조지 2세와 웨일헨공 프레드릭의 불화는 결국 부자간의 정치적 대립으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헨델은 국왕이 총애하던 음악가였으며 이때문에 헨델에 반기를 든 인물들과 웨일즈 공을 중심으로 하는 반 국왕파 귀족들은 헨델에 대항하는 오페라단을 세웠었으며 여기에는 기존에 헨델과 일했던 사람들 다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귀족들은 헨델에 대항하기 위해 당시 이름을 날리던 작곡가중 한명인 포르포라를 초빙했으며 전설적인 그의 제자 "파리넬리"도 초빙하게 되죠.


헨델


이런 상황에서 나름 파리넬리와 라이벌 구도를 가지고 있었던 카레스티니야 말로 헨델의 "비밀병기"였을듯합니다. 카레스티니는 1734년 1월 26일 헨델의 오페라인 Arianna in Creta에서 테세우스 역으로 헨델의 오페라에 처음으로 출연합니다. 헨델은 카레스티니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기에 카레스티니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릴수 있는 곡들을 작곡하죠. 카레스티니 역시 헨델의 오페라에 어느정도 적응하는 기간을 두는데 헨델이 이전에 작곡한 오페라에 출연하면서 헨델의 곡에 익숙해지려 했던듯합니다.


1734년 가을, 파리넬리는 영국에 왔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런 파리넬리에 대항하기 위해 헨델은 카레스티니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Ariodante"를 작곡합니다. 카레스티니가 주연으로 나온 이 오페라에서 카레스티니는 헨델의 아리아들을 매우 훌륭히 불렀으며 그 최고는 바로 "Scherza Infida"가 됩니다. 그리고 헨델의 다음 오페라였던 Alcina에서 역시 카레스티니가 주연인 루지에로 역을 맡았으며 헨델은 카레스티니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카레스티니 맞춤형 아리아들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https://youtu.be/6TgQy1qzxfQ

헨델의 오페라 Ariodante 중 Scherza infida, 필립 자루스키(카운터테너)


https://youtu.be/KtbFdLlvKnc

헨델의 오페라 Alcina중 Mi lusinga, 필립 자루스키(카운터테너)


하지만 카레스티니는 알치나를 끝으로 영국을 떠나 이탈리아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가 왜 헨델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바가 없다고 합니다. 어쨌든 카레스티니가 떠난것은 헨델에게는 큰 타격이었다고 합니다. 


1735년 이탈리아로 돌아온 카레스티니는 하세의 오페라에 출연합니다. 이후 밀라노 나폴리등 이탈리아 전역을 돌면서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죠. 당대 카레스티니는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가수였었습니다. 파리넬리가 대중을 위한 무대에서 완전히 은퇴해버린 뒤에는 최고의 가수라는 칭송을 받았을듯합니다. 특히 1743년 카레스티니는 밀라노에서 젊은 작곡가였던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폰 글룩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글룩은 그를 위한 아리아를 작곡해줬었죠.


https://youtu.be/KaFmfzj40fg

글룩의 오페라 Demofoonte중 Sperai vicino il lido, 필립 자루스키(카운터테너)



1747년 카레스티니는 작센의 선제후이자 폴란드의 국왕이었던 아우구스투스2세의 궁정으로 가게 됩니다. 그에게 호의적이었던 하세가 궁정 악장으로 있었기에 거의 이년동안 드레스덴에서 지내면서 하세의 오페라들에출연했었습니다. 2년후 이 오페라들은 베네치아에서 다시 공연되는데 이때 역시 카레스티니가 주연으로 출연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거의 50살에 가까운 나이였던 카레스티니는 은퇴해야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늙었으며 젊은오페라 스타들에게 밀리고 있었죠. 카레스티니는 아마도 파리넬리처럼 우아하게 은퇴하고 싶었을듯합니다. 이때문에 그는 몇몇 궁정들을 방문하게 됩니다. 먼저 프로이센으로 갔었습니다. 거기에는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프리드리히 2세(프리드리히 대왕)이 있었죠. 당시 궁정 악장이었던 카를 하인리히 Graun이 작곡한 오페라에 출연했는데,카레스티니를 위해 작곡한 그의 아리아들은 매우 멋졌으며 모두들의 뇌리에 남는 곡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카레스티니는 점차 쇠약해지고 있었으며, 괴팍했던 프리드리히 대왕과 카레스티니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고  무대에 많이 서지 못했습니다. 이후 그는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여제(표트르 대제의 딸)의 초청을 받아들여 러시아로 갑니다. 1754년 상트 페테스부르크에 도착한 카레스티니는 러시아에서 2년간 머물게 됩니다.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여전히 멋진 음색으로 노래를 불렀었다고 합니다.


https://youtu.be/umwM8ULW2Oc

Graun의 오페라 Orfeo중 In mirar la mia sventura ,필립 자루스키



카레스티니는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왔으며 1758년 7월 나폴리에서 그의 마지막 공연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공연은 당대 많은 카스트라토들의 은퇴공연같이 흘러가게 됩니다. 늙고 지쳤으며 유행에 뒤진 카레스티니에 대해서 관객들은 철저하게 등을 돌리게 됩니다. 이 상황은 결국 카레스티니가 모든 것을 잃고 공적 생활에서 완전히 떠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2년후인 1760년 카레스티니는 사망합니다.

비록 마지막이 비참하긴했지만 그는 당대 최고의 가수중 한명이었으며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이 그를 위해 노래를 썼었습니다.


자료출처

1.필립 자루스키 카레스티니 헌정 앨범 : the story of a castrato(2007)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필립 자루스키 카레스티니 헌정 앨범 : the story of a castrato(2007)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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