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의 봄...자꾸만 시큰둥해집니다.
코로나로 격리 중인 친구가 연일 문자를 보내왔다. 이른바 봄 시즌을 맞이한 세일 상품들을 파는 사이트들이었다. 여름이면 필요한 신발, 평소에 갖고 싶었던 준명품 액세서리와 가방, 깜짝 세일 먹거리 등등 어떻게 용케도 그런 걸 알고 보내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격리 중에 시간이 남는 탓도 있겠지만 정보 찾기 능력치가 제로에 가까운 나에게는 신기에 가깝게 느껴지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보내오는 세일 상품들을 보는데 전혀 감정의 동요가 느껴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80프로 이상의 할인율을 보면 가슴이 뛰어야 정상이 아닌가? 그것도 봄인데?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내 가슴은 평소와 다름없이 느리고 고요하게 뛰었다.
이 봄, 아무 의욕이 없는 이유
내가 왜 이럴까. 살랑살랑 마음에 봄바람이 불어야 되는 시기가 맞는데. 무려 40년이 넘게 내 마음을 일렁이게 했던, 바로 그 봄인데 말이다. 그런데 요즘 나에게는 정말이지 봄을 타고자 하는 의욕도, 일렁이는 감정도, 물욕도 전혀 생기지가 않는다. 갑작스레 나에게 불어닥친 이 '무욕'의 삶은 물욕뿐만 아니라 나의 삶 속에 전반적으로 뿌리내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당황스러운 것은 첫째의 봄도 나의 봄만큼이나 시큰둥해졌다는 것이다. 매년 봄만 되면 딸과 함께 듣던 노래가 있었다. 학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창밖의 수많은 커플들을 보며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솔로들을 위한 추억의 봄 노래, 바로 2016년에 발매된 10CM의 '봄이 좋냐?'라는 노래다.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 망해라." - 봄이 좋냐?? 가사 중에서
'모태솔로'라는 셀프 디스를 추임새로 곁들여 이 노래를 듣고 나면 괜히 웃음도 나곤 했는데 올해는 영 이 노래를 만나기가 어렵다. 이상하다, 틀 때가 됐는데...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으니 올해부턴 이 노래 안 들을 거란다. 이유인즉슨 가사에 나쁜 말이 많다고. 떨어지라는 말도 망하라는 말도 싫다는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를 댄다.
아뿔싸. 웃자고 만든 노래에까지 그렇게 현실 이입이 되다니. 무엇이 우리 열일곱 소녀의 마음을 이렇게 덤덤하게 만들었나 싶어 내 마음도 괜히 서글퍼졌다. 이 찬란한 봄에 말이다.
봄, 터무니없게도 나는 코로나가 한창인 시국에서도 봄이 좋았다. 보고싶던 전시회도 보러 가고 예쁜 꽃구경도 갈 수 있는 그런 봄이 올해도 어김없이 왔으니 마음이라도 산뜻해져야 하는데, 이상하게 이번 봄은 나에게 아무 느낌이 없다. 처음에는 그것이 나이 탓인 줄로만 알았다. 갱년기가 다가오니 봄이 멀어지는구나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첫째 아이의 야간 자율학습이 마침종을 울리는 밤 10시가 되면, 어두운 봄밤 속으로 시커먼 롱패딩의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직 일교차가 큰 날씨라 봄옷은커녕 두꺼운 롱패딩을 둘러 입은 비슷비슷한 아이들 사이에서 우리 딸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열심히 하루를 마치고 나온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솟아 나오는 사랑을 어쩌랴. 그런데 어랏! 반가운 인사는 잠시, 아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불평을 늘어놓는다.
"엄마, 나 오늘 잠 못 잘 것 같아."
"왜??"
"수행이 너무 많아서... 애들끼리 너무 힘들다고 '자퇴해야 겠다'라는 말을 한 서른 번도 더한 것 같아!"
"어....?..!!(말잇못...) 에이.. 그래도 무슨 자퇴씩이나..."
그냥 힘들다고 한 말이고, 뼈 있는 농담인 줄은 알았지만 '자퇴'란 말을 듣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 입학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엄마 간 떨어지는 소리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거니.
피부로 느껴지는 공교육의 위기감
▲ 요즘 내신 따기가 어려운 학교에서는 자퇴 후 고등 검정고시를 치르고 수능을 치른다는 사례가 심심찮게 거론된다.ⓒ envato elements
요즘 내신 따기가 어려운 학교에서는 자퇴 후 고등 검정고시를 치르고 수능을 치른다는 사례가 심심찮게 거론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아직 고등학교 첫 시험도 치르지 않은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치고는 빨라도 너무 빠르지 싶다.
아마도 코로나로 2년 동안 집에서 원격수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없어진 듯하다. 게다가 내신 준비와 수능 준비도 벅찬데 수행까지 하려니 감당하기 벅찬 것이다.
그렇게 이해는 하면서도 오히려 '자퇴'와 '홈스쿨링' 같은 단어에 이전과 달리 펄쩍 뛰게 된 것은 나였다. 집에서 원격수업을 했던 2년 동안 무너진 생활 습관을 아낌없이 보았던 때문이었다.
어쩌면 '자퇴'라는 말이 대학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아닌 대학에 가기 위한 다른 대안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자퇴가 학교의 간섭 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루트로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수시로 듣는 요즘이지만 공교육의 위기감을 이렇게 피부로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튼, 갓 입학한 아이들의 열정과 군기가 만들어낸 언어유희일지 몰라도 이 봄에 마음이 자꾸만 무거워진다. 그러니 친절하고 상냥해야 할 봄이 자꾸 쌀쌀맞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갱년기와 맞물린 나의 봄은 무욕의 봄이 되어가고, 입시와 맞물린 아이들의 봄은 아마도 1학기 중간고사로 마무리지어지겠지... 마음만은 찬란했던 나의 봄이 유독 빛을 발하지 못하는 올해, 유난히 봄이 서글퍼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