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과 행동 사이에 질문 넣기
“난 배려가 없는 사람은 진짜 못 견디겠어. 왜 사람들이 기본적인 배려가 없을까?”
친구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그녀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려 없는 사람을 싫어할 것이다. 잔뜩 공감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침내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 순간! 그녀가 슬그머니 핸드폰을 꺼내 드는 것이 아닌가? 밀린 카톡을 확인하며 건성으로 이야기를 듣는 그녀를 보니 말문이 턱 막혔다. ‘기본적인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에 당혹스럽고 화가 났다. 그녀가 생각하는 배려에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기준에는 나도 배려가 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상대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사람일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 그녀의 이야기를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얼마 전 연애를 시작한 그녀는 남자 친구와 감자탕 집에 갔다고 한다. 감자탕이 끓기 시작하고 감자가 포슬포슬 맛있게 익을 때쯤 남자 친구는 이제 먹어도 되겠다며 국자를 집어 들고선... 본인 그릇에 먼저 음식을 덜었던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 그녀는 ‘배려’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상대방 그릇에 먼저 음식을 덜어주는 것이 기본 아니냐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실제로 친구는 늘 음식을 남에게 먼저 덜어주곤 했었다. 내 기준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배려의 기본 덕목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남자 친구와 이야기해보니 아직 어떤 재료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몰라서 덜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나름의 배려였던 것이다. 이런 배려의 동상이몽은 아주 흔하고, 심지어 우리 집 안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만 성향이 다른 부부이다. 엄마는 전형적인 집순이, 아빠는 이틀 이상은 집에 머물 수 없는 밖돌이다. 주말이 되면 아빠는 엄마에게 콧바람을 쐬어 주고 싶다며 여기저기 가자고 제안하고, 그런 아빠가 귀찮은 엄마는 휴일엔 좀 쉬라며 핑계를 만들다가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나갈 채비를 하곤 한다. 서로가 서로를 나름 ‘배려’ 한 것이다. 아빠는 운전이 피곤하지만 일주일 내내 심심했을 엄마를 위하는 거라 말하고, 엄마는 아빠가 쉬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나가고 싶어 하니 같이 가 준다고 말한다. 나가면서 서로 “나 같은 사람 만나서 고마운 줄 알아~” 라며 장난치는 걸 보면 진정한 동상이몽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도 섣부른 배려로 남을 불편하게 했던 경우가 있다. 회사 동기와 문자로 얘기를 나누던 중 동기가 고민이 생겼다며 가슴이 답답하고 이유 없이 불안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혼자 사는 동기가 걱정됐던 나는 전화를 걸어 한참 동안 그녀의 불안감을 덜어주려 노력했고, 언제든지 답답하면 전화하라는 말과 함께 통화를 마무리했다. 동기를 잘 챙겨준 것 같아서 뿌듯해하며 잠들었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그녀는 전화 통화에 자체에 어려움과 불편함을 느끼는 콜 포비아를 겪고 있다고 했다. 배려라고 생각했던 나의 행동이 오히려 그녀를 더 불안하게 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미안한 감정이 들며, 평소 내가 힘들 때 문자로만 위로를 건네 나를 섭섭하게 했던 그녀가 그제야 이해되었다.
이런 상황들을 보고, 겪고 나니 사람마다 받고 싶은 배려는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기준의 배려를 상대방이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배려가 없는 사람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진정한 배려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판단과 행동 사이에 질문 넣기
이 공식만 기억한다면 ‘덜어줄까?’, ‘피곤하지 않아?’, ‘혹시 지금 전화 괜찮아?’ 따위의 간단한 질문을 못해 배려가 없는 사람이 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