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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새 Mar 06. 2020

토사 광란의 밤

19살 리어카의 기억을 떠올리며


오랜만이다. 맥주 한 모금이 시원하고 알싸하게 목구멍을 넘어가는 그 느낌, 정말 오랜만이다.

저녁에 돼지고기를 먹고 싶다는 딸 진이의 메뉴 결정권을 받들어 모셔주느라 지난달 유기농 매장 세일 때 사둔 목살 2팩을 녹였다. 돼지고기를 구워내면 진이가 제 아빠나 오빠보다 딱 2배는 먹는다. 진이의 둔실해지는 궁둥이 90%가 돼지고기 덕분이라는 설도 있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구워낼 때는 에어 프라이기를 꼭 2판 돌려야 모자라지 않게 먹일 수 있다.

그런데, 어제는 그 2번째 판에서 절반 넘게 남았다. 생각해보니 진이는 점심을 먹고 집에 와서 간식(?)으로 연어 한 도막을 구워, 삶아놓은 감자랑 같이 간식을 제 끼니처럼 잔뜩 먹었다. 그러고 나서 후식으로 헤이즐넛 스프레드를 잔뜩 바른 파이를 너무 달다달아, 하면서 한 조각 해치운 상태였다. 배가 부르기도 불렀을 것이다.

이걸 어쩌지.... 설거지 전에 그릇들을 정리하면서 남은 음식들을 보관하거나 버리거나 하는 결정적 순간에 나는 그 남은 돼지고기를 밤늦게까지 PPT 작업하다가 분명히 배가 고파질 내 배에 버리기로 결정했다. 아~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 식은 돼지고기 몇 조각, 결국 설거지를 다하고 나서 니글거리는 속을 참지 못하고 돼지고기가 부른 맥주 한 캔을 까고 말았다.

정말 오랜만의 맥주는 꼴랑거리며 목구멍을 잘도 넘어갔다. 그야말로 술답게 술술 넘어갔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조금 버거운 한 캔의 양이 어젯밤엔 정말 딱 맞았다. 순식간에 한 캔을 홀랑 비웠다.


대학이 결정되고 입학도 하기 전에 학교에서 선배들이랑 친해지기 시작했다. 새내기 모꼬지를 다녀왔던가? 그건 기억이 안 나지만, 2월 말부터 학교에 가서 앞으로 배울 것들에 대한 그 무엇보다 먼저 술부터 배웠다. 처음 술을 마셨던 날, 맥주로 시작해서 소주를 거쳐 파전이 맛있는 우리 과 전통 단골 작은 파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것으로 끝을 냈다. 대중 알코올계의 3 대장을 첫날 두루 섭렵하고 나도 끝났다. 시작과 함께 끝을 내다니, 재밌다며 먹여대던 선배들도 혀를 내둘렀고 심지어 새벽에 파전집을 나서면서 나름 멀쩡했던 내 걸음걸이에 감탄마저 했던 것이다. 그렇게 1차부터 3차까지 가는 동안 단합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국교과 전원 90여 명이 10여 명으로 줄어드는 동안, 새내기는 나랑 남자 동기 2이 남았을 뿐이었다. 거의 예비역 선배들이랑 남자 선배들이 남았는데, 이미 파전집에 들어가자마자 뻗은 내 동기 S를 두어 명이 떼어 매고 먼저 돌아갔다. 나머지들도 날이 곧 날이 밝으니 어서 자러 가자며 각각 뿔뿔이 흩어지려고 할 즈음에 파전집에서 의연하게 걸어 나오는 내 걸음을 믿고 가볍게 빠이를 하려던 선배들이 나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야, 쟤 어떻게 해. 이제 오나 봐 ㅋㅋㅋㅋ"

"이거 큰 일이네."

"야, 너네 집 어디야?"

"야?!"

정신은 멀쩡했다. 소리들은 다 들렸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건네는 잔을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으니 진짜 많이 마시기는 했다. 맥주는 또렷이 기억하기를 500cc로 3번, 소주는 샐 수는 없었지만 1병은 거뜬히 넘겼을 테고 막걸리는 이상하게 달았다. 그러니, 정신없이 양은 사발로 몇 개?

"나, 괜찮아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말은 못 했던 것 같다. 내 정신은 서서히 점멸하다 꺼지는 무슨 신호처럼 끊기듯 이어지듯 했다.

"야, 택시 잡아."

"너네 집 어디냐고?"

"얘 정신이 오락가락하나 봐. 택시 혼자 태워도 돼?"

"선배 방에 재워요."

"야, 아까 그 새끼들이 이미 내 방에 갔어."

"야, 그럼 니방에 재워."

"주인집 현관으로 들어가는 구조라 안돼."

