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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Feb 28. 2020

[프롤로그] 장애묘와 산다는 것

영원히 건강한 고양이는 없다.


나는 랑이와 강이,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보호자다. 두 녀석 모두 직장이 있는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구조했다. 잘 익은 벼처럼 멋진 황금빛 털을 가진 랑이와 흔히 '고등어'라고 불리는, 베이지색 바탕에 검은색 라인이 매력적인 강이. 두 마리와 함께하는 일상은 내 삶의 이유이며 행복이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SNS를 시작했다.

내가 올린 사진과 영상을 본 사람들은 말한다.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귀엽다고. 특히 출중한 미모를 자랑하는 강이를 본 사람들은 열이면 열, '내가 지금까지 본 고양이 중에 제일 예쁘다'며 호들갑을 떨곤 한다. 맞다. 우리 아이들은 예쁘다. 내 인생에 있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유일한 존재다.


하지만, 고양이와 함께한다는 것이 그저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할까?


랑이와 강이는 공통적으로 왼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구조됐다. 2018년 10월, 구조 당시 5개월령이었던 랑이는 '운이 좋게' 왼쪽 후지 대퇴골만 부러진 채 발견되어 비교적 수술이 간단했다(반대쪽 대퇴골도 탈구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자연 치유되었다). 2019년 9월, 태풍 전야에 구조된 강이는 생후 한 달 반 정도밖에 되지 않은, 850그램의 작은 아기 고양이였다.

강이는 랑이와는 달리 '운이 나쁘게' 골반이 산산조각 나고, 오른쪽 후지 대퇴골 골두가 골절된 상태에서 발견됐다-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유일하게 멀쩡했던 왼쪽 후지를 끌었던 건 부러진 골반이 속살을 찔러 아팠기 때문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니 설상가상으로 요도까지 끊어져 방광이 터질 듯 빵빵했다. 방광 천자를 하고 다시 몸무게를 재니 750그램의 여리디 여린 아기 고양이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강이의 생명은 마치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웠다. 제발 살아주기만을 기도하며 이름을 강이라고 지었다. 강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엄마 고양이를 찾듯 삐약삐약 울며 지나가던 나를 불러 세운 작은 아이. 강이는 두 번의 대수술을 마치고 한 달만에 퇴원했고, 임보(임시보호의 준말) 기간 끝에 함께하기를 약속했다. 그렇게 나의 '고양이 보호자'로서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수술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질 듯하니 이후에 따로 풀어 보겠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혹은 키울 예정인 사람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고양이의 병원비로 단기간에 1,000만 원을 기꺼이 쓸 수 있는가? 당신은 자다가 고양이 오줌을 뒤집어써도 묵묵히 닦아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과거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을 것 같다. 나도 결국엔 고양이가 '마음의 복지'였기에 키우기 시작했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임보자'로 끝났을 내 집사 라이프는 똑똑하고, 착하고, 사랑스러운 랑이 덕분에 지속될 수 있었다. 랑이가 까다로운 고양이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고양이와 사는 것은 행복했다. 아니, '건강한 고양이'와 사는 것은 마냥 행복했다.


강이는 아프다. 흔히 말하는 장애묘다. 남자아이지만, 생식기가 없다. 보통 수컷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 때 탐스러운 '땅콩'에서 고환을 제거한다. 수술은 단 5분. 그렇게 수컷 고양이는 생식 기능을 잃는다. 한껏 익어 소담하게 자리하던 '그것'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형태를 잃고, 아담해진다. 하지만 강이는 그 조차도 없다. 끊어졌던 요도로 소변을 보게 하기 위해 생식기를 들어내고 배에 구멍을 내 요도를 연결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수술을 했던 탓인지, 아니면 요도가 너무 짧아져 배 쪽에 구멍을 내 연결한 탓인지, 강이는 혼자서는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자다가 흘리기도 하고, 아예 싸지 못해 압박 배뇨를 해 줘야 하기도 한다. 한 번은 강이의 소변 냄새에 취해 자는 날이 지속되자 스트레스가 극심해 '방수 이불'을 샀는데, 효과가 좋았다. 하지만 만족한 것도 며칠. 옆에서 사랑스럽게 자던 강이가 소변을 흘렸고, 그 소변은 방수 이불 위를 흘러 얼굴을 덮쳤다! 그렇게 깔끔한 잠자리는 영원히 포기했다.


그럼에도 장애묘와 함께하는 삶은 행복하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이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큰 난관 속에서 서로에 관한 신뢰와 사랑을 키우고 있다. 매일 두 번의 투약, 네 번의 압박 배뇨. 좁아진 골반강 탓에 이따금 찾아오는 변비로 관장을 시키기도 한다. 강이 입장에서는 '두려움'과 '괴로움'을 선사하는 존재일 '보호자'. 하지만 강이는 나를 정말 좋아해 준다. 퇴근하면 버선발로 마중 나오고, 아침에 눈을 마주치면 '에엥!'하고 소리치며 뛰어와 있는 힘껏 박치기를 한다. 똑같다. 건강한 아이든, 장애가 있는 아이든 똑같이 보호자에게 행동한다. 그저 다른 점은 조금의 불편함이 있다는 것. 고양이는 어떤 모습을 하든 사랑스럽고, 나약한 인간을 지탱해 주는 감사한 존재다.


영원히 건강한 고양이는 없다. 


건강한 랑이도 십여 년이 흐르면 매일 약을 먹이고, 압박 배뇨를 해 줘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다 나은 줄 알았던 다리가 말을 안 들어 절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신한다. 그때도 여전히 나는 랑이를 사랑하고 기꺼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강이에게는 그러한 상황이 조금 일찍 찾아왔을 뿐이다. 분명,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기 전이었기에 '불행'이라는 두 글자가 나를 집어삼키려고 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고비를 넘어 우리는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에게 남은 건 '행복'뿐이다.


이 개인적인 기록이 앞으로 고양이를 키울 계획이 있는 사람, 현재 키우고 있는 사람에게 반려묘와의 관계에 관한 작은 울림이 되길 바란다. 영원히 건강한 고양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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