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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솔 Feb 10. 2021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저한테 갑자기 왜 이러세요


작년 7월 거제도 바다에서 프리다이빙 자격증 실기 테스트를 치렀다. 자격증을 받기 위해선 전문 강사의 교육 과정과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기본적인 다이빙 실력을 키우고,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함이다. 물속에선 몇 초의 순간에 생사가 갈리기도 하는 법이니까.


2분간 숨 참기, 잠영으로 40m 가기, 수심 10m에 있는 익수자 구조하기 등 꽤 여러 종목을 테스트한다.

나는 모두 통과하고 수심 16m까지 내려가는 시험만 남겨두고 있었다. 10m도 겨우 내려갔는데 16m라니!

겁쟁이 특유의 과대망상으로 인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왔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순 없었다. 함께 교육을 받았던 교육생 중 대부분은 이미 몇 달 전 자격증을 발급받았기 때문이다. 남들 다하는 걸 못해낸다는 열패감이 들자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쥐어짜 낸 용기와 극도의 긴장마지막 호흡에 삼키고, 바다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면에서 멀어지는 속도에 맞춰 바다의 수압이 불쾌하게 귀를 압박해왔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몸에 가해지는 압력이 강해지는데, 특히 귀에서 예민하게 느껴진다. 압착으로 인한 통증과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선 주기적으로 고막에 공기를 보내 압력 평형을 맞춰주는 게 중요하다. 

제대로 압력 평형이 되않았는지 점점 귀가 아파왔지만 빨리 내려가는 게 더 중요했다. 아직 반도 못 왔는데 벌써 숨이 모자란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다리를 저어 16m에 겨우 다다랐을 때


'퍽!!'

오른쪽 귀에서 커다란 파열음이 들리는 동시에 시야가 미친 듯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바다가 내 머리를 우악스럽게 쥐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수심 16m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그냥 딱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물론 바닷속에 혼자 내려간 건 아니었다. 강사님과 함께 내려갔지만, 공포로 인해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필사적일 수 있는지 느꼈다. 눈 앞이 정신없이 돌고 있는 와중에도 미친 듯이 위로 헤엄쳤다. 수면으로 나오자마자 구명부이에 힘껏 매달렸다. 조금만 긴장을 놓아도 바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인생 통틀어 가장 고도의 정신력을 발휘한 몇 분이 흐른 뒤,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시야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귀도 큰 이상이 없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바다 밖으로 나오니 귀에 물이 찬 듯 먹먹했다. 강사님은 고막이 터졌을지 모른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프리다이버들은 크고 작은 고막 손상을 입기에 별스러운 일이 아니긴 하다. 고막이 찢어져도 심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멀쩡하게 재생된다. 나는 드디어 자격증을 땄다는 기쁨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날 밤 침대에 자려고 누웠을 때 왼쪽 귀에서 파도 소리 같은 게 들렸다. 아니, 파도 소리보단 훨씬 미세하고, 지속적이고, 높은 음의. 이명이었다.


자고 일어난 후에도 먹먹함과 이명이 계속됐다. 일요일이 지나고 다음날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귀 내시경으로 보니 오른쪽 고막이 찢어져 빨갛게 딱지가 앉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친 건 오른쪽 귀인데, 왼쪽 귀에서 이명이 들려왔다. 의사는 순음 청력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방음실에 들어가 125Hz부터 8000Hz에 이르는 각 주파수의 순음이 어느 정도로 들리는지 측정해봤다. 검사 결과표를 보니 왼쪽 귀의 6000Hz와 8000Hz 두 개의 고주파 그래프가 확연하게 떨어져 있었다.


집에서 어플로 측정할 수도 있다. 병원 측정 결과와 꽤 비슷하게 나온다.


"돌발성 난청이 의심되네요."


난청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일반적으로 3개 이상의 연속된 주파수에서 30dB 이상의 청력이 갑작스럽게 손실된 경우 돌발성 난청으로 진단을 내린다. 내 경우엔 2개의 주파수가 손실이 온 거라 조금 애매했지만 일단 치료를 해보기로 했다.

이 돌발성 난청이라는 게 원인도 불명하고, 확실한 치료법도 없다. 난데없이 나타나는 악질적인 놈이다.(경우에도 다치치 않은 귀에 증상이 나타났다) 유일하게 효과가 있는 고용량 스테로이드 요법마저도 일주일 내에 치료를 한 1/3만 완치된다. 절반도 안 되는 완치 확률은 내게 도박같이 느껴졌다. 더군다나 고주파 난청이 온 경우엔 그 확률이 더 떨어진다고 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나는 참담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섰다.


치료가 안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평생 이명을 들으며 살아야 하나? 불안감이 커질수록 이명이 증폭되는 것 같았다. 고용량 스테로이드는 부작용 우려 때문에 장기간 복용할 수 없는 데다, 돌발성 난청은 시간이 지날수록 회복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나는 처방받은 7일 치 약에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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