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각자에게 서로 다른 존재감과 의미를 갖고 있다. 또래들과 어울려 밤늦게까지 라이딩을 즐기곤 하는 중2 조카에게 자전거는 손가락 대신에 다리를 쓰는 SNS 기기다. '산책행', '건강행'처럼 목적지가 형이상학적인 카카오 바이크의 찌거덕거리는 페달을 조곤조곤 유유자적하게, 때로는 언덕을 오르기 위해 뒤뚱뒤뚱 밟으면서 무심코 지나가는 판교의 젊은 개발자 남녀에게 자전거는 한 끗 모자라는 대중교통의 공백을 채우는 말초혈관이다. 런웨이 위에 있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잔살 없이 늘씬하고 기다란 몸을 잔뜩 웅크려 유체역학적으로 최적화된 자세로 핸들바에 기대고 삼삼오오 진지하게 페달링 하며 쏜살같이 스쳐가는 자전거 동호회 선남선녀들에게 자전거는 젊음을 뜨겁게 분출하는 분화구다.
나에게 자전거는 무엇일까? 20대 후반에는 회사에서 명절 선물로 받은 삼천리 철티비로 안양천과 한강을 달리곤 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고급 자전거가 있는지 몰랐던 그때의 나에게 자전거는 현실화 한 유니콘 더하기 천리마였다. 30대 초중반, 건강검진 결과 성인병의 문턱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 후 엔트리 급 알루미늄 엠티비를 사서 틈만 나면 탄천과 한강을 맹렬히 달리곤 했다. 그때 나는 진정한 라이딩의 기쁨을 누렸고, 한편으로는 꾸준한 라이딩으로 10kg 가깝게 감량에 성공함으로써 성인병 지표가 위험구간으로 돌진하는 것을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다. 이때 자전거는 내게 말없이 든든한 벗이자 불로장생의 명약이었다.
30대 후반과 40대에 걸쳐 강원도에서의 삶을 사는 동안, 나는 카본 재질의 하드테일 엠티비를 구매했고, 강원도의 고갯길과 산속 임도를 달렸다. 그 엠티비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 포장도로라는 해발 1089m짜리 운두령을 오르내렸고, 상체를 숙이지 않으면 앞바퀴가 들리는 진부에서 정선 가는 지방도를 넘다가 건너편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우체부 아저씨로부터 경외와 불이해가 뒤섞인 눈길을 받기도 했다. 전후좌우 최소한 5km는 사람 흔적도 없을 것 같은 횡성 깊은 산속 비포장 임도를 2시간 동안 타면서 여우인지 유기견인지 모를 신비로운 짐승과 인사하기도 했다. 이때의 내게 자전거는, 약간의 닭살 돋는 유치함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그러나 과장을 빼면 상당 부분은 사실과 부합한 이야기인데, 히말라야를 오르는 산악인과 함께한 셰르파였다. 자전거가 잘못되면 해발 1km 고개에서 하염없이 굴러 떨어질 수도 있었고, 고립무원의 횡성 임도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구조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50대를 갓 넘긴 시점에서 나는 다시 탄천과 한강으로 복귀했다. 내 철티비 자전거가 멋지다고 생각될 정도로 쌀집 자전거 같은 생활 자전거만 드문드문 눈에 띄던 내 20대와, 철티비부터 크로몰리까지 갖가지 엠티비로 북적이던 내 30대를 지나, 40대의 공백을 거친 후 50대에 돌아온 탄천과 한강은 스포츠카처럼 날렵한 로드 바이크가 제왕인 곳이 되었다. 이제 이곳을 지나는 젊은 3인조 로드 바이커 그룹은 비둘기호에게 선로를 양보받으며 달리는 KTX처럼 일반 라이더들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이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다. 미소지니스트라고 낙인이 찍혀도 할 말은 없지만, 가끔 나의 카본 엠티비를 가벼이 앞질러 지나가는 로드 바이커의 세련된 헬멧 아래로 꽁지머리라도 보일라치면 나는 RPM과 기어 단수를 끌어올리며 맥박수가 190을 육박하도록 내질러 그녀(?)를 따돌리는 데 잠시 성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객관적인 검증이 어려운 나의 다리 엔진 성능은 잠시 제쳐두고, 전문 산악용 엠티비로 전문 로드 바이크를 추월하고 계속 앞서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엠티비에는 거친 산악 지형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쇼크업소버(이른바 샥 또는 쇼바라 불리는)가 있다. 내 엠티비는 쇼크업소버의 단단함을 3단계로 조정할 수 있지만, 이를 가장 단단하게 조인다 하더라도 페달의 힘이 낭비될 수밖에 없는 엠티비의 구조적 약점을 제거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엠티비의 타이어 두께는 주로 2인치쯤 되는데, 내 엠티비의 타이어도 두께 2.1인치짜리인 데다가 표면에는 산길에서의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이른바 '깍두기'가 촘촘히 박혀 있다. 이에 비해 로드 바이크의 타이어는 BB크림을 잔뜩 바른 보이밴드의 얼굴처럼 미끈하고 손을 갖다 대면 베일 듯 두께가 얇다. 페달링 하면서 무수히 많은 '깍두기' 산을 넘어야 하며 지면과의 접지 면적이 넓고 쇼크업소버로 인한 체력 낭비도 큰 이런 엠티비로 속도에 최적화된 로드 바이크를 어찌 평지에서 추월할 수 있으랴?
그런데 반전이 있다. 달리다 보면 한국의 자전거 도로는 산악 지형으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구간이 많다. 지면 위로 튀어 오른 굵은 나무뿌리처럼 갑툭튀 들쭉날쭉한 보도블록, 싱글 코스를 스릴 있게 만드는 나무숲처럼 길 중앙을 버티고 있는 나무와 전봇대, 버스 정류장 같은 장애물, 넘어질 수도 있다는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굵직하고 거친 자갈이 잔뜩 깔린 자전거 도로 공사 우회로 등, 쇼바와 깍두기 박힌 넓은 타이어를 장착한 자전거만 살아남을 수 있는 자전거 도로는 한국에 차고 넘친다. 강원도의 산악을 누비던 산악자전거가 도심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식하며 나는 한편으로 안도한다. '로드 바이크를 구매할 필요는 없겠어'라고.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로드 바이크로도 그들을 따라갈 수 없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초중고 기간을 합하면 40여 년 간을 자전거를 타 오면서 훌륭한 람보르기니급 엔진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해 왔지만, 이제는 중고시장에 내놔도 팔리지 않는 퇴물 엔진이 되었음을 인정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쌩쌩한 로드 바이크가 지배하는 탄천과 한강을 비굴함과 회한을 가득 안은 채 거친 산속에서나 어울릴만한 전문 엠티비를 타고 달린다.
내 엠티비: 큐브 리액션 RTC SL, 그리고 한강
극단적으로 레이싱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라이딩에 관한 글로 읽힐 수 있습니다. 맞고요, 사실 저는 건강을 위해 주로 적정한 심박수를 유지하면서 평화롭게 달립니다. 꽁지머리 로드 바이크가 나를 추월하기 전까지는... ㅎㅎ
로드 바이크가 대세인 지금, 아직도 엠티비를 타고 있다.
엠티비는 쇼크업소버와 광폭 타이어 등으로 인해 로드 바이크에 비해 속도 내기가 불리하다.
열악한 한국의 자전거 도로 상황을 감안할 때, 속도를 희생하더라도 엠티비를 타는 것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