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마음훈련 ver.1을 20까지 쓰고 마무리 지으려다
20은 도무지 어떻게 써야 할지 어려워 19로 끝을 냈다.
미발행된 20은 여전히 저장글 목록에 남아있다.
20에 담고 싶었던 이야기는, 신혼여행 중에 맞닥뜨린 상실감인데 이걸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내 바보 같은 모습이 잔뜩 담겨있어 누군가 손가락질을 할 것만 같았다. 꼭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두려운 마음에 꽁꽁 숨겨놓게 되었다.
요리하기 나름인 글이라지만, 재료는 어쩔 수 없이 내 삶이다 보니 입맛에 맞지 않는 누군가에겐 괴식이 되고야 만다.
내 글을 한 입 맛본 이가 혹여 얼굴을 찡그리진 않을까,
그의 손가락이 내 글에 대해 별점 1점도 아깝다는 평을 내리진 않을까, 그런 것들에 대한 부담감에 서둘러 마음 훈련 ver.1의 문을 닫았다.
마음 훈련 ver.2의 문이 쉽사리 열리지가 않는다.
살아온 삶에 대해 어떤 날은 대견하면서도 어떤 날엔 엉망진창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꼭 오늘 같은 날이다.
앞으로의 삶도 엉망진창이면 어쩌지?
사실 엉망진창인 적은 없었다.
앞으로의 삶도 엉망진창일리 없다.
실타래가 꼬인 것 같은 느낌은 받을 수 있어도 실타래가 꼬였다는 것은 어느 시점엔 결국은 풀리게 되어있다는 말과도 같다. 꼬였다는 건 풀린다는 것이다.
내 삶도 그렇게 탁 하고 풀릴 것이다.
누군가의 실타래는 거의 꼬이지 않았고
누군가의 실타래는 도무지 풀 수 없을 만큼 꼬였다.
나의 삶은 후자에 좀 더 가까웠던 것 같지만
힘들었던 24년을 지나며 이미 풀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토록 유쾌하고 찬란한 내 인생!
아무쪼록 삶을 평가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한 글자 한 글자 쓰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그것이 브런치 마을 (아헤브 작가님이 쓰신 이 표현을 좋아한다.) 산책을 한동안 멈춘 이유인 것 같다.
연재 종료 후 가끔씩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기도 하고, 몰래 읽고 좋아하는 마음만 슬쩍 흘려보냈다.
그러다 무기력해진 마음이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아침에 남편이 일에 지쳐 삶에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얘기했을 때 ‘난 진작 삶에 희망이 없었어.’라는 모난 소리를 강스파이크로 던졌다.
삶에 희망이 없음을 논하는 갓 결혼한 신혼부부라니.
우리는 여전히 신혼집을 구하지 못했고 살림을 합치지 못했다. 그와 나는 각자의 일이 점점 더 바빠져 연애 때보다도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하지 못하고 있다.
스트레스로 수면의 질은 떨어지고 꿈은 매섭다.
내 주특기인 유쾌한 기쁨과 감사가 줄었다.
‘삶이 엉망진창이다.‘
라는 생각으로 잠든 어젯밤이 오늘 아침 치과진료를 취소하게 했다. 그리고 늦잠이나 더 자야지 싶었던 계획이 틀어졌다.
오랜만에 브런치 마을 산책을 가고 싶어 졌기 때문에.
브런치 마을은 여전히 따스하고도 포근하다.
감감무소식인 나의 안부를 묻고 안위를 걱정해 주는 작가님들과, 작가님들이 꾸준히 남겨두신 개성 넘치는 글의 발자취가 또 하나의 커다란 위로가 된다.
사실 내 삶은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안다.
얼마 전 남편과 나눈 대화는 ‘있다가 없어지는 상실’보단 ‘없다가 있어지는 기쁨’이 더 재밌지 않냐는 것이었다.
‘삶에 희망이 안보이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적어도 재밌고 따뜻할것 같아. 그렇게 살다보면 그게 희망이지 뭐.’
라는 수줍은 톡으로 아침에 남편에게 마구 던졌던 모난 말을 수습했다.
삶의 모양은 각기 다른데 사람들은 자꾸만 틀을 정해놓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평을 내리고 훈수를 둔다.
네 삶의 모양은 그렇구나? 독특하고 예쁘다!
내 삶은 이런 모양이야. 역시 귀엽지?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몇 자를 끄적이니 다시금 마음 청소가 되는 기분이다.
치과진료와 늦잠 대신 대뜸 글을 쓰길 잘한 것 같다.
무기력한 마음에 잠시 문을 닫아두었던 브런치 마을의 작은 내 집.
그간 이 집에 쌓인 먼지를 털고 삐그덕 문을 열어본다. 다시 한번 무식하게 용감해질 용기가 필요하다.
안녕, 이곳은 내 집이야.
작지만 안락하고 따스해.
꽃향이 나는 차를 한 잔 내어줄까?
내 삶은 이런 모양이야. 역시 귀엽지?
네게 소소한 웃음을 건네줄 수 있을 거야.
또 놀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