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공생, 로스쿨에 도전하다 (5)
GPT는 변호사를 대체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이 질문에 "아니"라고 답할 수 있도록 교묘하게 전제를 뒤틀었기 때문이다. 주체를 인공지능이 아닌 'GPT' 기반 언어 모델(language model)로 한정하였고, 변호사의 업무 일부를 보조하는 수준이 아닌 '대체'라는 강한 술어를 사용하여 한 번 더 그 범위를 줄였다. 한편 내가 만약 정부를 현혹하여 지원금을 타야 되거나 더 많은 광고 노출을 위해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작성해야 하는 기자였다면 "인공지능은 법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 같은 두루뭉술한 문항으로 설문조사를 돌릴 것이다. 높은 "예" 비율을 따낸 뒤에는 물론 "변호사, GPT로 대체된다는 데 N%가 동의"라고 주장하겠다. 요는 위의 질문은 사실 우문(愚問)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문일지언정 여러분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생각되니,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을 이어 나가보고자 한다. 미래 전망이 아니라 이미 ChatGPT가 세상 다양한 분야를 뒤집어놓고 지나간 2024년 현재의 시점에서, 이 ChatGPT(또는 변종들)라는 도구는 법조인의 법률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도 그전에, 로스쿨을 단지 '지망'할 뿐인 이 컴공생을 구제해 줄 수 있을까?
나는 AI 스타트업을 대충 3년(2020~2022) 다녔다. 그리고 그전에도 자연어 처리 기술에 관심이 많아 1년 정도 인공지능을 공부했다. GPT-2가 발표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입사하여 GPT4가 등장한다는 소문이 무성할 때쯤 퇴사하게 되었다. 시의적절한 때 (시쳇말로) 인공지능 '원툴' 스타트업에 근무하게 되어 좋든 싫든 이 AI 모델에 적응하게 되었다. 내 직무는 AI 엔지니어가 아닌, 그 AI를 잘 포장해서 사용자에게 배포하는 서버 개발자였기 때문에 너무 과몰입은 하지 않지만 직무 특성상 내부 원리를 꽤 자세히는 알고 있어야 하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마이크로소프트에서 GitHub Copilot이라고, 코드를 짜 주는 AI가 출시되었다. 회사 동료 일부가 오픈 베타 테스트에 당첨되어 써 보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나랑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AI 프론티어(Frontier)에 위치한 얼리 어답터들이 많아서 2년 이상 성숙하지 않은 기술은 취급하지 않는 래가드(laggard)였던 나는 그냥 솔직히 호들갑 취급하고 그냥 묵묵히 원래 하던 방식으로 코드를 짰다. 최첨단 AI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코딩을 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단순 반복 노동은 IDE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해 주던 시절이었다.
AI 학습을 위해 우리 회사에서 작성하는 코드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손에 넘어갈 수 있는 리스크는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사내 개발자들이 AI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는 CTO의 뜻에 따라 Copilot의 사용은 단순 허용 수준이 아니라 '적극 권장'하는 방침이었고 (안 쓴다고 혼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도 AI와의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협력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AI가 코드를 짜 주면 나는 그 코드를 하나하나 꼼꼼히 보면서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체감하기로는 초벌에 드는 시간을 아낀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디버깅(debugging)을 해야 했던 느낌이었다. 코딩이 좀 생소하다면, 영상 편집 자막 작업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영상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텍스트로 변환하여 자막을 다는 작업은 그 기술적 기반이 꽤나 오래전부터 다져져 있었고, 요즘은 AI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면서 다양한 영상 편집 프로그램에 내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 기능을 사용하여 막상 영상을 만드려고 하면, 음성 인식 오류라든가 자막을 끊고 넘어가는 시점이 마음에 안 든다든가 하는 문제가 생겨 결국 수동으로 손을 보게 된다. 그렇게 손을 보는 시간이 AI가 초벌 자막을 써주는 시간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왠지 코파일럿이 잘 못할 것 같은 부분은 그냥 내가 먼저 짜고, "기계적으로 가능할 정도로 단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창의적이지도 않은" 업무만을 선택적으로 위임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래도 AI가 아예 없었던 시절보다는 효율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종류의 업무를 지금까지는 코파일럿이 아닌 후임 개발자들에게 위임해 왔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타트업의 시간계에서는 1년이면 강산이 변하기 때문에, 저연차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업무를 가르쳐야 하는 후임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면 내가 하는 업무의 일부를 떼어 주며 회사 업무의 적응을 돕게 된다. 처음에는 우리 회사에 특이적인 배경지식이 필요 없는 보편적인 업무에서 시작해서 후임이 적응함에 따라 점차 복잡도를 높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시행착오가 생기고 코드 리뷰라는 피드백 과정을 반복하며 우리 회사의 업무 방식을 학습시킨다. 결국 어느 정도의 연차가 쌓여 매니징을 시작하다 보면 AI가 있든 없든 내가 하는 일의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AI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놀랍도록 빠르게 결과물을 낸다는 차별점이 있다. 그 대가로 단 몇 개월의 교육만으로도 충분한 성장 포텐셜을 보여주는 사람과는 다르게 AI의 성능 개선은 우리 회사의 존재조차 모르는 바다 건너의 AI 석박사들이 GPT n+1을 개발해 (아마도) 더 비싼 가격으로 출시할 때까지 그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아무리 타일러도 발전하지 않는 에이전트라. 그래서 유독 AI를 업무에 본격적으로 활용하려 하면 할수록 '피곤하다'는 감정을 잘 느끼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코파일럿의 사례를 통해 느끼게 된 바는 다음과 같았다. AI는 업무를 대체할 수 있지만 그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대체되는 업무는 주로 저연차의 것이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고연차가 해도 되지만 그보다 더 추상적이고 도전적인 업무를 하는 편이 효율적이기에 외주를 돌리든 위임을 하든 하는 그런 종류의 업무인 것이다. 개발 업계에서는 프로그래머와 대비되어 '코더'라고 부를 것이고, 모르긴 모르지만 만화 업계에서는 만화가와 '어시스턴트'와의 관계쯤이 될 것이다. 법조계에도 대충 그런 맥락의 역할이 존재할 것이다.
