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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 Descansador Mar 30. 2019

일상 속 넛지(Nudge) 채우기

내 삶을 추진하는 힘 


돌아보면 난 늘 그래왔다. 

작년 패기 넘치게 시작했던 브런치에 대한 열정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 사그라들었다. 

한참 지나버린 가장 최근 발행일은 나의 꾸준하지 못함을 '거봐ㅋㅋ 너 이럴 줄 내가 알았지'라는 듯 나를 비웃고 있는 듯했고, 서랍장에 담긴 내가 쓰다 만 글들은 그 날의 내 감정과 기분, 그리고 글을 방향성이 모두 증발한 듯 커서만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꾸준하지 못함은 항상 나의 큰 단점이자 두려움이었다. 

사실 브런치를 시작할 때에도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어떻게든 잘 이겨내겠지라고 생각했다. 

말콤 글래드웰 교수는 그의 저작 [아웃라이어]에서 해당 분야에서 일정 수준의 식견을 지닌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기울인 노력은 그의 1/10인 1천 시간에도 한참 못 미치는 시간이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문했다. 

나의 꾸준하지 못함이 그저 대상에 대한 열정이 그 정도였기 때문일까? 

이는 사실일 수도 있지만, 검증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나의 게으름을 보기 좋게 포장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핑계에 다름없다. 


내 최근의 삶은 어떠했나?

최근 1년의 나를 둘러싼 외부적 환경이 만만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새로운 직무에 적응하면서도 내가 달성해야 하는 숫자들과 끊임없이 씨름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부턴가 내 삶의 무게중심이 조금씩 직장으로 옮겨가는 듯했고, 회사 밖에서 보내는 내 삶에 대한 주의력과 집중력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반성문은 이만하고,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면서, 가치있게 느끼는 것들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하고 그에 대한 노력을 다시금 다잡기 위함이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나에게 다시금 동기를 더해준 책 한 권을 소개하고 싶다. 바로 2017년 경제학상 수상작인 [넛지]이다. 이미 한참 전에 경제학계를 휩쓸고, 여느 노벨상 수상작과 같이 전국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군림한 책이지만, 이 책이 내게 주는 울림은 여느 책과는 다소 달랐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작 [넛지]


넛지(Nudge)는 무언가를 팔꿈치로 살짝 찌르거나, 톡 건드리는 것과 같이 살짝 미는 행동을 표현하는 동사이다. 나는 무엇보다 저자가 넛지라는 재밌는 단어로 그들의 대안적 접근을 소개한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아래에서 조금더 상세히 이야기하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넛지라는 단어는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매우 잘 함축하는 단어이다(선택자의 보다 나은 선택을 돕기 위해 그들의 생각의 단서들을 정교하게 '톡' 건드리는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책을 인상깊게 읽었던 무엇보다 큰 이유는 아마 필자가 경영학도인 동시에 심리학도였기 때문일 거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이 기초를 두고 있는 학문은 '행동주의 경제학'이라 불리우는 것으로 전통적인 경제학의 개념에 심리학과 신경과학 등을 통합하여 이해하려 하는 비교적 젊은 경제학의 갈래이다. 행동주의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경제학과는 달리는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를 전제한다. 저자들은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앞둔 사람들은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한 자원과 시간이 부족하며, 설사 그들이 정보를 모두 확보한다 하더라도 해당 정보들을 효과적으로 통합하여 최선의 선택지를 분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사결정은 합리적(rational)이기보다는 본인에게 주어진 자원과 정보 등을 종합해보았을 때 만족할 만한(satisficing) 결론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해당 논리를 바탕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사람들이 종종 만족할 만한 선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합리적인 선택을 분별하기 위해 이들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폭과 깊이가 너무 방대하며, 이런 선택을 수없이 많이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더하여 종종 이들의 많은 선택들은 이들이 기울이는 시간과 노력이 비해 꽤 장기간에 걸쳐 선택자의 삶에 영향을 주는 매우 중요한 선택일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이 조금 더 '만족할 만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방식으로 선택지를 '설계(architect)'하자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른다. 이들은 이를 선택설계(Choice Architecture)라고 명명하고, 이는 선택자들이 보다 나은 선택을 함에 있어 넛지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예시를 주의깊게 읽다 보면 우리가 평소 전적으로 자유 의지의 발현으로 인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우리 주변의 수많은 미묘한 자극들이 자리한(또는 설계된) 방식으로 인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행동(선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본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학교 영양사의 예를 간략하게 소개해보겠다. 


