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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쩔기자 Apr 30. 2023

한달에 150만원 영어유치원에 다닌다는 것의 의미

경제기자 엄마의 돈 되는 잔소리⑤

네 친구 혜인이는 영어책을 줄줄 잘도 읽더라.     


혜인이네 집에 놀러갔다. 혜인이, 너, 수지 삼총사가 오랜만에 한 집에 모였지. 너희들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부터 함께 만났다. 그게 벌써 8년 전. 구에서 무료로 열어줬던 모유수유 교실에서였지. 우리는 그곳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젖을 잘 물리고 잘 짤 것인가, 유방을 통해 나오는 모유가 아기에게 얼마나 중요하며 수유를 할 때 어떤 자세가 좋은가에 대해 배웠다. 널 뱃속에 두고도 아가씨 태를 벗지 못했던 나에겐 좀 낯설었던 이야기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의 엄마로 맺은 첫 인연이었지.     


우리 중 혜인이 엄마는 사교육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네가 일반 유치원을 졸업한 것과 다르게 혜인이는 한 달에 백만원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하는 영어유치원을 졸업했다. 너와 수지가 발가벗고 욕조에 들어가 신나게 노는 동안 혜인이 엄마는 우리 앞에서 혜인이 영어실력을 선보였어. 원어민 같은 발음으로 영어책을 줄줄 읽어 내려가는 혜인이를 보며 "아, 이래서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구나!"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네가 유치원에 들어간 순간부터 말로만 듣던 사교육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네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시기, 대기업 사람들이나 기자 선배들을 만나면 으레 사립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주변엔 무상교육이 무색하게 사립초에 자식을 보내기 위해 일 년에 몇 천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때 알았지. 사립초를 위해 큰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더라고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운 좋게 추첨에 통과한 아이들에게만 사립초에 입학할 기회가 돌아간다는 것을.      


애한테 그렇게까지 돈을 써야 해?     


누군가는 말한다. 그런데 원어민 강사들이 배치되고, 개인별 악기를 하나씩 마스터 하며, 사립초를 보낼 정도의 재력을 갖춘 부모를 둔 아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사립초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돈만 있다면 너에게 그런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내 맘이다.     


얼마 전 한 기사를 봤다. 대치동 한 유학원. 강남에 돈 있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미국 유명 대학교로 유학을 위해 이 유학원에서 컨설팅을 받는다. 컨설팅 업체에서 1억원 넘는 돈을 지불하면, 유학가길 원하는 학교에 맞춰 아이 포트폴리오를 관리해 준다. 예를 들어 교수 논문에 공동 저자로 몇 회를 넣어주고, 입시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상장을 수여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식의 관리지. 입시 과정에 맞춰 딱 맞는 컨설팅을 제공해 주는 곳.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때 난 참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뭐에 홀린 듯 공부를 했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는 학생이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의아해 했다. "쟤는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왜 성적이 항상 제자리지?". 그게 나도 의문이었어. 공부에 대한 열정은 있어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었지만,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 지 알지 못 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나를 완벽하게 가이드해 줄 선생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숱한 실패를 거치고 결국 운좋게 수시로 간신히 원하는 대학 문턱을 넘었다.      


입시에 딱 맞춰 컨설팅을 해 주는 유학원 기사를 보고 고등학교 때 내가 했던 노력과 실패들이 뒤늦게 허무해 졌다. 그 때도 내 주변에 있던 누군가는 돈을 지불해 값비싼 컨설팅을 받고 효율적으로 대학 문턱을 넘는 영리한 노력을 했겠지. 내 부모의 재력으론 감당할 수 없는 또 다른 세상 속에서 말이야.      


그리고 또 이런 생각도 했다.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이 좋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스스로의 삶을 끌고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스스로 방향성을 세워 노력을 하고 숱한 실패와 좌절을 거쳐 다시 일어서는 힘은 누군가의 가이드만으로 키워질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어디까지 널 사교육에 노출시켜야 할까.     


널 어디론가 교육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로 유학 보낼 수 있는 재력이 없는 한 널 한국사회에서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이 곳에선 사교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사교육 탓에 네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도, 남들보다 너무 뒤쳐지지 않게. 그 적당한 선이 어디인지 사실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대쪽 같은 교육관? 생에 엄마 노릇이 처음인 나에게 그런 것은 없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업으로 하는 만큼 뚫린 귓구멍에 너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유혹하는 정보가 들어올 때면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리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혼란이 너에게까지 미치지 않도록 내 스스로 노력하는 중이다. 널 사교육에 너무 노출하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지. 물론 이 마음이 언제 또 출렁일 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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