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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 Descansador Nov 11. 2018

9. 멕시코 고유의 멋을 찾아서

Oxaca y Chiapas Parte 1.


얼마 전에 친구 한 명이 내게 물었다.

"너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크게 한 일탈이 뭐야?"

보통 친구들의 답에 큰 고민없이 답을 하는 나였지만, 그 질문을 듣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다.


글쎄.. 내 삶에서 일탈이라고 부를 만한 말 또는 행위가 무엇이 있었을까.

일탈의 정의는 주관적일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정의를 좀 너그럽게 잡아 내 과거를 돌아보아도 '일탈'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결국 대화는 친구가 나를 재미없는 인간이라고 놀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 질문은 내 속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머물러 있었다.


일탈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렸던 단어는 도전과 모험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두 단어에 갇힌 상태로 일탈이라는 단어를 보기 시작하고, 내 속에서 그에 걸맞는 경험을 찾지 못하자 나는 금새 스스로를 삶에 대해 소극적인 사람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생각의 흐름에는 오류가 있었다.

일탈은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성격을 띨 수 있지만 모든 도전이나 모험이 일탈을 전제하지는 않는다.

내게 '일탈'이란 단어는 사회적 규범이나 질서를 벗어난다는 의미가 강했기에 적절한 예를 찾지 못했다. 나는 내 스스로를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규범에 벗어나는 성격의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마음 속의 조급함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역량만 된다면,
스스로를 제한된 시간 동안 특정한 환경에 처하도록 반강제적으로 밀어넣는 행위는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굉장히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각설하고, 내가 위에서 일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번에 소개할 나의 여행이 멕시코에서의 '소심한 일탈'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과나후아또 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비교적 학교 공부와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잘 되지 않았지만)에 집중했고, 그러다보니 몸이 다시금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마음 속의 조급함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역량만 된다면, 스스로를 제한된 시간 동안 특정한 환경에 처하도록 반강제적으로 밀어넣는 행위는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굉장히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종종 비합리적인 생각과 충동적인 행동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언젠가 친구가 해준 멕시코 남쪽의 Oaxaca와 Chiapas 가장 멕시코 고유의 멋을 지닌 지역이라는 말을 떠올린 나는 곧장 Oaxaca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일정은 11월 3일 ~ 11월 11일 7박 9일 일정이었다.


멕시코 남쪽의 주 Oaxca 그리고 Chiapas(신혼여행지로 유명한 Cancún은 우측 상단에 위치)


일정이 7박 9일이 된 건 비행기 시간이 애매해서 밤 늦은 시간에 공항에 도착한 후 노숙을 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과달라하라 공항은 비교적 깔끔하고, 맥도날드를 비롯한 우리에게 친숙한 다국적 식음료 프렌차이즈 식당들이 들어서 있었다. 비교적 안전한 공항에서도 나는 짐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의자에 앉아 졸다 깨기를 반복하던 나는 건너편 맥도날드가 문을 연 것을 보고 좀비처럼 다가가 고향 음식만큼이나 반가운 맥모닝을 주문했다.


밤을 많이 새는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잠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커피를 마시고 약간의 각성 상태가 되면, 몸은 극도로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는, 그렇다고 뭔가를 하기에는 생산성이 너무도 떨어지는 그런 이도저도 아닌 상태 말이다. 그 날의 내가 그랬다.


짧지 않은 새벽의 끝에 비행기에 오른 나는 기내에서도 편하게 잠들지 못했다. 이전 포스팅에서 소개했지만, 멕시코는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나라다. 과달라하라에서 와하카 주의 수도 와하카까지 가는 데 비행기로 4시간 가량이 소요됐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와하카에 도착했을 때 이미 녹초가 되어있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혹은 이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새벽 비행기 혹은 버스를 타는 일정들이 이후에도 종종 있었는데 사실 시간이 많이 타이트한 여행 일정이 아니라면 별로 좋은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특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당일의 몸 컨디션이 좋을 수가 없기에 보고 느끼는 것의 감흥 또한 몸 상태가 좋고 감각이 깨어있을 때보다 훨씬 덜한 것들을 느끼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조금이라도 잠을 청하고 일정을 시작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게스트하우스의 체크인 시간은 호텔에 비해서 늦으면 늦었지 더 이르지는 않기에, 그 사이에 뜨는 시간을 휴식도 여행도 아닌 비효율적인 시간으로 보낼 가능성도 있다. 자신의 현재 몸 상태와 체력, 전후 일정들을 잘 고려해 여행 일정을 조정하시길 바란다. 다만,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중남미의 국가들은 도시간 버스 이동이 5시간은 우스운 수준이라는 점을 역시  기억하시기 바란다. 


