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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y 15. 2022

영화 기생충 선택적 리뷰, 해석

이 리뷰는 개인적 소감에 불과하며 언제든지 수정되거나 파기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생충은 명확하게 수직적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기생충이 '상승'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프닝과 엔딩 모두 카메라는 반지하에 있는 기우를 향해 떨어지기만 할 뿐이다. 등장하는 인물들 중 그 누구도 이야기적인 측면에서 상승하지 않는다. (박사장 가족도 원래 자리에서 추락하기만 할 뿐.)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카타르시스는 전무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감독이 영화의 초반부를 마치 케이퍼 무비처럼 설계했기 때문에 초반부 관객들은 기택네 가족이 바퀴벌레처럼 순진한 박사장 가족의 안방으로 침투하는 것을 보며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캠핑 사건에서 영화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점진적 발전을 하게 된다. 더 정확히는 문광이 지하실의 문을 여는 것을 기점으로 소름 끼치고 눅눅한 현실적인 이야기, 그래서 그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을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기생충은 ‘현실’의 금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기생충 내부에 잔뜩 들어 있는 현실의 금기에 대한 이야기 <냄새, 섹스, 관음증, 험담, 자본계급, 성적 역할, 인간관계에서 아주 세밀한 지배적 관계 (친구 관계, 사제 관계 사이에서 꼬집어 얘기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지배적 관계에 놓인 사람들) >등으로 우리들의 가장 하찮으면서 내밀한 이야기들이다. 이것들은 당연히 신분의 위아래를 가리지 않으며 수평적으로 이동한다. 세상에 똥을 싸지 않는 인간은 없다. 기생충은 이미지로는 수직적이지만 이야기로는 수평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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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석의 저주.

 영화에서 기택네 가족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문광일까? 민혁일까? 단연코 민혁이다. 늦은 밤 대뜸 나타나 먹을 것도 아닌 수석을 들고 기우를 찾아온 민혁의 부탁에 박사장의 집으로 가족 모두가 침투한다. 재밌게도 수석은 기택네 가족에게만 아주 상징적인 물건이다. 마치 수석의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말이다. 특히 기우는 이 주술에 홀려 자신 스스로 지하실의 문을 열게 되고 저주의 결말을 그대로 맞이해야만 한다. 기생충의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들의 변형으로 이뤄진 비극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용적이지 않고 인간들의 합의하에 그 가치가 정해지는 것에서 수석은 마치 명품 가방과 비슷하다. 박사장 가족과 민혁에게 수석은 별 가치 없는 것이다. 집 안에 흔하고 널린 것, 남궁현자의 집 안에는 그보다 더한 장식품들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민혁은 냅다 기우에게 줘버리고 박사장 가족들은 수석엔 손도 대지 않는다. (거의 연결 고리가 없다.)

 기우는 우연찮게 얻은 명품 가방 하나 때문에 엄청난 자신감이 생긴 셈이다. 자기 삶에 아무것도 달라진  없음에도  하나의 상징적인 물건 때문에 기우는 홀린  신분상승의 꿈을 꾼다. 기택네 가족에서 가장 신분상승에 집착하는 인물은 기우이다. 다른 인물들은 조금  나은 그러니까 박사장  안에서 돈을 벌어먹고사는 삶에 그치는 편이지만 기우는 진지하게 다혜와의 결혼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기정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은근히 질투하기도 한다. 반지하 집이 물에 잠긴 상황에 수석이 기우를 향해 떠오르는 것과 계속 수석을 끌어안고 있는 것은 그가 얼마나 계층이동에 집착하고 있는지   있는 장면이다. 체육관 장면에서 기택이 기우에게 돌은  그렇게 안고 있냐는 질문 하는데 기우는 얘가 자꾸 자기한테 온다고 대답한다. 이것은 기우의 신분상승에 대한 집착이 환경적 요인이라는 변명의 은유이다. 말하자면 기우는 수석을 탓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는 근세와 문광을 제거하기만 하면 자신의 신분상승의 꿈이 순조롭게 이뤄질 거라는 생각과 기대를 가지고 스스로 수석을 들고 일을 맺으러 간다. 여기서 수석은 어쩌면 가장 실용적인 용도로써, 목적으로써 사용된다. 영화의 말미에서 수석을 자연으로 돌려놓는 장면은  가지 상반된 뜻을 내포할  있다. 기우의 신분상승의 꿈이 이뤄져서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신분상승의 꿈을 이제 완전히 포기해서  이상 꾸지 않기 때문이거나. 결말의 해석을 어느 쪽으로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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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말

