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덕후가 되었다...
딱 한 줄이었다. 전체적인 호평 중에 딱 한 줄. 이것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용서라니, 아무리 뉴욕타임스 음악 비평가라 하더라도 대체 이 연주에 무슨 용서가 필요하다는 거야? 나도 모르게 씩씩거리다 문득 이런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나 지금 왜 화내는 거지?
(뉴욕타임스 음악 비평가) 조슈아 배런은 "조성진의 소리는 감정과 기교를 쏟아붓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돋보였다"며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왼손의) 반주, 오른손의 빛나고 명확한 멜로디"를 호평했다. 다만 짧은 준비 시간은 고려해야 한다고 썼다. "물론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의 더 나은 연주도 있겠지만, 금요일(25일)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힘겨운 싸움이 일어나는 이 곡에 비해 조금 가벼웠던 조성진의 터치도 용서할 만하다." - 중앙일보 2월 28일자 기사 '우크라 사태에 러 연주자 교체…대타 조성진, 뉴욕 열광시켰다' 중에서
지난 2월 25일 카네기 홀에서 열린 조성진의 갑작스러운 연주 소식을 전한 기사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카네기홀에서 빈필과 협연하기로 했던 친러 지휘자와 피아니스트가 조성진으로 전격 교체되어 성사된 연주회였다.
▲ 조성진의 빈필하모닉 협연을 공지하는 카네기홀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카네기홀
이 소식에 마음이 뿌듯해졌던 것은 카네기 홀에서 훌륭한 협연을 해낸 연주자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어서가 아니었다. 내 가슴 속에서 뚫고 나오는 뿌듯함은 그 연주자가 다름 아닌 '조성진'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때 확실하게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조성진의 덕후'가 되었다는 사실을.
조성진의 덕후가 되었다
나의 덕질 입문기는 조금 이색적이다. 원래 덕질을 잘 못하는 편이었다. 금세 좋아했다가 금세 질리는 금사빠 스타일이라 아무리 멋진 드라마 남주라 할지라도 드라마가 끝남과 동시에 관심에서 멀어졌다. 게다가 대놓고 무엇이 좋다고 드러내는 것에 대한 민망함을 가진 별난 성격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이 나이에 알면 알수록 질리지 않는 것이 생겼으니, 바로 클래식 음악이다. 질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알게 되니 재미있고, 재미가 붙으니 계속 찾아보게 되고 듣게 되는 꾸준함까지 생겼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성실한 덕후가 되어갔다.
피아노 음색을 좋아해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들으면서 뭔가 편안해지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졌으면 좋겠는데, 클래식 음악은 잔잔하기만 한 음악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소나타나 협주곡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멜로디가 있는 악장을 제외하고는 전 악장을 듣는 집중력도 부족했다. 한마디로 제대로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이런 내가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듣기 시작한 것은 둘째가 피아노 전공 레슨을 받으면서부터다(아이는 피아노로 예중을 가는 것이 목표다).
전공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리 어렵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하나 허들이 되어 다가왔다.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소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데 이것부터가 난관이었다. 게다가 아이의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소리가 조금 물렁하다'라고 지적하는 말까지 들리니 혼란이 가중되었다. '물렁한 소리'는 뭐고, '뜬소리'는 대체 어떤 소리인 거지?
나의 궁금증은 갈수록 더해가고,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여정은 일명 '단단한(?) 소리를 찾는 여정'이 되었다. 피아노라는 악기의 정식 명칭은 피아노포르테(pf)라고 한다. 강약의 조화로운 소리가 전부인 악기라는 말이다.
극도로 나지막히 속삭이는 듯한 피아니시모에서부터 몰아치는 대목에서의 포르티시모의 웅장함까지. 그 소리의 완급 조절을 능숙하고 조화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피아니스트의 실력이다. 내가 듣기엔 그 정교한 음색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피아니스트가 조성진이었다. 내가 그의 연주에 설레지 않을 수 없던 이유다.
마흔 중반 덕질의 의미
▲ 집중력 떨어지는 나이에 몰입감이 주는 희열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고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게 한다.
ⓒ envato elements
마흔 중반의 덕질이라.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지 몰랐지만 중년의 덕질,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좋아하는 무엇인가에 집중한다는 것만으로도 덕질의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하지만, 무엇보다 생활을 좀 더 탄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피아노 연주는 백뮤직으로 그냥 흘려 듣게 되지 않고 집중해서 들으니 그 몰입감이 대단하다. 그뿐인가. 여러 각도로 즐길 수 있는 포인트가 늘어가니 다 찾아 들을 시간, 일명 덕질할 시간이 부족할 정도이다.
음악을 타는 연주자의 퍼포먼스(?)와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을 추는 손가락까지도 마음을 훔치니 말해 뭐할까. 집중력 떨어지는 나이에 몰입감이 주는 희열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고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게 한다. 이러니 내가 이 덕질을 어찌 하루라도 건너 뛸 수가 있겠는가.
우연하게 보게 된 티비 프로그램 <주접이 풍년- 김미경 편>에서 강사 김미경은 말했다. 덕질은 곧 자신의 성장이며 덕질이란 누군가를 통해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자식들이 다 큰 후에 화초에 애정을 쏟는 것도,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것도 어찌 보면 모두 덕질에 속한다고 한다. 덕질하는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덕질은 나에 대한 관심이자 애정이니 결국 내가 내 인생을 덕질하는 것이라는 김미경 강사의 말이 오랫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부캐를 가지는 것도,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는 것도 결국 다 나를 사랑하는 일인 것 같다. 내 마음에 좋은 것을 내가 열심히 찾아주는 열정, 어쩌면 덕질은 내 마음에 주는 밥이자 내 삶에 주는 약간의 영양제 같은 것이지 않을까 싶다.
갱년기의 덕질을 서로 응원하는 것이 이처럼 의미 있는 일이라 하니 이제부터라도 서로서로 '덕질 권하는 사회'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아 참, 덕질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란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그 무서운 덕질은 바로 '자식 덕질'이라나 뭐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