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낭독일기> 슬로 리딩에 도전하세요
"무료특강, 재원생과 재원생의 동생까지 선착순 150명 모집합니다."
뭐길래 동생까지 무료특강을 해준대? 하는 궁금증을 일으킨 문자는 다름 아닌 영어학원 문자였다. 그것도 지금은 웬만한 아이들은 모두 한 번씩 거쳐가는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대형 학원. 요이땅과 동시에 수강신청이 끝나버린다는 곳이다.
특별히 더 홍보가 필요하지 않은 학원에서 무슨 무료특강씩이나 할까, 싶어 열어본 문자에는 원장선생님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책을 읽지 않아 배경지식이 없는 아이들에게 독해보다 배경지식 쌓기가 우선인 거 같아서 문해력 수업을 특강으로 개설했다는 것이었다. 커리큘럼을 대충 훑어보니 서양 철학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학원을 다니는 아이도 종종 여기가 영어학원인지 국어학원인지 모를 정도로 지문내용에 관한 수업이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마도 그 연장선이었나 보다. 영어 지문에 많이 나오는 필수 비문학 내용들을 요약해서 알려주겠다는 것. 이렇게라도 배경지식을 좀 쌓으라는 권유. 이번만 무료라니 시간만 괜찮다면 신청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특강 문자 한 통이 꽤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문해력 문제, 배경지식 부족 이 모든 게 결국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현실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하긴 아날로그세대인 나조차도 요즘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해지는데 아장아장 걷던 시기부터 스마트폰과 함께 커온 아이들의 집중력은 말해 뭐 할까. 긴 글을 집중해서 읽기보다 짧은 글을 쓱 읽고 빠르게 넘기는 습관이 일상이 된 지금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에게 낭독을 한번 시켜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통째로 한 권 읽지 않더라도, 글자를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는 경험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천천히 읽고, 음미하고, 들어야 하는 방식이 지금 시대 아이들의 얇아진 집중력을 회복하는 데 좋은 훈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천천히 책을 읽어보는 게 수백 장의 자료를 휘리릭 읽히는 것보다 오히려 더 효과적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오픈채팅방에 교재로 올려주신 백몇십장의 PPT를 보곤 할 말을 잃었다.)
낭독은 정말로 글자를 하나하나 천천히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낭독가들의 음성을 듣다 보면 그들이 곧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책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된다. 어쩌면 낭독으로 책을 한 권 읽는다는 것은 빠른 속도가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일일 것이며 독서의 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쓸데없는 작업일 수도 있겠지만, 낭독으로 책을 한번 읽어보면 느리게 읽기가 왜 중요한지 새삼 알 수 있다.
낭독은 '느리게' 읽을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일단 낭독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작업부터가 그렇다. 낭독을 하기 전에는 늘 척추를 세워 바르게 앉게 되고, 단전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입 속 공간을 늘리고 단전에서부터 호흡길을 열어 허밍으로 성대의 긴장을 풀어주는 시간을 갖는다. 시작한다고 해서 빠르게 글을 읽어나가는 것은 아니다. 차분하게 글의 리듬을 찾기 위해서 쉬어가는 시간이 꼭 필요하고, 문장 사이사이와 문단 사이사이에서도 침묵이 필요하다. 그렇게 읽어 내려가는 낭독의 시간은 차분하고 평화롭다. 마치 명상과도 같다.
나의 낭독모임에는 사서 선생님과 독서 선생님, 특수교육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 등 다양한 선생님들이 함께 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치유의 시간이 가지고 싶어서 신청하신 분들도 있지만 이 낭독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신청하신 분들도 많다. 처음엔 교사가 아무리 권유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과연 낭독을 하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엔 집중력이 떨어진 이 시대에 낭독이 어쩌면 책을 읽힐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낭독의 또 하나의 좋은 점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며칠 전 낭독수업 초급반을 마치며 초보 낭독가들과 함께 <초급반 낭독회>를 가졌었다. 한 주 전에 오프모임을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서인지 줌 낭독회였지만 서로를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줌 낭독회라는 것이 참 희한하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여러 명의 낭독가가 책을 읽어주는데 자막 없이 그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두 시간을 매 순간 집중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의 낭독에 귀 기울여본다는 것은 단순히 대화를 하고 목소리를 듣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었다.
아마 대상이 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낭독가의 육성을 통해 전해지는 텍스트가 눈으로 읽었을 때보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요즘 새삼 느림의 가치를 생각해보고 있다. 벽돌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낭독으로만 책을 읽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책 속으로 깊이 빠지기에 낭독은 좋은 마중물이 된다.
이유 없이 불안하고, 쫓기듯 바쁘고 무기력이 수시로 찾아온다면 내 영혼이 가장 좋아한다는 내 목소리(성우 송정희 선생님은 낭독을 치유의 시간이라고 칭했다.)에 귀를 기울여보는 낭독의 시간을 가져볼 것을 추천한다. 아이가 엄마 목소리에 안정을 찾듯 불안한 내 마음이 차분한 내 목소리에 어느덧 안정을 찾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