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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Aug 15. 2024

용두사미 <더 인플루언서> 리뷰

콘텐츠 제작자들에게는 흥미로운 교보재, 아쉬운 엔딩 어쩔 수 없었나?

*넷플릭스 예능 <더 인플루언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조회수와 '좋아요' 수에 따라 울고 웃는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필수적인 현시대에, 마케터, 작가, PD들은 대중의 주목을 얻기 위한 전략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더 인플루언서>는 이러한 고뇌를 그대로 담고 있다. 1세대 크리에이터부터 현재 주요 플랫폼에서 높은 인기와 견고한 팬층을 확보한 출연자들에 이르기까지, 각 라운드마다 생존을 위해 화제성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일종의 동질감을 경험하게 된다.


마케팅의 핵심은 소비자의 주목을 얻는 것이다. 이 기본 원리가 모든 전략의 출발점이 된다. 상거래의 본질은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상호작용에 있으며, 제품의 품질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시장에서의 성공은 요원하다.


소비자의 주목을 끌기 위한 노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도심의 화려한 간판, 전통 시장의 활기찬 호객, 서적의 매혹적인 표지 디자인, 영화의 인상적인 포스터, 언론 기사의 흥미로운 헤드라인, 그리고 온라인 쇼핑몰의 세심하게 구성된 상품 상세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요소는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다.


<더 인플루언서>는 이 핵심 원리를 극단적으로 구현한 쇼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이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준 회차는 4~5회다. 이 에피소드들은 본격적인 경쟁 구도가 형성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출연진이 14명으로 압축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전체 내러티브 구조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시청자의 몰입도를 최대화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에 따라 생존 게임의 규칙 역시 단순하면서도 자극적인 형태로 제공된다.


인플루언서들은 2인 1조로 짝을 이뤄 100인의 판정단의 시선을 끌기 위해 피드를 만들어 올린다. 이때 시선을 끌지 못한 인플루언서는 탈락한다. 숏폼, 롱폼, 피드 등 플랫폼에 관계없이 썸네일 제작 능력을 시험하는 라운드다.


이 룰은 대놓고 '어그로(시선을 끄는 행위)'를 추구하라고 메시지를 던진다. 팀을 뽑기 전에 다음 라운드 룰을 공개한 것 또한 의도적이다. 여기서 출연자들은 어떤 사람과 함께 했을 때 시선을 더 쉽게 그리고 오래 끌 수 있을지 고민했다.


출연자들이 주로 채택한 전략은 성적 매력의 활용, 시각적 기만, 그리고 자극적인 문구의 사용이었다. 특히 선정적인 이미지가 우선시되었으며, '충격 폭로'와 같은 자극적인 문구를 활용한 카드뉴스 형식의 콘텐츠가 다수 제작되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접근 방식이 현재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드와 썸네일의 제작 경향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포맷으로 시작된 라운드는 종료 시점까지 출연자들을 마치 경주마처럼 만들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가끔 있었고, 출연자 중심의 콘텐츠가 빛을 발할 땐 탄성도 나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화제성'을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암묵적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이 회차는 <더 인플루언서>의 본질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프로그램은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인물을 발굴하고자 시작되었으나, 영향력이란 본질적으로 계량화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따라서 경쟁의 척도로 직접 활용될 수 없는 이 추상적 가치를 대신해, 팔로워, 구독자 수, 조회수 등 정량화가 가능한 지표들을 경쟁의 기준으로 채택했다. 더불어, 이 경쟁이 제한된 시간 내에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제작 여건 상, 콘텐츠 제작자가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소비자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가 핵심 평가 요소로 부각되었다.


7회 엔딩에 이르러서 출연자들의 기존 브랜딩과 역량이 빛을 발한다. 그동안 쌓아온 탄탄한 팬 베이스와 기획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라운드였다. 하지만 방영 전부터 만들어졌던 논란으로 그 의미가 퇴색됐고 기억에 남은 것은 시선을 끌기 위해 사용됐던 일부 장면들뿐이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더 인플루언서>는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경고와 조언처럼 느껴진다. 소비자의 수용 한계, 관심 지속성의 취약함, 정확한 타깃 설정의 중요성, 그리고 효과적인 브랜드 구축 전략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경각심과 동시에 교훈을 준다.


개인적으로 <더 인플루언서>를 보고 나서 가장 흥미로운 측면은 프로그램 자체보다 그 파생 콘텐츠들이다. 이 프로그램의 화제성과 자극적 요소로 인해 다수의 콘텐츠 제작자들이 이를 다루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이 프로그램에서 묘사된 선정적 콘텐츠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유사한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들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질 낮은 콘텐츠', '어그로 파티', '벗방', '노출' 등 자극적인 워딩을 앞세운다. 비판하면서도, 정작 그들이 활용하는 이미지와 텍스트는 비판 대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비판하기 가장 쉬운 대상, 그리고 최대한 지금 조회수를 가장 많이 받을 만한 인물을 골라내고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과감한 헤드와 사진을 사용한다.


<더 인플루언서>의 출연자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은 전 세계 콘텐츠 제작자들과 결국 별반 다르지 않다. 좋든 싫든 우리는 '조회수' 경쟁에 빠져 있고, '클릭 베이트'를 위해 뭐든지 해야만 한다. 판매를 위한 최선의 방식이다.


<더 인플루언서>는 현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콘텐츠 제작자들이 직면한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주목 경제'에 깊이 빠져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방송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반의 문화적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한 비판 역시 같은 논리에 빠져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비판하는 콘텐츠조차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과 이미지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얼마나 깊게 뿌리 박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조회수' 지상주의에 몰린 현시대에 양심 있는 콘텐츠 제작자들의 고뇌에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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