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폴리 아 되>가 혹평받은 이유
영화 <조커: 폴리 아 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커: 폴리 아 되(이하 폴리 아 되)>의 전편, <조커>에서 관객들이 얻었던 카타르시스는 아서 플렉의 변신에서 비롯된다. 연신 사랑을 갈구하는 연약한 남성성을 가진 아서 플렉이 엔딩에 이르러 코믹스와 <다크나이트>의 어딘가에 있는 스테레오타입에 부합하는 조커로 탈바꿈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속편에서 고담시의 뒤편, 화려한 범죄자로 활약하는 아서 플렉, 조커의 활약을 기대한 이가 많았겠지만, <폴리 아 되>는 그러한 기대를 보란듯 빗겨나간다.
이는 흥미롭게도 영화 속 고담 시민들이 아서 플렉에 가지고 있는 기대와 유사하다. 시위와 폭동에 가담하는 시민들의 상징인 '조커'는 그들에게 일종의 구원자와 같다. 리퀸젤(할리퀸)은 그러한 기대를 가진 이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아서 플렉에게 다가가 그에게 조커가 되기를 종용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 또한 내내 그러한 기대를 감출 수 없다. 결말에 이르러 기대를 배신했다는 것을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마치 관객에게 "지금까지 대체 어떠한 망상에 사로 잡혔었나?"라고 묻는 듯하다. 관객은 영화를 모두 보고 난 이후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설교처럼 느껴져 기분이 나쁘다.
관객은 총 세 번 배신당하는데 먼저 범죄 영화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속성, 두 번째로 그동안 조커 캐릭터에 쌓인 스테레오타입, 마지막으로 아서 플렉이라는 캐릭터 자체에 가졌던 연민이다.
<폴리 아 되>는 아서 플렉이 조커가 아니란 것을 받아들이고 그를 아서 플렉 그 자체로 바라보아야만, 비로소 재밌어지는 영화다. 그러나 이는 조커 영화에서 '조커(JOKER)'를 빼라는 식이니, 김이 샐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두 개의 단어가 대치되는데 바로 '산'과 '사랑'이다.
산은 신화적인 맥락에서 주로 영성, 신성과 비교된다. 특히나 기독교 기반 문화에서는 믿음과 연결 지어진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산으로 데려가 번제로 바치려 하고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산에서 여호와를 만난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서도 믿음과 신앙의 결과로 산이 언급된다. 그 외 많은 문화에서도 산은 신성에 도달하기 위해 시험대와 같은 것으로 표현된다.
리퀸젤이 말하는 "산을 쌓을 것이다"는 표현은 조커와 함께 고담시에 어떠한 신성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말을 의미한다. 우리는 전편 <조커>에서 아서 플렉이 신성화되는 것을 보았다. 파괴된 경찰차 안에서 꺼내진 아서 플렉은 마치 부활하듯 일어나, 춤을 추고 팔을 양 옆으로 벌린다. 마치 예수처럼 보인다.
이러한 리퀸젤의 기대가 담긴 모습은 둘의 첫 앙상블에서 볼 수 있는데, 'Get Happy'를 부르던 두 사람의 입이 "Get ready for the judgement day"에서 끝난다.
여기서 리 퀸 젤과 아서 플렉이 원하는 바가 처음부터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아서 플렉은 계속해서 모성을 갈구한다. 아서가 사랑에 빠지는 여성 캐릭터는 아서를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이해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것을 의미한다. 아서는 어머니에게 인정받지도 이해받지도 못했다. <폴리 아 되>의 변호사는 아서 플렉과 조커 양자 중 아서 플렉만 받아들였다.
재미있게도 호아킨 피닉스는 최근 두 개의 영화에서 연약한 남성성을 가진 두 개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폴리 아 되>의 아서 플렉과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보는 모성 결핍, 내재된 폭력성을 모두 가진 인물들이다. 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주요 원형으로 쓰였다.
자신의 농담과 그림자 모두 이해해 주는 여성 리퀸젤이 등장했고 아서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첫 앙상블에서 'Get Happy'를 부른 것은 상징적이다. 아서는 사랑에 빠지는 한편, 리는 신성에 한 발 다가가게 된 장면이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설명되지는 않지만, 리가 아서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는 것 또한 신화적인 의미를 띈다.
애초에 산을 쌓을 생각 따위 없었던 아서는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깨닫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서는 사랑이 깊어질수록 조커를 버려야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조커는 아서에게 남은 사랑이 모두 소진되어 나타난 화신이기 때문이다.
<조커>와 <폴리 아 되> 연작은 수미상관을 이루는데, 두 작품을 연이으면 아서 플렉으로 시작해 '조커'로 상승해 ‘아서 플렉'으로 하강하는 이야기다.
영화 <조커>하면 떠오르는 주요 상징인 계단이 <폴리 아 되>에서도 엔딩 부근에 등장하는데, 아서가 조커로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이 아서로 계단을 오르는 아서로 대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계단을 오르는 자는 항상 아서 플렉이며, 이때 아서는 조커(환상)가 없기에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아서는 코미디언, 광대(신성)로써의 가치를 잃었고 할리퀸(대중)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없음을 말한다.
전작 <조커>가 코미디로 인물의 비극을 부각했다면, <폴리 아 되>는 뮤지컬을 선택했다. 토드 필립스 감독 인터뷰에서 짐작하건대, 전작 <조커>에서 아서 플렉이 가지고 있던 내면의 음악이 <폴리 아 되>에서 사랑을 만나며, 강렬하게 꽃핀 것으로 보인다.
아서라는 캐릭터라면, 이렇지 않을까?라는 감독의 상상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아서의 뮤지컬은 교도관 재키(아서를 음악 수업에 등록하는 인물)의 부추김에서 시작된다. "모두가 널 스타로 생각하잖아", "여전히 네가 스타 같아?"라는 말이 끝난 후 <조커>의 상징적인 스코어 프랭크 시나트라의 'That's Life'가 재생된다. 이후 아서의 행동들이 뮤지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아서의 뮤지컬(망상)은 단순한 부추김에서 시작되고 아서 플렉이 가지고 있는 유약함이 기저에 있다. 그가 '해피'라고 불려서 코미디언을 꿈꾼 것과 비슷하다.
또한 뮤지컬은 많은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에 부합해, 사랑 이야기를 하기에도 적합하다. 아서와 리의 불협화음을 강조하기에도 충분하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리는 권력에 대해, 아서는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의 재치에 감탄했으나,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것도 이해된다. 뮤지컬 장르 자체가 워낙 호불호가 심하기도 하고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의 판타지를 충족하기 어려워 보이는 연출과 이야기였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