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 이상한 스티커 붙이고 다니는 아저씨들

이제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by 집사가 되고싶다

그 옛날 PCS폰 시절부터 거의 20년 가까이 핸드폰을 쓰고 있지만

내 핸드폰에 스티커라는 '이물질'을 붙어있는 경험은 처음이다.


어느 날 5살짜리 딸이 내 핸드폰 뒤에 스티커를 붙여줬다.


반짝이는 별 모양, 다이아몬드 모양, 하트 모양 등

여러 스티커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붙여줬다.


KakaoTalk_Photo_2026-03-25-09-59-51 001.jpeg 나와 비슷한 상황의 아내 핸드폰.jpg


직장에서 멀쩡해 보이는 선배나 동료가

핸드폰에 기괴한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은 저걸 왜 붙이고 다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심지어 90kg이 넘는 거구의 아저씨가

손톱에 분홍색 별 모양 스티커를 붙인 모습을 보기도 했다.


'저 사람은 무슨 사연이 있을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답은 항상 같았다.

어젯밤에 딸이 붙여준 거라고.


나도 언젠가 저런 날이 오겠지?

근데 나는 내 폰에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게 정말 싫은데..

라고 생각하면서 은근히 그런 날이 오길 기다렸다.


그 날이 드디어 왔다.

"아빠 이거 절대로 떼면 안돼!"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스티커들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떨어뜨리거나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어떤 날은 퇴근할 때 핸드폰을 보니 스티커 하나가 없었다.

하트 스티커 하나가 덜렁거려서 책상위에 떼어놨는데 그대로 두고 나왔다.


또 어떤 날은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스티커가 사라진 걸 발견했다.

또 그놈의 하트 스티커가 덜렁거려서 내 손가락에 붙어두고 있었는데,

전화를 받다가 어디엔가 떨어뜨렸던 것이다.

다행히 전화를 받았던 지점까지 다시 돌아가서 바닥을 샅샅이 뒤져서 찾아냈다.


핸드폰 케이스를 바꿀 때도

그 스티커들을 조심스럽게 떼어서 똑같은 위치에 다시 붙였다.

딸이 처음 붙여줬던 그 자리 그대로.


며칠 전 딸에게 물어봤다.


"아빠한테 붙여줬던 그 스티커들 기억나?

아빠가 아직도 엄청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


딸의 대답은 간단했다.


"어떤 스티커? 아빠 어떤 스티커 말하는 거야?"


순간 멍...........했다.


나에게는 그토록 소중한 것들이 딸에게는 그냥.. 잊혀진 일상 중 하나였나 보다.


허탈했다.

동시에 헛웃음이 나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가 부모에게 갖는 마음 사이에는 이런 격차가 있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방적이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그런 사랑.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종종 온다.

내가 감동받은 일을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소중하게 간직한 것을 아이는 무심하게 지나친다.


물론 반대로 아이 입장에서도 그런 것들이 있겠지.


그게 육아의 매력이자 재미이자 허탈함인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경험들을 더 하게 될 테고,

나는 그것들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지금도 내 핸드폰 뒤에는 딸이 붙여준 스티커들이 있다.

물론 딸은 이제 그 스티커에는 관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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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을 적고 4일 뒤 업데이트.

스티커가 사라졌다. 심지어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떠나갔다. 내 폰에서도. 내 마음에서도.

오히려 후련하다. 잘가라. 잘갔다.


(설마 어느 날 갑자기 스티커 어디갔냐고 물어보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