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아이, 학원 순례중에 들은 말
"아, 조금 늦었네요. 다들 초6이나 중1에 끝내는데."
중3 올라가는 사춘기 딸아이의 학원 순례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이제 고등학교 준비를 슬슬 할 때가 된 것 같아 나름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움직인건데, 들려오는 이야기라고는 온통 "늦었네요, 아쉽네요, 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텐데" 일색이다.
듣고 있는데 이상하게 익숙했다. 2년 전과 데자뷰인 거다. 똑같은 이야기를 2년 전, 초등학교 졸업한 아이와 중학교를 대비해 대형 수학학원 갔을 때 들었었지 아마.
잘하고 있겠거니 했다. 동네 작은 학원에서 선행도 했고 학교에서도 성실한 아이여서 크게 걱정하고 키우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 중학교에 갔으니 동네에서 제법 내로라 하는 대형학원에 가보자, 그래도 큰 물(?)에서 놀아야 나름 경쟁력도 생기겠지, 하는 마음에 별 걱정 안 하고 두드린 학원 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특목 준비하는 아이들은 이미 수학 상, 하 마치고 수1 들어가요. 영재고 준비하는 아이들도 수 상하 마치고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준비반에 있고요. 수학이 늦었는데, 그럼 다른 과목들은 어느 정도 해놓으셨어요?"
뭐지? 우리 아이는 영재고 준비하는 아이도 아니고 특목고를 준비하는 아이도 아니긴 했지만, 뭔가 심각하게 잘못 한 분위기다. 일명 '영떨이'(영재고 떨어진 아이)들과 경쟁해야 해서 뒷짐지고 있을 일이 아니라는 선생님의 착실한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못알아듣겠는 걸 어쩌랴. '중학교 과정을 건너뛴 수 상하와 KMO'는 다른나라 이야기였다.
그렇게 호되게 문화 충격을 받고 중학교에 입학하려니 여간 겁이 나는 게 아니었다.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나라에 살면서, 심지어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전학 한 번 안하고 살았던 동네인데, 외딴 별에 와 있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입학한 중학교에서 아이는 즐겁게 학교 생활을 했다. 현행 과정에 맞춰 들어간 학원에서도 차분하게 진도를 맞추니 제법 선행 진도도 많이 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좀 안심이 되던 차에 이런 날벼락을 또 맞은 것이다.
이번에는 영어였다.
"요즘에는 수능영어를 중1이면 마쳐야 해요. 중2때부터 학교 시험을 보니까 수능영어를 준비할 시간이 없어요. 보통 잘하는 대치동 아이들은 초등 5, 6학년 때부터 고등영어 해서 중1에 마치고 영어는 학원 안 다니는 애들도 많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딸아이도 어릴 때부터 영어학원을 다니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그렇게 또다시 별나라로 인도되었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같은 한국 말을 쓰고 같은 동네에 살고, 전학간 적 없고, 학원 안 다닌 적 없는데 정신차려 보니 늦었단다.
그런데 이번에 받은 충격은 2년 전과는 조금 달랐다. 이젠 정말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년 전에는 어차피 사춘기도 겪어야 하니 너무 스트레스 주면 안된다는 생각과 아직 어리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래도 급한 마음이 덜했다. 지금은 웬걸 큰일났다, 싶었다.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다. 동네 엄마들과 어울리는데 소홀했던 탓에 다른 아이들의 사정을 잘 몰랐다. 갑자기 몰려온 후회에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전화기를 들었다.
역시나 미리미리 해야 될 과목들은 산적해 있었다. 과학도 미리 해두지 않으면 고등과학을 따라갈 수 없다고 했고(과학천재 영떨이들과 고등학교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무서운 괴담이 따라왔다), 요즘 당락은 어려워진 국어 시험에 있다며 국어 학원은 필수란다. 그것도 이미 초등 졸업 전에 등록을 해야지 지금은 언감생심 들어갈 자리도 없단다. 그런데 영어는 다른 과목만큼 긴박한 긴장감 같은 게 느껴지진 않았다. 한결같이 '영어는 잘하니까'라고 말했다. 역시 나만 늦었나 보다.
