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햇 Apr 06. 2024

정신없는 일상과 별 볼일 없는 단상

개기일식이 다가오고,


        온 학교와 동네가 다음 주 개기일식 때문에 들썩들썩하다. 별 볼일 없는 이 시골 동네가 완전 일식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루트에 속한다고 한다. 때문에 작디작은 인구 수 10만 미만의 시골 동네에 약 30만 정도의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 행사 덕분에 모든 수업은 다 취소되고, 학교는 이날을 위해 4년간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1-2주 전부터 일식을 관찰할 수 있는 안경을 배부했다.




   학과에서 관광객이 몰릴 상황을 대비해서 행동 강령(?) 같은 지침을 배부했다. 식료품과 주유를 일주일 전에 미리 다 마쳐두고, 어디도 갈 생각을 말라고 한다. 이 작은 동네에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담 싶었다. 학과 단톡방에도 이미 어제부터 크로거에 식료품이 동났다는 중계 문자가 돌았고, 어느 마트에 재고가 있다는 정보 공유가 활발해졌다.



   원래는 이런 호들갑을 설레하고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삶이 너무 고달프다 보니 별 감흥이 없다. 그저 제일 빡센 수업이 2개나 있는 월요일에 몰려있는지라, 휴강에 행복할 따름이다. 대신 바로 그전 금요일까지 데드라인 2개, 월요일까지 또 데드라인이 2개에, 지도 교수님이 준 연구 논문 데드라인까지 있다. 남들은 축제겠지만, 나에겐 생존일 뿐이다.



     삶도 힘든데 어수선하고, 그 와중에 크고 작은 일들이 여러 생각을 하게끔 하는 한 주였다. 정신없는 일상 속 하잘 없는 단상을 담아보았다.




   금주의 금융 치료 - 소소하게 새로 산 도시락 가방 자랑으로 시작해 본다. 밀 프렙을 해서 다니니 사 먹을 때보다 돈을 한창 아낄 수 있어 좋다. 학교에서 보내는 절대 시간이 워낙 많다 보니, 기력이 달릴 때를 대비해서 간식도 잔뜩 넣어 다닌다. 매일 아침 간식 쌀 때가 기분이 가장 좋다. 과일도 씻어 넣고, 오레오 퍼프도 넣고, 고구마나 감자칩도 넣고, 초콜릿이나 쿠키도 싸서 간다. 소확행이다.




   다문화 심리 상담 과목 과제로 학내 성소수자 문화센터가 주최하는 소셜 이벤트에 다녀왔다. 가기 전에는 낯설어서 두려웠는데, 다녀오니까 여느 소셜 이벤트와 별다를 것 없었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한국보다도 미국 커리큘럼에서 특히나 잘 경험해 볼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퍼를 쓰면서도 유학 와서 보람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 두려운 것은 다른 점을 가진 누군가가 아니라, 편견이나 무지가 만들어낸 생각이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교정이 아름다워서 남편과 산책을 했다. 이런 꽃 사진을 자주 올리면 이제 또래 친구들이 나이 들어 보인다며 핀잔을 준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그저 좋은 걸 어떡한담! 미우나 고우나 남편이랑 노는 시간이 제일 솔직한 모습으로 편하게 존재할 수 있어 좋다.


미국에 와서 최근에 여러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나는 항상 똑같은 사람인데, 유난히 어떤 사람과 함께하면 스스로가 별로인 사람처럼 느껴지곤 한다. 반대로 또 어떤 사람과 함께하면 꽤나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상호작용은 참 신기한 것이다. 한 사람이 웬만큼 균일하게 존재할 뿐인데도, 누구와 놓여있냐에 따라 영 다른 역동이 생긴다. 이제는 서로 시너지를 내고, 다름 속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상호작용을 선택한다.     





     유난히 겨울 같던 봄날, 동기가 전기담요를 가져와서 같이 파묻혀 일했다. 별거 아닌데 이 순간이 왜 이렇게 포근하고 좋던지...... 둘이 아무 말도 없이 타닥타닥 노트북을 치면서 할 것만 했는데도 문득 이 순간이 소중해서 한 컷 남겨보았다. 기록을 남기니 이런 소소함을 돌아볼 수 있어 참 좋다.





  또 다른 소소한 순간 하나. 친구가 집에서 부활절마다 당근 케이크를 만드는 데 한 조각을 담아와서 나누어 주었다. 당근 케이크를 엄청 좋아하는데 서울에서는 사실 사 먹어만 봤지, 집에서 만든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홈메이드 케이크를 먹어봐야 한다며, 그다음부터는 너도 만들어 먹게 될 거라며 가져다주었다. 먹어보니 정말 카페에서 파는 맛 그대로였다. 게을러서 만들어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레시피부터 쟁여놓았다. 모쪼록 홈메이드 당근 케이크를 못 먹어 봤다는 말을 기억하고 가져다준 마음이 참 고마웠다.






   또 다른 꽃 사진이다. 날이 봄치고는 줄곧 흐리고 추웠지만 그럼에도 예뻐서 남겨보았다. 맨날 힘들어서 화나있으면서도 은근히 애교심이 있다. 할 것이 너무 많아 힘든데 어디에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 거참!






  가르치는 학부생 수업의 아이들이다. 이번 학기 대면 수업을 가르치면서 처음에 긴장도 되고 준비할 품도 많이 들어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조금 익숙해지고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정들고 가까워지면서 수업 분위기도 좋아지고 보람도 느낀다.


다만, 이번 학기는 수업을 두 개를 해서 그런지 유난히 사정이 있는 학생들이 많아서 거의 하루에도 이메일을 몇 통씩 받는지 모르겠다. 특히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개인의 취약성에 대해 관대한 입장이라서, 학생의 상황을 파악해서 답장을 하고, 상황에 맞는 조치를 취해주는 일이 꽤나 버거웠다. 티칭은 종합해서 볼 때 아직까지는 좋아하는 영역은 확실히 아닌 듯하다.





   자연친화적인 우리 동네다. 사슴은 언제 봐도 너무 귀엽고 예쁘다. 이 동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사슴과 함께 살아가는 한적한 시골 대학 타운이다.  




  주중에 밤새 엄청 강한 폭풍 경보가 왔었다. 자다가 누가 창문을 두드려 패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서 일어나 보니, 천둥 번개가 연달아 끝도 없이 치면서 빈지 우박인지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사진으로 잘 담기진 않았지만 저렇게 하늘에서 플래시가 터지는 듯한 번개가 2-3초에 한 개씩 쳤다. 여러 개가 겹쳐서 칠 때는 사방이 환해지기도 했다. 천둥이 칠 때는 온 집이며 침대며 진동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미국의 자연재해 스케일은 한국과 비교도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스톰이 오거나 하면 조금 무섭다. 새벽 4시 반에 혼자 깨서 무서워서 동기 단톡방에 문자를 보냈는데 깬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같이 문자를 주고받으니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었다.





한 주를 돌아보고 독백만 늘어놓고는 다시금 일터로 돌아가 본다. 다음에는 아마도 그 소란한 개기일식에 관한 경험을 가져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이 피자 봄방학이 불어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