배식 음식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식이요법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이들이 소개한 연구 결과는 단순히 배식되는 음식들의 위치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식이요법(Diet)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눈높이 수준에 있는 반찬/음식들을 많이 가져가는 경향이 유의미하게 높았으며, 복부 아래 하반신에 높이에 위치한 음식들을 가져가는 빈도가 낮았다. 따라서, 교내 식품 영양사가 위 연구 결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함의는 학생들의 보다 균형된 식이요법을 위해 배식되는 음식의 위치를 적절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케이크나 쿠키와 같은 음식보다는 과일과 야채를 학생들의 평균적인 눈높이 수준에 상대적으로 많이 배치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저자는 이러한 의견에 대해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이 품을 수 있는 의구심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이와 같은 넛지에 대해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이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은 이러한 '인위적 설계'가 선택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점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설계는 음식의 배치를 변경한다 뿐이지, 선택자에게 건강한 음식을 강요한 것은 아니다. 선택자는 여전히 건강한 음식을 택할 권한만큼 동일하게 달거나 짠 음식을 선택할 권한이 있다(몸을 숙이거나 까치발을 드는 등의 약간의 불편함을 있을 수 있을지 모르나).  


또한 필자가 위에서 굳이 '인위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영양사가 이런 연구 결과에 대해서 알지 못하거나, 안다고 해도 전혀 신경쓰지 않을 경우에는 배식되는 음식의 위치가 무작위(random)로 정해지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만약 영양사들의 음식 배치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자유의 침해라고 정의하는 것이라면, 사실 무작위로 음식이 배치되는 방식 역시 학생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점에 있어 그 정도에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단지 그것이 인위적으로 설계되었다고 해서, 학생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도가 더 크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차피 자신들이 먹을 음식들을 집어갈 선택권은 학생들의 손에 있는 점은 동일한데 말이다. 


나아가, 저자들이 주장하는 넛지를 가하는 당위성은 그 어느 것보다 강력하지 않은가. 이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의 식이요법을 보다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데 이런 취지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 말이다. 다만, 위 자유주의자들의 논리는 우리의 선택 그 자체와, 선택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의 영역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논의이다(동시에 아주 미국적인 논의이다).


본 책의 전반적 내용은 위의 영양사의 예와 같이 넛지가 어떻게 개인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의 연속이다. 개인이 현명하게 투자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도, 투자의 전문가가 아닌 개인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관이나 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넛지를 가할 수 있을까 등의 질문을 던진다. 또 저자는 개인의 투자를 넘어 넛지가 훨씬 더 큰 파급력을 지닐 수 있는 연금 보험이나 의료 보험의 현주소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질문들을 던진다. 필자는 그 내용은 잘 알지 못하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들이 주장하는 넛지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채택하여 그의 재임 당시 정책에 적용했다고 알려진 바 있다. 


여러 갈래에서 하나로 만나는 기찻길처럼 현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융복합 학문


본 책은 초반부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예시들에 반해 중∙후반부로 갈수록 미국 연금보험 등 제도를 세세하게 뜯어보는 등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측면들이 있으나, 잘 설계된 넛지 하나가 충분히 한 세대를 넘어선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독자들도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닌 텍스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회학은 우리를 둘러싼 사회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하는 학문이며, 심리학은 사회보다는 개인의 내면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이 두 사회과학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흥미롭지만, 인류 문명이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 이들이 가진 통찰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리학과 사회과학의 통찰이 경제학과 통합된 행동경제학과 같은 융복합 학문은 보다 실질적인 영역에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변화의 주체는 정부가 될 수도 있고, 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자 하는 개인이 될 수도 있다. 


아무쪼록 필자가 소개한 본 책이 독자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선택'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고 저자가 주장하는 넛지가 개인을, 나아가서는 사회를 어떻게 변화하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면 더 좋을 바가 없겠다. 


필자는 좀 더 꾸준하게 좋은 글들을 쓸 수 있는 넛지를 고민해 보아야겠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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