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이유
프롤로그
나는 중학생 때 전혀 공부를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전교생 330명 중 310등, 이것이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 나의 중간고사 등수였다. 이 결과를 가지고 감히 내가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중학교 1학년 때 성적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비슷하게 처참한 등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나를 부모님께서는 늘 못마땅해하셨다. 베이비 붐 세대이신 우리 부모님께선 그 당시 대학 입학은 곧 취업이라는 말이 통했던 시대에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두 분 다 대졸자라는 엄청난 스펙의 소유자였다. 그런 부모님의 입장에서 뒤에서 세는 등수가 더 빠른 자식 놈이 과연 성에 차셨을까? 지금 내가 생각해봐도 나는 마음에 들만한 자식은 아니었다. 그래서 집에서 나는 툭하면 부모님께 구박이나 받기 일쑤였고, 뭘 해도 '니가 그걸 한다고?', '차라리 이럴 거면 자퇴해라.'는 소리를 질리도록 들으며 살았다.(당시에는 중학교도 자퇴가 가능했다.) 부모님 입장에선 답답한 자식 놈 정신 좀 차리라고 쓴소리 하신 것일 수도 있지만 내 입장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저런 소릴 듣다 보니 내가 집에서 없어지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란 생각을 하루에 수십 번씩 하고 살았다. 그런 상황에서 공부가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다가 3학년이 된 어느 날,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친구를 우연히 만나 진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친구 : 야, 니는 고등학교 어디 갈 건데?
나 : 난 모르겠다. 어차피 성적도 안 되는 거 아무 데나 갈랜다.
친구 : 그러지 말고, 니도 같이 인문계 가자.
친구의 '니도 같이 인문계 가자.' 저 말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 말이었을까? 저 말 한마디에 내 안에 뭔가가 올라왔다. 그러고 나도 인문계를 가야겠다는 생각과 이제라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이제 공부하겠다고 선언을 하였지만 지금까지 내 전적으로 봐서 그 말을 믿어주실 리가 없었고 오히려 그냥 포기하라는 소리만 듣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내 결심은 굳었고,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던 나는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일단 나는 최하위권에 속하던 학생이었던 만큼 3학년 첫 번째 중간고사의 목표를 평균 70점으로 잡고 공부를 하였으나 나의 평균점수는 겨우 58점이었다. 목표치 달성도 못했고, 낮은 점수였지만 이전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었고, 수치로만 따지면 평균점이 2~3배는 오른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작은 성취감이 생긴 덕분인지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고, 계속 노력한 결과 나의 평균점수는 1학기 기말고사 66점, 2학기 중간고사 69점이 되었다가 마지막 시험인 2학기 기말고사에는 79점이라는 당시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높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성적처리가 모두 끝나고 결과적으로 내 중학교 졸업성적은 편차 등급 80프로라는 하위 등급이었다. 이 성적으로는 도저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었지만 오기가 생겨 인문계에 원서를 넣었고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 추가모집을 하는 실업계 고등학교(요샛말로 특성화 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어야 했지만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 내가 원서를 쓰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당시 추가모집을 위해 우리 학교에 와 계셨던 실업계 고등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그 자리에서 원서를 쓴 것이 내가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계기였다.
결과적으로 인문계를 가지 못했단 이유로 부모님께 '그것 봐라. 니가 뭘 하겠냐?'는 식으로 무시당했기에 마음은 착잡하고 기분도 안 좋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방법은 없었기에 앞만 보겠다고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상태였다. 그때부터 나는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이라는 생각을 갖고 앞으로 내 미래를 위해 중학생 때보다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다짐을 되새기면서 나는 그렇게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