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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쥐 Oct 19. 2024

에필로그 1 사라져라, 눈썹!

폭염 경보 발효 중. ▲ 낮시간 논, 밭, 건설 현장 등 야외활동 자제, ▲ 폭염 안전수칙(물, 그늘, 휴식) 준수 등 건강관리에 유의 바랍니다.


휴대폰에 뜬 재난 문자.

길어진 장마가 끝난 뒤 전국에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햇빛이 쨍쨍해서 그런가? 우리 집 기상청인 할아버지는 요새 잠잠하다.

아니, 잠잠하다 못해 할머니와 비교적 사이가 좋다. 우린 갑자기 찾아온 이 평화에 어리둥절하다.


아빠, 막내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차 안.


나 "아빠, 요즘 할아버지 엄~청 조용해. 할머니랑 맨날 둘이 붙어서 티브이 봐."


아빠 "아, 며칠 더 지켜봐야지! 어제오늘 좀 괜찮았다고 괜찮아질 양반이냐? 그 양반이!"


나 "할머니가 죽기 전에 우리 잘 지내다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한 게 진심으로 통한 것 같기도?

     아무튼 할아버지도 결국 사랑이 필요한…"


아빠 "야! 너네 할아버지 더위 먹은 거 아니냐?"


막내 "오~ 제일 그럴싸해."


나 "아, 진짜!!"


누가 그랬던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게다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이렇게나 잠잠한 하루들이 계속되니 이전에 써놓은 글들이 아니라면 엄마나 할아버지는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리고 돌아온 평화로운 일상들 가운데 나는 피부과에 가서 망해버린 눈썹문신을 지우고 있었다.


나 "야! 출국 전에 한번 더 눈썹 문신 지우러 갔다 올까?"


막내 "피부과 갔다 온 지 얼마 안 됐잖아."


나 "그렇지, 한 달에 한 번 밖에 못하긴 하는데. 회복이 좀 빠른 거 같기도? 출국하면 한동안 못 오니까."


누워서 휴대폰을 하던 막내가 툭! 한 마디를 던졌다.


막내 "정신 차려라.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지 말고"


나 "미친!"


눈썹문신도 예뻐지고 싶은 욕심에 망했었는데 이번엔 지워서 예뻐지려는 욕심에 망할 뻔했다.

평화로운 이 일상도 욕심내지 않았을 때 우연히 찾아온 것처럼, 감사하며 살아야지.


아무튼 그래서 나는 초가삼간을 태우지 않기 위해 벼룩만 한 눈썹문신을 남긴 채로 떠난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 집에 평화와 안녕이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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