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어학연수] a pivotal person

영어를 말할 때 내가 잊을 수 없는 사람 2

by 다락방

팝송을 좋아했지만, 그래서 열심히 따라 불렀지만, 그러나 단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시간을 보내다가, 1학년1학기 겨울방학, 나는 외갓댁에 갔다가 구세주를 만나게 된다.


어떻게 하다가 그 말이 나온건지 모르겠는데, 외삼촌은 내가 영어의 발음기호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너 읽을 줄 몰라? 삼촌은 그 사실을 알자마자 본인의 영어사전을 꺼내와서 제일 앞면의 발음기호를 놓고 알려주었다. e 는 에 로 읽고, d 는 ㄷ 발음이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영어사전 앞면의 발음기호를 나는 삼촌과 나란히 앉아서 달달 외우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알려주고 외우다가 두시간쯤 지났을까, 삼촌은 우리 이제 한 번 실제로 읽어보자, 하고는 삼촌은 영어 사전에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 나오는 단어를, 발음기호를 보고 읽어보라고 시켰다. 그리고 나는 발음기호를 보고 그 단어를 읽어낼 수 있었다. 재차 테스트해본 후에 내가 확실히 외웠다고 생각한 삼촌은 그제야 이제 자자고 말했다. 새벽이었다. 내가 그 날 얼마나 뿌듯한 마음이었는지, 아마 다른 사람들은 짐작도 못하겠지.


다음날 아침, 우리 식구들과 외할머니, 이모까지 모두 다 있는 앞에서 외삼촌은 내 칭찬을 했다. 얘가 진짜 똑똑해, 발음기호 알려줬는데 두 시간만에 마스터했어! 라고. 그러나 발음기호의 중요성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나의 식구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나보다 아홉살 많은 이모는 '그거 다 그정도면 외우는거 아녀?' 했다. 내가 기쁜 만큼의 어떤 호들갑을 그 때는 전혀 받지 못했고, 나의 성취를 알아주고 축하해주는건 나의 외삼촌 뿐이었다. 나를 알게 하고 또 잘했다고 해준 사람.


그 뒤로는 누가 단어를 읽기를 기다렸다가 한글로 따라쓰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도 읽을 수 잇었으니까. 내 스스로 단어를 읽게 되자, 나는 더 많은 팝송들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영화 <더티 댄싱>을 보았고, 그 영화와 그 영화의 삽입곡들이 너무 좋아서, 나는 오리지널사운드트랙의 가사들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석도 해보게 된다. 번역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간단한 문장들을 번역해보고 그 팝송의 뜻을 외우는게 얼마나 재미있던지! 그러다보니 영어 실력이 갑자기 향상하기 시작했다. 영어 듣기평가는 다맞게 되고, 성문기초영문법이나 맨투맨 영문법 같은건 본 적도 없는데, 영어 시험 점수도 높아졌다. 어휘력은 또래보다 더 좋아서, 영어 시간에 선생님이 예문으로 교과서 외의 단어들을 가져오면, 나는 혼자 그 뜻을 앍고 얘기하기도 했다. 아직도 나는 그렇게 stay 라는 단어가 기억난다. 선생님이 예로 들기 위해 가져온 단어였는데, 내가 외운 팝송의 제목중에 stay 가 있었고, 친절하게도 그 팝송의 제목 옆에는 번역도 되어있었거든. 머물러주세요, 라고. 하하하하하. 발음기호를 알고 팝송을 따라부르니, 영어 점수는 높아졌고, 영어라면 자신감도 생겼다. 급기야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발음도 해석도 완벽해!' 라는 말까지 듣게 된다. 영어로 반짝이는 시간들을 학창시절에 보냈다. 그 뒤로 이어지지 않은건... 공부를 계속하지 않고 멈춰버린건 너무나 아쉽지만, 나는 영어를 정말 좋아했다. 내가 잘했었던 과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련도 많이 남았더랬다. 그러다보니 회사생활을 20년 이상 하다말고 싱가폴로 훌쩍 떠나게됐지.


나의 영어에는 이렇게 너무나 중요한 자리에, 중요한 타이밍에 외삼촌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이 점에 대해 외삼촌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있다. 만약 그 때 외삼촌이 내게 발음기호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 후의 내 영어와 내 공부와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모르겠다. 스스로 읽을 줄 안다는 것은 힘이 세다. 내게 발음기호를 알려줄만한 사람은 외삼촌 말고는 더는 없었기에... 내게 정말 필요한 때에 있어준 사람이었다.


https://youtu.be/WpmILPAcRQo?si=11uIMQmY6zjkib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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