나를 두고 어떻게 치워야 할까 논의들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거의 다 제정신이 아니게 취한 상태들이라 멀쩡한 방법이 나올 리가 없다. 게다가 신입 여학생, 남은 사람 중에 여자 선배는 없었다. 다들 곤란해했던 것 같다. 그때 실려나간 S 말고, 다른 동기 J가 기억을 떠올렸다.

"쟤네 집 가까운가 봐요. 쟤 아까 집에서 걸어왔다고 했는데..."

그럼, 업자. 누가 업을래? 니가 업어라. 정신이 제일 멀쩡한 놈이 누구냐? 누가 제일 힘이 세냐? 그나마 정신이 살아있던 열댓 명의 남학생들이 남아 나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난리였단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선뜻 나를 업지 못했다. 업을 엄두도 못 냈다. 나는 평생에 한 번도 날씬했던 적이 없었고, 학력고사를 이제 막 치른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고3 몸매 그대로, 거기에 두꺼운 겨울 옷을 겹겹이 입어 더욱 부해진 몸매로 술과 안주를 잔뜩 먹은, 그러니깐 당시에도 우리 과 여자 중 최고의 무게 상태였다. 심지어 새벽에 택시를 잡으려면 큰길까지라도 가야 하는데 거기까지도 나를 옮길 방도가 없었단다. 어찌어찌 논의 끝에 서로에 대한 추천과 선출(?) 과정을 거쳐 2명이 뽑혔다. 나를 양 쪽에서 팔을 하나씩 들어, 지게처럼 양쪽에서 떠 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 작전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그들은 실전에서 불과 몇 발짝만에 처절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그들 모두 속으로, 진심으로 '버리고'가고 싶었다고 했다. 다행히 아무도 그 진심을 꺼내지 않았고, 나는 아직도 그 취한 와중에도 살아있던 그들의 양심과 도덕심에 깊이 감사한다. 그 추운 2월, 처음 술을 마신 날 동사할 뻔, 가장 새파랗게 젊은 날 찬란하게 술 처먹고 돌아가실 뻔.

여하튼 나를 얼어 죽지 않게 어딘가로 옮겨가야 했는데, 취한 중에도 '우리 집으로 갈 거야, 사직동 사직도옹~!!!'을 고래고래 외치며 집 방향을 가리키더란다. 코끼리 파전집 옆 다른 파전집 문턱에 기대 누워 택시를 잡고 있더란다. 역시 나는 취한 중에도 기특했다, 저 굳센 의지 보라지.

누워 있는 나를 가운데 두고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그저 빙 둘러서서 고민하던 중, 과에서 키가 제일 큰, 마이콜 G선배가 묘안을 떠올렸다. 과대표답게 학교 구석구석 사정을 잘 알았던 G선배는 사범대학 뒤쪽, 그러니까 학교 후문 경비실 뒤에 늘 세워두는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저씨들이 낙엽을 끌어모으거나 허드레 일에 쓰는 리어카답게 아주 꼬질꼬질했던 리어카는 외모에 비해 무척 유용해서 남은 예닐곱명의 남학생들은 환호성마저 지르며 반겼단다. G선배는 자기의 꾀가 만든 공로에 으쓱해져서 나를 싣고 사직동 쪽으로 걸어가는 행렬의 맨 앞에서 선두 지휘를 시작했다고 한다. 새벽, 인적이 드물어 다행이었지 어느 정도 취기가 있었던 그 행렬은 심지어 노래도 부르며 행군을 했다는 후문도 들었다. 행군 중에 서넛이 정신이 들어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마지막에는 동기 진우랑 선두 지휘자 기열 선배만 남아 가끔씩 정신이 들곤 하는 나를 흔들어가며 주소를 정확하게 알아냈고, 그들이 사직동까지 무려 40분을 걸어갔다는 걸, 되돌아올 때쯤 취기가 걷히면서 알았다고 했다. 택시가 보일 때까지만 걷자 싶었는데, 결국 그 길을 다 걸어갔다고 했다. C시가 집인 G선배가 어찌나 길을 잘 찾아 성큼성큼 걷던지 타지에서 온 진우가 말릴 새도 없이 뒤를 따라갔다고 한다.

다음날, 나는 한낮이 되도록 퍼져 잤다. 아직 학기가 시작되지 않아 수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머리가 깨질 것 같으면 도로 눈을 감아가며 실컷 잤다. 잠결에 설풋설풋 들은 엄청난 잔소리와 함께 거실 소파에서 신발을 신은 채 자고 있던 내 등짝에 문제가 좀 있었던 것도 같은데 결국 내 본래의 안온한 잠자리로 옮겨 들어간 뒤, 아빠가 배를 잡고 웃으면서 출근하고, 고딩 남동생이 혀를 차며 등교하고 내 상태를 살피겠다고 출근을 미룬 엄마가 잠깐 나갔다 오실 때까지 잤다.

"야, OO. 너 일어나 일어나."