와하카 Centro에 위치한 대성당


내가 느낀 와하카의 첫인상은 '소박함'이었다. 비유하자면, 과달라하라에서는 골목을 찾아 들어가야 볼 수 있는 모습들이 와하카에는 길 군데 군데 묻어있었다. 사실 그게 과달라하라라는 도시의 큰 장점인 것은 사실이다. 과달라하라는 도시 멕시코의 모습과 토속적인 멕시코의 모습이 공존하는 모습을 만끽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도시가 아닐까 싶다. 


대성당 앞 야외교실 모습 


대성당 앞에는 햇빛이 적당히 가려지는 명당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진 야외 교실이 차려져있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인 것 같아 흥미로웠다. 이렇게 수업을 야외에서 하면 쉬는 시간 동안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뛰어놀기에 참 좋을 것 같았다. 의자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공간이 그들의 놀이터일테니 말이다. 물론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물론 내 처음 생각과 같이 그렇게 낭만적인 야외수업은 아니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나뭇잎에 걸려있는 메세지들은 그 날의 수업 목표라던가 학습 내용이 아니었다. 내가 사진상으로 정확히 읽을 수 있는 메세지는 두 개였다. 첫 번째는 'Queremos que la maestra Soledad regrese a darnos clases pronto!(우리는 Soledad 지역의 선생님들이 다시 우리에게 수업을 해주시길 원한다!)' 라는 메세지, 그리고 두 번째는 'La salida de nuestra maestra es injusta(우리 선생님들의 직위 해제는 부당하다)'라는 메세지였다. 선생님들과 지방 정부 당국 간의 갈등으로 인해 빚어진 불가피한 야외 수업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재미없는 이야기는 이쯤으로 하고,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나는 Oaxaca Centro를 소소하게 둘러본 뒤 Hierve el Agua라는 관광지로 향했다. 표지의 장소가 바로 그곳인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일단 사진을 몇 장 보면서 이야기를 해보자. 



 


Hierve는 스페인어 동사 Hervir의 3인칭 변형으로 '끓다(boil)'라는 의미이다. 위 사진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천연온천과 매우 유사하다. 연못과 같은 물의 성분은 탄산칼슘을 포함한 다양한 광물이 포함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을 두르고 암석은 우리가 동굴에서 보는 암석의 형태와 성분과 유사하다. 


연못의 수온은 주변 기온, 수영하는 사람들 등에 영향을 받아 미지근한 편이지만, 이 연못으로 통하는 물줄기를 따라가보면 그 위쪽으로 갈수록 수온(22-26℃)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물론 끓는 온도와는 거리가 멀지만).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풍부한 광물이 포함된 수분은 피부 회복효과가 있다 하여 현지에서도 다수의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나 역시 수영을 하면서 스페인, 페루, 미국 등지에서 온 여러 여행자들과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연못으로 통하는 물줄기(온도가 따뜻했다)


연못을 기준으로 산맥이 끝없이 펼쳐진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다보면 아래 사진과 같은 또다른 장관을 볼 수 있다. 석회암들이 마치 폭포의 형태로 응고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암석은 협곡 하단으로부터 길이가 80m에 이르고 폭이 90m에 이른다고 한다. 


Hierve El Agua의 명물 Cascada Grande(큰 폭포)


지금까지 난 보통 동굴지형은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온통 산맥들로 둘러싸인 전망이 탁 트인 곳에서 이런 특별한 명소를 발견하게 될 줄을 몰랐다. 도시 중심으로 오는 길에는 고맙게도 차를 가지고 왔던 페루, 스페인 여행자들이 나를 태워주었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보고, 그를 통해 새로운 기분을 느끼면 우리는 알 수 없는 어떤 에너지에 의해 일시적으로나마 육체적 피로를 극복할 힘을 얻는다. Hierve  el agua를 방문했던 내가 딱 그랬다. 밤 비행으로 여행 첫날부터 녹초가 되어버린 나였지만 정말이지 멋진 여행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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