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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 Descansador Jun 30. 2018

5. 그럼에도 난 그들을 사랑했다

충분히 애써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멕시코로 오기로 결정했던 내 선택에 스스로 '잘했다'고 토닥여주기 위함이었을까.

나는 시종일관 멕시코 사람들과 문화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더 아는 만큼 그들을 더 진실되게 사랑할 수 있을거란 확신이 들었다.  


오기 전부터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에서의 내 체류 기간이 7~8개월 이상으로 길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전 해외 경험을 통해 이만큼의 시간은 한 문화에 충분히 체화되기에 턱없이 짧은 시간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보고 느끼기 위해 주말마다 Centro로 나갔고, 수업을 조금 까먹으면서까지 다른 주를 여행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충분히 채우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해보기로 했다. 내가 당시 학교에서 들었던 수업 중' Introduction to Mexican Culture (멕시코 문화 입문)'라는 수업이 있었는데 해당 수업의 기말 레포트가 '자유 주제'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단어였던 '자유 주제'는 이 순간만큼은 내 눈을 빛나게 했다. 


나는 그 레포트의 주제를 'Living in Mexico as a foreigner(멕시코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으로 

정했다. '멕시코에 사는 외국인'을 주제로 한 이유는 외국인들의 멕시코 문화에 대해서 보다 균형적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동시에 나나 동료들과 같이 단기간 교환학생들을 온 사람들이 아니라 장기 체류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해보기로 했다. 내 비슷한 또래의 대상자를 찾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혹은 두 학기 수학을 위해서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적절한 응답자를 찾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10년 혹은 그 이상을 거주하신 교내 외국인 교수님들 네 분께 인터뷰를 약속받았다. 이 네 분의 출신은 동∙서유럽, 미국 등(아쉽게도 아시아 지역 출신 교수님을 찾지 못했으므로)으로 다양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멕시코 현지인 교수님 한 분과 인터뷰를 하면서 외국인 교수님들이 갖고 계신 생각에 대한 그 분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단어였던 
'자유 주제'는 이 순간만큼은 내 눈을 빛나게 했다. 




멕시코인들에 대해 교수님들이 느낀 첫인상은 내가 느꼈던 바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분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멕시코 사람들이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해 놀라움을 느꼈다. 그런 부분들이 멕시코 문화가 가진 매우 아름다운 측면이라고 생각했다."

멕시코 국내를 여행할 때 느낀 부분이지만, 이러한 경향은 빈곤층이 많은 지역(Oaxaca, Chiapas와 같은 남부 지역)으로 갈수록 더 두드러졌다. 이런 걸 보면 '시골 인심'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외국인 교수님들은 공통적으로 멕시코 사람들의 '언행불일치'에 대해 어려움을 느꼈다고 답변했다. 그 중에서도 시간 약속 문제는 빠지지 않는 주제였다. 한 교수님은 멕시코 사람들과의 약속과 외국인들과 약속을 구분해서 관리할 정도로 그들에게 많이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이보다 더 문제였던 것은 이러한 이들의 성향이 'Professional Setting(업무적 상황)'에서 드러날 때였다고 한다. 한 교수님에 따르면 그들의 '업무 시간'은 사전적 정의와 다소 다르다고 한다. 그는 초기에 동료  멕시코 교수들이 업무 시간 중 시도때도 없이 제안하는 '커피타임, 간식타임'으로 인해 업무에 충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이와 함께 그는 멕시코인들이 업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일을 하고 이후에 사교 활동을 하면 훨씬 더 효율적일거라는 의견도 더했다. 실제로 그가 일과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갈 때에도 많은 동료 교수들은 종종 밀린 잔업을 처리하기에 바빴다고 한다. 



Día de los Muertos(망자의 날) 캠퍼스 내 모습



또 한 가지 어려운 점은 이러한 그의 생각을 동료 멕시코인 교수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그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그들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해야 해요. 그랬다가는 한 순간에 관계가 틀어지기 쉬워요."라고 말한다. 이는 내가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던 멕시코인들의 '이미지 중시' 문화와도 통하는 부분으로, 타인에 의해 자신의 단점이나 문제점이 까발려지는 것은 그들에게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실제로 그는 이러한 직설적 언행으로 인해 그와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이 몇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업무적 태만이나 그들이 베푸는 원치 않는 호의에 대해서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고, 또 거절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으며, 그 과정 속에서 아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음을 토로했다.


 

그는 초기에 동료  멕시코 교수들이 업무 시간 중 시도때도 없이 제안하는 
'커피타임, 간식타임'으로 인해 업무에 충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런 그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런 문화적 특성을 사회적으로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내게 들려주었다. 멕시코 사람들은 종종 창구 업무를 보기 위해 긴 줄을 서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데, 그 줄의 길이가 은행 외부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은행 내부에 들어가보면 창구 업무를 보는 직원은 한 두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는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그 어떤 이들도 이러한 '황당한' 상황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매우 놀랐다고 한다. 


이어서 그는 멕시코인들이 정치적 부패나 치안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가지는 태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그러한 사회적 문제들이 있음은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 문제에 대해서 실제로 목소리를 내고 상황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분의 교수님이 공통적으로 멕시코에서 생활하고 나서 이전보다 훨씬 더 삶을 즐기게 되었고, 현재 마주하는 어려움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이야기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오늘의 즐거움을 위해 고통을 내일로 미루는 그들의 '느긋함'이야말로 거꾸로 고통이나 삶의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힘을 키우는 원동력이라고 한 교수는 말한다. 


"그들의 Mañana(내일, 오후) 태도는 분명 그들이 긍정적인 현재를 최대한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해줘요.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지연 능력'은 그들이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마주했을 때도 똑같이 발현돼죠. 현재의 고통을 효과적으로 직면하기 위해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 말이죠." 


사실 이 교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진 않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이 굉장히 창의적이라고 생각하였고, 하나의 문화적 특성이 갖는 여러 측면에 대해서 보다 폭넓게 생각하는 힘을 더해주었다. 


이 교수의 생각처럼 멕시코 사람들의 '고통 지연 능력'이 '즐거움 지연 능력'으로도 충분히 발현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명확했다. 그들은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대할 때도 그것 자체에 매몰되지 않았다. 긍정적 태도를 잃지 않았고,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강박적 우려 또한 그들에겐 없었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 그들은 삶의 고통으로부터 스스로의 즐거움을 효과적으로 보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그들은 적어도 인지적으로 즐거움과 고통을 분리하여 생각하고 대응할 수 있는 사람들인 듯 보였다. 그러한 힘이 그들이 즐거움을 마주할 때와 고통을 마주할 때, 그 두 순간 모두 온전히 현재에 충실하게 임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한 가지는 명확했다. 그들은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대할 때도 그것 자체에 매몰되지 않았다. 긍정적 태도를 잃지 않았고,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강박적 우려 또한 그들에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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