"아, 왜... 쫌.... 나 오늘 아무 일도 없어."

"일이 없긴 왜 없어, 이년아."

"너 어쩔 거야, 내가 못살아 정말."

"왜애~ 나 집에서는 안 토한 거 같은데..."

"토한 게 문제가 아니라, 아 이 지지배를 우짜지? 빨리 안 일어나?"

엄마, 목소리 톤이 이쯤 되면 한계치다.

"아~ 왜애?"

"너 얼른 학교 갔다 와."

"아, 왜?"

"내려가서 아파트 현관에 자전거들 있는데, 거기 우편함 안쪽 자리에 있는 학교 리어카 반납하고 와."

"뭐? 리어카?"

"너 어제 집에 어떻게 왔어?"

"그러니깐, 애들이 데려다줬지?"

"누가, 어떻게?"

"그러니깐, 선배들이랑 동기들이랑... 나 리어카 타고 왔나? 그런 거 같네?"

"아유 내가 미쳐. 어쩐지 옷이 어디 흙구덩이에서 구른 거 같더니만.. 동네 사람들이 그 리어카 더 보기 전에 얼렁 가."

"..... 밥 줘, 학교 갔다 오게....."

"뭐어?"

"알았어, 그냥 가면 될 거 아냐, 씨이~ 속 뒤집히는데"

"누가 마시랬니? 그리고 너 아직 다른 애들보다 한 살 어려서, 너 술 마시면 그거 불법이야. 너 내가 신고할 거야, 이 지지배야."

"알았어, 빈 속에 갔다 오면 될 거 아냐. 빈 속에!"

결국 겨우 옷을 갈아입고 아파트 3층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왔다. 리어카가 아주 오똑하게 아파트 계단 아래, 자전거 거치대 뒤 쪽으로 서 있었다. '이건가? 이게 학교 거란 말이지? 학교 어디로 가져가지?' 하며 리어카를 끙끙거리며 빼내 왔는데, 거기에 아주 큰 글씨로 쪽지가 하나 붙어 있었다. 리어카 구석에 노트를 북 찢어 모서리를 끼워 넣고 잘 보이게 늘어뜨린 곳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본 리어카는 C대학교 후문 경비실 재산입니다. 000 학생은 바로 학교 후문 경비실로 반납 바랍니다.'

"에이씨~"

아파트 같은 통로의 우리집 말고 나머지 9집은 버젓이 보고야 말았을 이 큰 글씨는, 그 아파트에서 5년째 살고 있는 점잖은 초등학교 선생 딸이 지난밤에 술에 떡이 되어 타고 왔음직한 것이라는 걸 너무 유추 가능하도록 적혀 있었다. 살가운 오랜 이웃들이 그 메모를 놓쳤을 리가 없다. 그 메모로 유추 가능한, 그 집 똘아이 딸의 지난밤 대학 신입생으로서 내딘 첫행보에 대해 제트기보다 빠르게, 그 작은 아파트에 소문이 도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엄마 반응이 이해됬다. 한 첫행보에 대해 제트기보다 빠르게, 그 작은 아파트에 소문이 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엄마 반응이 이해됐다.

빠른 길로 가면 40여분이면 충분히 걸어가는 길이었다. 2월 아직은 조금 추운 길을 더욱 춥게 그늘로만 걸어갔다. 사직동에서 사창동까지 일부러 좀 후미진 골목길로만 골라 걸어가면서 그 길이 하필이면 좀 오르막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한참 힘이 좋을 때라 평소에 걸어갈 때는 잘 몰랐던 경사였다. 19살 여학생이 꼬질꼬질한 빈 리어카를 덜겅거리며 끌고 가는 모습이 스스로 웃기기도 해서 웃고, 창피하기도 해서 웃음이 났다. 길을 가다 사람들이라도 마주치거나 나를 쳐다보는면 사람들에게 괜히 멋쩍게 씨익 웃어주며 학교까지 무사히 끌고 들어갔는데, 문제는 학교에 거의 다다라서였다. 후문 경비실까지 좁게 난 오솔길 같은 길이 사범대 국교과 사무실과 학생회실 창문에서 훤히 내다 보이는 길이라는 사실을 깜빡했다. 아직 개학 전이라 학교 부근이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개학 직전, 시골에서 미리 올라와 있는 자취생들과 기숙사생들은 하릴없이 학교 부근을 배회하던 때였다. 한낮의 과사무실과 학생회실은 그런 학생들이 모여 어제 있었던 과행사(?)에서 누가 술을 어떻게 마셨고 누가 누구랑 썸을 탔으며 누가 술에 취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웃음거리들이 넘치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어제의 최고는 바로 나였다. 그렇게 신나게 지난 밤 이야기를 하는 중에 내가 보였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창 밖으로 누군가 나를 발견했을 때 저절로 환호성을 질렀단다. 반가워 죽겠는거지....