이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마냥, 저연차가 고연차로 성장할 단계를 없애 해당 업계가 쇠퇴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낙관적으로 접근한다면, 그 업무가 완전히 AI에게 위임되고 그 노하우가 전수된다면 그런 지루한 업무를 익히지 않고도 뉴비가 업계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도 있다. 나는 과거의 사진기, 계산기, 방직기 등등이 그랬던 것처럼 AI 역시 특정 범위에 한정된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는 도구 정도로만 보고 있다. 강인공지능은 개인적으로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동등한 수준으로 학습하는 강인공지능을 상정하고 디스토피아를(유토피아도) 그리는 것은 예술적 그리고 철학적 가치가 있는 활동이라고는 본다. 하지만 그런 인식이 팽배한 나머지 현실의 있는 약인공지능에조차 "무한히 학습 가능한 터미네이터" 같은 프레임을 씌우게 되면 실제 그런 AI랑 어쨌든 같이 살아갈 우리의 삶에 해가 될 수도 있다. 소설을 써보자면 AI를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기술 업계의 발전이 정체된다거나 할 수도 있고, 그 정도 급이 아니라도 AI를 과대평가해서 현시점에서는 AI한테 맡기는 게 손해인 종류의 일을 억지로 시키면서 기회비용의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잘하는 것만 맡기면 되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분량이 너무 길어졌다! 끊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그러면 독자들을 속인 기분이 들 것 같다. 우선은 이번에는 그래도 대충 4~5년간의 AI 업계 경험에 근거하여 감히 판단했을 때, 현재 우리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GPT4o급 언어모델'을 활용해서 로스쿨 입시 과정을 효율화하고자 할 때 적용 가능한 분야와 적용 불가한 분야를 간단히 나열해 보고, 여유가 될 때 그렇게 생각한 근거를 한 번 따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Do : AI를 활용하면 효율이 좋아질 수 있는 분야
검색 : 긴 글에서 특정 주제와 연관된 문장/문단 추출하기.
패러프레이즈 : 서술식으로 작성된 지문을 개조식으로 변환하기, 또는 개조식으로 작성한 문제 풀이 가이드를 서술식으로 변환하기.
오답 해설 생성 : 문제를 푸는 과정을 해설시키기. 보통 이때의 해설은 잘못됨. 그 해설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검토하여 '내가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파악하는 목적으로 활용.
유형 판별 : 문제의 유형(선다형, 합답형)이나 소재의 유형(과학기술, 인문 등)을 구분하게 시키기.
백과사전 :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개념이나 단어를 설명하기.
자기소개서 퇴고 : 자기소개서의 비문을 교정하거나 대체 표현을 제안받기.
Don't : AI를 활용했을 때 오히려 힘든 분야
문제 풀이 : LEET 문제를 그냥 풀어보라고 시키기 (객관식 정답 선택하게 하기).
추론 : 연역추론이나 귀납추론 시키기, 숨겨진 전제를 파악하게 하기.
문제 생성 : 기존 LEET 문제 정보에 근거하여 예상 LEET 문제 또는 지문을 생성하기.
입시 상담 : 입결 물어보기. 지원 대학이나 합격 전략 상담하기.
자기소개서 초안 : 자기소개서 작성 가능 소재를 주고 이를 엮어 분량을 지킨 글 만들어내기.
가상 인터뷰 : 면접 상황을 상정하고 예시 제시문이나 가능한 질문사항 추출시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