 선을 넘어오다.라는 말은 굉장히 주관적인 개념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그렇고 작 중에서도 각 인물들이 지닌 선 역시 굉장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물들 사이에서 어떻게 갈등이 생길지 예상하기가 매우 어렵다. 영화 속 이 세밀한 설정은 우리에게 현실의 기시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영화 초반 민혁과 기우의 대화를 시작으로 절정에서 기택과 동익까지 이어지는 각 인물들의 선을 넘나드는 줄타기는 기생충에서 반복되는 플롯의 핵심 중에 핵심이다.

 '그래도 사랑하시죠?' 장면은 초반 기우의 '걔 좋아하냐?'를 연상시키는데 두 장면이 성격적으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우린 바뀐 인물들의 리액션으로 이해하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민혁과 기우의 단순한 친구 관계에서 기택과 동익의 서비스 제공자(노동자)와 재화를 지불하는 사용자(사장)의 관계라는 아주 단순한 자리 변경임에도 각 인물 사이는 상당히 복잡해진다. 이런 두 가지 장면의 대조가 바로 기생충이 가진 현실의 기시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생충의 커다란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처럼 있을 법 하나 있지 않은 환상의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이루는 플롯은 계속해서 현실의 금기, 현실의 기시감에 대해 건들고 있다.

 영화에서 선 넘기와 함께 반복되는 플롯은 바로 말 끊기이다. 인물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대사 중 끼어들기 역시 인물들 간에 설정된 관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닌다. 세로축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인물들 간의 선을 가로축으로 넘나드는 대사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기생충이란 영화가 수직적이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수평적으로 설계되어있는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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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의 의미와 결말

 기생충은 역시나 한 가지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결말이 여러 개의 갈래로 뻗치듯 기생충이란 단어 자체도 여러 가지로 해석되거나 표현될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잘 만든 영화이자 이야기이자 우화가 된 것이겠지. 기생충이 단순히 기택과 근세의 기생하는 속성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인간 내면 가장 하층에 자리 잡은 본능적 욕구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본능적 욕구는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동기이면서 원동력이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섹스를 원하는 것, 안전하고 좋은 집을 갖길 원하는 것, 과시하고 사치를 하는 것,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것 등 이것들은 매일 하루를 이루는 근원이 되며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게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으로서 초라하고 변태적이며 가학적이고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각 개인에게 그런 모습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으나 그것을 외면하려고 한다. 그건 각 개인의 선을 넘는 일이니까. 그런데도 동시에 우리는 그런 것들을 관음 하길 즐기지 않는가? 영화와 소설은 관음의 매체이고 기생충은 그런 관음증에 대해 제대로 꼬집는 영화이기도 하다.

 기우의 내면에 기생충처럼 자리 잡은 신분 상승이라는 욕망은 수석으로 표현된다. 여러 가지 사업의 실패를 겪고 거세된 기택의 복종의 욕구는 무계획으로 표현되고 기정의 지배적인 욕구는 서슴없이 험담하는 데서 표현된다. 박사장 가족이라고 다를 것은 전혀 없다. 그들 역시 내면 하층 가장 아래에 자리 잡은 본능에 기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엔딩은 기우의 상상일까? 현실일까? 정확한 답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내레이션이 사용된 바, 그리고 기우의 근본적 계획에 대한 얘기를 곱씹어 봤을 때 기우의 상상에 불과한 이야기임에 점치게 된다. 그러나 기우에게 성공과 실패는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이제 신분상승이라는 욕망에 기생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 욕망에 충실해서 엄청난 돈을 벌든 그 욕망에 못 이겨 거세당한 채로 환상에 사로 잡혀 살던 둘 다 기생충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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