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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희 Dec 01. 2022

8. 필기면제자검정(의무검정)

특성화고를 나왔다는 증빙자료

 특성화 고등학교는 전문 기술을 배우기 위한 학교이므로 학생들에게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의 경우 필기면제자검정, 일명 의무검정이라 하여 국가기술자격법 시행령 제16조에 의거하여 전공 관련 자격증 한 종목을 필기시험을 면제받고 실기시험만으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대부분의 일반계 고등학교는 수능을 위해 달려가지만 특성화 고등학교에서는 의무검정을 위해 3년을 달려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의 입장에선 하기도 싫고 자기 인생에 쓸데없어 보이는 자격증을 왜 따야 하냐고 생각하여 매년 불만인 학생들이 있지만 교사이자 인생 선배의 입장에선 특성화고 졸업해놓고 자격증 하나도 없으면 대체 학교를 뭣 때문에 다닌 것이며, 그런 본인이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정말 그 자격증이 필요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마당에 해 줄 수 있는 이런 것이라도 챙겨주려고 불만인 학생들 달래고 혼내고 지지고 볶고 해서 어떻게든 의무검정 하나만은 챙겨주려 노력한다.


 내가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공통된 점은 뭔 짓을 해도 죽어도 안 하는 학생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교사로서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정말 죽어도 안 하려는 학생은 무슨 짓을 해도 안 하더라. 나의 학창 시절 같은 반이었던 친구 한 명은 의무검정 시험이 다가오자 하루가 멀다 하고 나에게 자긴 의무검정 안 할 거라며 '이게 인생에서 어디 쓸데가 있냐?'는 불만을 쏟아냈다. 나는 그 친구를 설득하며 '그래도 남들도 다 하는 건데 니만 안 하면 결과적으로 니만 딸리는 거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으나 이 친구는 진짜 죽어도 안 할 기세였다. 내 모교는 의무검정으로 '전자기기기능사'를 취득하였는데, 이 종목은 납땜으로 회로기판을 만드는 종목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부품 하나를 꽂는데 한 시간이 걸릴 정도로 하기 싫어했다. 어느 정도로 안했냐 하면 이 친구를 합격시키려 담임선생님께서 이 친구만 학교에 남겨서 1대 1로 밤늦게까지 며칠을 지도하였으나 끝내 담임선생님께서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안 했었다. 결과적으로 그 해 의무검정은 그 친구 한 명 불합격하였는데, 남들 다 기록된 전자기기기능사 자격증조차 이 친구는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지 못하였다. 본인은 없어도 상관없다고 하였지만 남들이 봤을 때 상대적으로 모자란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다른 사례로는 내가 담임을 맡았던 제자 중 한 명의 이야기인데, 이 친구는 태권도를 하는 친구였다. 이미 고등학생 때 태권도 4단이라 하였고, 자신은 졸업 후에도 태권도로 나갈 것이니 의무검정은 안 하겠다고 주장하였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전기기능사'를 의무검정으로 하고 있는데, 나는 이 학생을 어르고 달래고 혼내고 해서 어떻게든 의무검정만은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했고, 이 학생도 동의를 했으나 결과적으로 의무검정 시험 당일 얘는 시험장에 들어가자마자 기권하고 집에 가 버렸다. 그 후 재도전하지도 않으려 하였고, 심지어 3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11월부터는 자신은 태권도로 진로를 결정했기 때문에 태권도장에 나가야 하므로 학교를 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학교를 아예 오지 않았다. 이 학생은 결과적으로 생활기록부에서 3학년 때만 무단결석 40일이 기록되었다. 다행히 태권도 관련 학과로 대학은 진학하였고, 졸업 후에도 한번씩 연락이 오며 대회를 준비한다느니, 지도자 과정을 할 거라느니 자신 있게 이야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이 학생에게 연락이 왔었다.


상진 : 선생님, 저 상진입니다.


나 : 어, 그래. 상진이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상진 : 네, 선생님. 저 취직했습니다.


나 : 그래? 이야, 잘됐네. 어디 취직했어?


상진 : (이름 대면 나름 알법한 회사) XX회사에 취직했습니다. 면접에서 생활기록부 보더니 왜 이렇게 결석이 많냐고 물을 땐 진짜 걱정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다른 회사는 다 떨어졌지만 여기는 붙었습니다.


나 : XX회사? 야, 근데 너 태권도로 나갈 거라고 했었는데, 어쩌다가 그 회사에 취직했어?


상진 : 네, 그게 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태권도로 나가려 했는데 제가 몸을 다치고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학교에서 제적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취직해야겠단 생각이 들어 이 악물고 공부해서 전기기능사랑 실내건축기능사 자격증 따서 이 회사 왔습니다.


나 :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어쨌든 열심히 해서 취직한 건 축하한다. 근데, 니도 니 인생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만, 결과적으로 잘됐으니 하는 말인데, 이럴 거 같았으면 그냥 학교 다닐 때 의무검정으로 전기기능사 땄으면 이득이었잖아? 실기 준비하려면 학원 다녔을 건데 학원비도 아꼈을 거고.


상진 : 전기기능사 실기 학원만 몇십만 원 했습니다. 진짜 제가 왜 의무검정 안 했을까요? 그땐 진짜 너무 하기 싫었는데 이제 와서 따려고 공부할 때 진짜 후회 많이 했습니다.


나 : 그렇다니깐.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으니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할 수밖에 없는 거야.


상진 : 이제야 선생님들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진보와 보수의 관계라고 하던데, 교사와 학생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학생 입장에선 한번뿐인 내 인생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멋지게 살고 싶으니 학교에서 억압받고 지시받는 것이 마냥 싫고 자기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교사의 입장에선 그런 학생 한 두 명 본 것이 아닌데 결론은 공부 잘하는 게 성공할 확률이 높더라 라는 것을 이미 겪어서 알고 있으니 그나마 확률이 높은 방법을 추천할 수밖에 없지만 학생들은 그걸 모른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맨날 갈등이 벌어진다. 아무튼 특성화고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당장 하기 싫더라도 최소한 의무검정으로 자격증을 하나라도 취득하는 것이 그나마 자신이 어디 가서 '나 특성화고 나왔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니 마냥 싫다고만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당장 이 자격증 어디 쓸데가 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인생은 어떻게 굴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도움이 되니 마니 따지지 말고 일단은 해 놓는걸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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