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에 삼켜질 때, 생명은 꺼진다.
끝은 급하고 조용하게 다가온다.
끊어질 것 같이 가느다랗고 긴 숨.
물기 하나 없이 건조하게 마른 손.
애타게 부르는 말에 대답할 수 없다.
불편했던 모든 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홀로 빛 사이에 헤맨다.
흰색에 삼켜질 때, 생명은 꺼진다.
죽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흰색에 가깝다. 먼지가 부유하는 소리 사이에 기계의 소음이 섞인다. 소독약을 비롯한 약물의 냄새가 공간을 채운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입고 있는 옷부터 침대와 주변 기기까지 모두가 하얀 세상이다. 육체가 흰색에 물들 때, 죽음은 가까워진다. 절명 직전의 모습은 가느다랗고 연약했다. 부름에 대답이 없고, 물리적 거리는 가까웠으나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이 간극은 흰색과 검은색의 차이처럼 느껴졌다. 생자로서 망자를 맞이하면 대비는 접경한다. 흰 세상을 맞이한 고인을 검은색의 무리가 추모한다. 대비는 조화를 이뤄 말이나 글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풍경을 그린다. 결코 성사될 수 없는 두 만남이 오직 한 번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한 죽음은 겨울이었다. 어른들은 겨울에 맞이한 죽음은 혹독하다고 대화를 이어갔다. 모든 생명이 꺼진 계절인 게 이유일까. 그래서인지 영정 앞에서 느껴지는 슬픔은 보다 깊었다. 겨울은 빛이 꺼짐과 동시에 새로운 생명이 잉태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계절이다. 흰 세상으로 망자를 보낼 때, 만물이 희게 덮인 계절만큼 적절할 때가 있을까. 새롭게 맞이할 봄과 새로이 태어날 생명을 기원함이 우리네 슬픔을 덜 수 있을 거라 위안했다.
손을 잡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곳에 먼저 떠나간 당신에게 묻고 싶다. 우리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는지, 차가운 손에 닿았던 우리의 온기는 전해졌는지, 불편했던 몸은 이젠 안녕한지, 도착한 그곳에는 빛들이 다양한지. 가까웠기에 눈물이 내렸고 슬픔은 쌓였다. 공허하게 뚫린 구멍에는 후회가 자리 잡았다. 어떤 식으로든 바로잡을 수 없어 슬픔과 후회는 섞이고 곪았다. 당신의 가느다란 숨이 길게 이어질 때, 힘들게 맞이한 죽음은 눈에 담기 어려운 흰색이었다. 마주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지만 내가 가진 색으로 물들 수 있기를 소망하며, 흰색에 삼켜지기 이전에 다시 한번 거친 손을 붙잡고 싶다. 추운 겨울에 먼 길을 떠나 지금 어디쯤일까. 곧 다가올 봄에 어떤 모습으로 마주할까. 기억이 희미해질 때면 나도 흰색에 물들 당신을 찾아가겠지.
흰색에 삼켜질 때, 생명은 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