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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쥐 Oct 12. 2024

부치지 못한 편지

안녕하세요.

먼저 신부님과 성당 교우분들께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 미사 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덕에 우리 가정이 더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아픈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나 자랑도 아니기에

묵묵히 우리 가정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이 시련은 우리에게 조금은 힘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태산 같던 아버지가 어느덧 70을 바라보며 흰머리가 희긋한 노인이 되어버렸고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아픔을 지켜보았던 막내 동생은

더 이상 그 아픔에 아파할 여유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성경에서 시키는 말씀 그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거짓말은 절대 안 되거니와, 자기도 돌보지 않고 남을 먼저 도울 때는 딸로서 화가 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 또한 신앙이 있기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불행에 때론 잠 못 이루던 밤도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고 있을 때,

여러분의 따뜻한 눈빛과 안쓰러움에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묻고 싶으나 차마 묻지 못하는 여러분의 마음도 감사히 받았습니다.

물으셔도 자세히 대답할 수 없었던 저희를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는 게 곧 천국이고 지옥이라.

누군가에게는 천근만근 같지만

그 시간을 여러분과 함께 보냈기에 이만큼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 전하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그래도 더 빨리 나아진 건, 

그리고 신이 나서 성당을 다녔던 건

가족들의 사랑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OO(엄마 세례명)이가 잘한다, OO이 착하다, OO이가 이걸 할 수 있다고

북돋아 주셨던 여러분의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여러분이 우리에게 해주셨던 것과 같이

언젠가 여러분의 인생에서 홀로 견디기 힘든 고비가 생겼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엄마에게 한 일을 보시고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다시 일어날 힘을 주시길 우리 가족 모두가 소망합니다.


우리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감싸 안아주신,

공동체의 사랑 속에서 저희 엄마가 회복됐음을 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제 진심이 전해졌길 바랍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에게 평안이 깃들길 바라며,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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