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의 헛헛함을 버티게 해 주는 힘은 모두 다르겠지요.
"이거 둘 중에 골라봐!"
"......"
득의양양이라는 말은 이럴 때를 위하여 만들어졌나? 싶은 순간이었다. 흡사 골동품과도 같은 자물쇠, 그것도 버튼이나 다이얼의 형태가 아닌 열쇠로 여는 단단한 자물쇠였다. 그 자물쇠를 딸의 눈앞에 자신 있게 내어놓는 남편을 차마 이해할 수 없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첫째 아이와 학교 복도에 있는 사물함이 걱정된다는 이야기, 아무래도 자물쇠가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참이었다. 중학교 때 쓰던 자물쇠가 있으려나, 하고 말하던 찰나 남편이 후다닥 방에 들어가서 가지고 나온 것이 바로 그 철통같은 자물쇠였다.
그 자물쇠는 남편이 학생 때 쓰던 것인데, 물건을 함부로 쓰지 않는 남편은 자물쇠가 너무 튼튼하고 멀쩡해, 버리지 못하고 여지껏 보관했다고 했다.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구닥다리 물건이 이렇게나 쉽게 찾아질 만한 곳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그 역사와 정성과는 상관없이 너무나 무식(?)해 보이는 자물쇠는 딸에게 바로 거부당했고, 다시 남편의 서랍 어딘가로 들어가게 되었다. 저 물건이 다시 본래의 쓰임을 회복할 날이 오긴 올까?
잘 못 버리는 남편과 잘 버리는 아내
▲ 만화책 전용 책장 중학교때부터 모아온 남편의 만화책, 그 중에서도 선별된 것들만 책장에 꽂았다. 만화책 사이즈를 재서 만든 전용책장이다.
남편은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함께 살면서 몇 번의 이사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버려지고 정리되는 것은 내 물건이었고, 고스란히 자리를 지키는 것은 남편의 물건들이었다. 나는 지금 남은 내 짐들도 버거워 이리저리 버릴 궁리를 하지만 남편은 의미를 가진 물건 그 하나하나를 모두 가지런히 정리해놓는 것은 물론 그 모든 것들의 자리를 꿰뚫고 있다.
그의 수집벽은 대부분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앨범에 대한 사랑과 만화책에 대한 애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연도별로 정리해 놓은 앨범이 존재한다. 흡사 우리 가족의 기록 박물관 같다. 연애할 때의 사진과 결혼 후 아기가 하나 둘 태어날 때의 사진, 그 아이들이 커 갈 때의 사진을 연도별로 정리해 놓은 앨범은 그야말로 아날로그적 감성의 결정체다.
디지털 사진기가 없을 때의 사진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는 최근까지의 사진도 일부 현상해 앨범에 담는다. 옆에서 보기엔 꽤나 귀찮기도 하고 불필요하기도 한 일이다.
만화책도 애장품이긴 마찬가지다. 중학생 시절부터 한 권 두 권 차곡차곡 모았다는 만화책은 그 양도 어마어마하지만 얼마나 고이 보았는지 접힌 자국이나 펼친 자국도 없다. 결국 남편의 지극한 부탁으로 지난번 인테리어 공사 때, 거실 한구석에 만화책 전용 책장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이 남편의 개인적 취향이려니 했지만 이제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나중에 더 늙으면 어차피 정리해야 하는데... 남편이 아직도 물건에 애정을 쏟는 것을 보면 '노화'니 '나이 듦'이니 하는 것은 오직 나에게만 오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에 비해 나는 확실히 잘 버리는 사람이다. 나의 버림은 '공간 부족'에서 비롯되었지만 요즘은 그것을 넘어섰다. 물건에 집착하거나 물건에 의미 두지 않는다고 할까. 짐이 될까 무서워 물건을 잘 사지 않게 되었고, 아까워 쓸 수 없을 정도의 고가의 명품은 불필요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우리 집에서 내 물건이 차지하는 공간은 아주 작다. 그런데 그 가벼움도 은근 중독성이 있다. 화장대가 없어지고 난 후 여행용 파우치 하나에 모두 들어가는 화장품을 볼 때마다 그 간편함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뿐만이 아니라 신발장을 가득 채웠던 신발과 옷장을 가득 채웠던 옷가지들을 모두 정리하자 외출이 덜 분주한 일이 되었다. 그런 이유로 내 옷장엔 점점 검은색 옷들만 남아 있게 되었지만(맞춰 입고 말고 할 게 없는 간편함) 그 가벼움은 한번 맛보면 끊을 수가 없다.
필요한 물건만 남기는 일은 모르긴 몰라도 정신건강에도 좋은 것 같다. 소유하는 것이 많으면 아무래도 넉넉한 마음을 갖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말이다. '이게 아니면 안돼'라든가 '이건 꼭 있어야 돼' 같은 완고한 마음으로는 너그러운 노년의 여유를 맞이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동글동글한 노년을 꿈꾸는 나는, 그런 이유로 가벼운 삶의 장점을 권하며 살지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니 어쩔 수가 없지 싶다.
작은 소망이 유일한 사치가 되는 나이
▲ 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 방송 화면 캡처
ⓒ SBS
그러고 보니 얼마 전 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서 보았던 정재승 박사의 '사치'가 떠오른다. 그 영상에서 정재승 박사는 '책이 책꽂이에 두 겹이 아닌 한 겹으로 꽂혀 있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사치라고 말했다. 유일한 사치라. 문득 그 말이 가진 뉘앙스가 마음을 흔들었다. 유일한 사치라는 말에서 '나중'이 아닌 '현재'가 느껴진 때문이랄까.
뇌과학자 정재승에게 지금의 서재를 갖는 것이 과거의 꿈이었다면, 그 서재를 소유한 것은 현재의 유일한 사치가 된 것일지도 몰랐다. 이루고 싶었던 작은 소망이 유일한 사치가 되는 나이, 그것이 어쩌면 갱년기라는 우리네 나이가 아닐까. 만화책을 모으고 앨범을 만드는 일이 어쩌면 남편에게도 물건에 대한 집착이 아닌 '갱년기의 사치'일 수 있고 말이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비워내는 삶이 살아지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갱년기에 꼭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누군가에게는 소유가, 누군가에게는 비움이 갱년기의 헛헛함을 버티게 해주는 힘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남편의 사치를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리라. 혹시 아나? 남편에게도 정신적 노화가 찾아오는 어느 날, 나의 간편함이 부러워 하나둘 물건들을 정리하게 될지.... 무소유를 지향하는 나의 정신적 사치가 아무쪼록 그렇게 빛을 발하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