"야, 000이다."

몇 개의 창문에 닥지닥지 얼굴들이 붙는다. 아, 씨~ 아직 입학식도 하기 전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과가 워낙 작아서 각 학년에 25명씩, 그나마 군대를 가거나 휴학한 사람들이 드믄드믄 있어서 고작 다해서 90여 명. 삽시간에 유명해지기 좋은 아담한 사이즈이다. 뭉치기도 잘 뭉치고 놀기도 잘 놀고 하여튼 뭉쳐서 어찌나 잘 노는 과였던지 지금 생각해도 매일매일이 재밌었다. 그 재미의 한 복판에 십만 년쯤 우려내 먹을 만한 그런 소재를 던져준 것이다. 온몸을 바쳐.... 그중에서도 유난히 나를 반기며, 창문에서 긴 팔을 휘저으며 G선배가 굳이 창문까지 열어젖히고 소리를 지른다.

"으하하하 리어카 잘 끌고 왔네. 애들아, 쟤 저기다 가방 싣고 왔다아~."

"으하하하하"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아~ 씨~ 저거 G선배, 죽여 버릴까?

"너, 나 아니었으면 어제 얼어 죽었어. 와서 냉큼 큰 절 올리고. 참, 그거 얼른 경비실에 갖다 드려. 아저씨들 잔소리도 듣고. 아, 허락 없이 가져가서 열 받으셨을걸? 야단맞을지도 몰라."

다행히 아저씨들은 날 보자마자 웃으시느라 야단이나 잔소리 없이 무사히 집에 갔으면 되었다는 인자하신 덕담(?)을 건네주셨다. G선배가 예의 그 사교성을 발휘하여 미리 말을 해뒀나 보다.

기운없이 축 처져서 터덜거리며 4층 과학생회실에 들어섰다. 그러자마자 격한 환영인사와 함께 어제 내가 인사불성 된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던 인간들이 하는 말을 죄다 들어줘야 했다. 그리고 집에서도 쫓겨 나온 내 사정에 다들 배꼽 빠져라 눈물겨워했다. 덕분에 빈 속이라는 내 하소연에 깡통 학생식당 싸구려 우동을 얻어먹을 수도 있었다.

"어때? 처음 술에 떡이 된 심정이?"

"이게 그냥 술떡 문제예요? 참내, 리어카가 뭐예요? 택시 없어요?"

"어쭈, 우리가 다 말했잖아. 너를 K랑 Y, 그 떡대 둘이 떠 매고 3걸음 걷고 주저앉더라. 이히히히"

"씨이~"

"그래서 술이 좋아졌어? 다시는 안 마셔?"

"막걸리만 어떻게 피해볼라구요."

"으하하하하하, 왜 걔만?"

"마지막 그게 문제였어요. 그리고 아침까지 냄새 남고 올라오는 건 막걸리네요."

"머리는?"

"깨지죠."

"그것도 막걸리 때문일걸? 막걸리가 달다고 마셔대믄 다음날 머리 뽀개지지. 코끼리 파전 막걸리는 더 심해."

"씨~ 일찍도 알려준다.”

그렇게 토사광란과 리어카의 밤은 내 역사에 화려한 대학 입학식으로 남았고 그 유명세 덕분에(?) 입학하자마자 술자리가 많았고, 급기야 대학 2학년 때는 최장 63일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먹어본 기록을 가진 과내 최고 주당 자리에 등극했다. 이전 48일 기록을 가진 선배를 가뿐하게 넘어섰을 뿐 아니라, 내 졸업 후에도 나를 기억하는 후배들이 있는 한은 내 기록을 아무도 넘어서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나는 더 이상 맥주 한 캔도 용서하지 못하는 내 장을 명료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식은 돼지고기 기름에 부은 맥주는 내 장에서 화학작용을 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뒤로도 나오기 시작해, 뒤로 물만 나오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새벽까지 소파에 누워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맥주 한 캔보다는 훨씬 많은 무엇들을 양방향으로 다 꺼내놓은 뒤 나는 3시가 넘어서 겨우 기진맥진 잠이 들었다. 리어카를 타고난 뒤에도 그날 바로 해장술을 내쳐 마실 수 있었던 19살 내 장기들은 이미 그때부터 서서히 맛이 가기 시작했을 터이고, 마흔 중반을 훌쩍 넘은 내 장은 그 시절을 기억하며 새기며 충분히 늙어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시절 '아무튼 술'이라며 이 사람 저 사람들과 어울렁 더울렁 싸돌아 다닌 시절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참 잘 놀았다.

오늘도 이제야 서서히 정신이 든다. 이제는 해장술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막걸리뿐 아니라 당분간 술을 보면 절레절레 고개가 저어질 예정이다. 이제는 마흔 중반에 적합한 음주가무를 개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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