지푸라기도 잡지 못한 불안한 마음으로 나의 전화 돌리기는 계속되었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수없이 전화 치성을 드린 끝에 용하다는(?) 영어 과외 선생님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들 이리 기쁠 수 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대충 비슷한 대답이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일년 동안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완성된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거란다. 다만 내신을 봐줄 수가 없고 숙제량은 엄청나니 각오를 하라는 말씀.
각오는 어차피 되어 있었다. 한 과목도 놓칠 수 없었던 나는, 이 코로나 와중에 모든 학원의 등록을 완료했다. 여기까지가 내 할 일이고, 나머지는 딸아이의 몫이었다. 물론 여기에 딸아이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시간표는 내가 봐도 숨쉴 틈이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군소리 없던 딸아이의 표정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져갔다. 수학학원 진도도 만만치 않았고, 국어학원도 정말 '빡셌다'. 과학도 이해가 쉽지 않은 데다가 영어는 일주일 내내 영어숙제만 해도 모자랄 것 같았다. 예상 못했던 바 아니지만 늦었다는데 어쩌랴. 일부러 나는 모르는 척 태연하게 지켜만 보았다.
"나, 못해."
과외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이는 쇼파에 벌러덩 눕더니 오늘 과외를 빼줄 수 있느냐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하루하루가 급하다는 말, 시간이 없다는 말을 며칠 내내 학원가에서 들었던 나로서는 언감생심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뜨뜨미지근한 자세를 보이자 아이가 돌연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말 나 쉬지 않고 숙제를 했다고. 수학숙제 다하고 바로 영어 숙제 시작했는데 지문 30개 푸는 것까진 이해하겠는데, 영어단어를 하루에 어떻게 400개를 외우냐고! 나는 못해, 더는 못해!"
이 정도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었다. 당연히 이 정도로 굽힐 내가 아니었다. 이미 많이 늦었다는데 도리가 있나.
"너 늦었대. 남들보다 많이 해야 속도를 맞춘다잖아."
이 말 한마디면 될 줄 알았다. 아이든 어른이든 '나만 뒤처졌다'는 공포심은 사람 다그치는데 최고 아니던가. 주식에만 FOMO(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Fear Of Missing Out의 줄임말)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는 돌연 풀이 죽었다.
"나는 왜 맨날 늦는대? 내 인생은 왜 맨날 늦어? 나도 열심히 했는데 안 된단 말이야. 내가 노는 것도 아니고 매일매일 숙제만 하고 있는데도 나보고 늦었다고 하면 나보고 어쩌라고?"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학원가를 돌면서 들은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밀려오는 미안한 마음에 정신이 차려졌다. 아닌 게 아니라 딸아이의 이번 방학 스케줄은 사실 내가 봐도 무리였다. 이건 아이가 기적처럼 다 해내기를 바라는 나의 판타지가 만들어낸 말도 안 되는 시간표가 맞았다.
일단 과외를 미루어 놓고, 나는 다시 원점부터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지? 이렇게 해 놓지 않으면 고등학교에서 버틸 수가 없다고 해서? 아니면 엄마가 할 건 다 해줬다고 말하고 싶은 책임 회피 때문에? 못해내면 너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사실 이 모두가 정답이었다. '너의 성적은 전적으로 너의 책임'이라는 등식을 완성시키고 싶어서 벌인 무리한 일이었다. 그것도 '너의 인생을 위하여'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얹어서.
시간표를 짜주는 게 엄마 몫이 아니라, 어쩌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엄마 몫인지도 몰랐다. 내 인생도 욕심껏 살아지지 않는데 왜 남의 인생을 내 욕심껏 살려 하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다행(?)스럽게도 포기가 빠른 나는, 하루 숨을 고르고 과외를 정리하는 전화를 걸었다. 딸아이의 늦은 진도를 걱정하는 선생님의 우려섞인 경고(?)가 따라왔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나. 생긴 대로 살아야지. 쫓기듯이는 못 살겠다는데.
'그래, 우리 생긴 대로 살자. 마음 편히 우리 속도 대로 가자. 종종거린다고 더 빨리 가지지 않더라. 우리 딸 화이팅이다.'
몇 가지 과목을 정리하니 그나저나 마음은 편해졌지만, 궁금하긴 하다. 빠르면 초등 6학년에, 늦어도 중학교 1학년이면 수능 영어 마무리가 된다는 그 대치동 키즈들은 대체 어떤 아이들일까. 진짜 있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