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햇 Aug 08. 2024

자네,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겠나?

새학기: 사실 질문이 아니었다네


 새로 올 학기는 강제 아침형 인간이 확정되었다.



  앞으로 두 학기 동안 심리 상담 수련을 하게 될 센터의 근무 일정이 나왔는데, 아침 8시부터 5시까지 운영하는 센터 일정에 맞추어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8 to 5 풀타임인 날도 있고, 파트인 날도 있지만 일단 주에 3일은 8시부터 미팅이 잡혀있다. 오전 8시부터 스태프 미팅이라니...! 한국에서 9  to 6 직장 다닐 때에도 암묵적/도의적으로 첫 회의는 아무리 빨라도 9시 30분이나 10시부터였거늘.


   미래에 잠시 다녀왔다 - 아침에 잠도 깨지 못한 채 미처 다 말리지도 못한 물미역 머리를 어깨에 얹고 회의실에 앉아 부유하는 영어의 홍수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스스로를 보았다. 자명한 나의 미래와 애잔한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본다.


    오리엔테이션 일정도 나왔다. 8월 마지막 주가 개강이었는데, 갑자기 그 전주가 되었습니다? 역시나 8시부터 온종일이다. 방학에 늦게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큰일이다. 오리엔테이션 일정을 받아보니 약간 머릿속에 경종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여름 방학을 세상 게으르게 보내다가 갑자기 오리엔테이션에 가면 교육을 제대로 소화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뭐, 적응하는 수밖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조금씩 당겨서 개강 무렵까지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나야겠다. 그래도 오리엔테이션 일정표를 보니 시간대마다 교육이 매우 알차게 진행되는 것 같아서 좋은 점도 있다. 확실히 큰 기관에 가니 일단은 체계가 확실하게 잡혀있다. 제대로 교육을 안 하고 실전에 나가면 불안하다. 개강 전 주에 고생이겠지만 그래도 체계적인 교육이 있는 게 다행이다.


     남은 여름 며칠 알차게 쉬고 체력을 쌓아 두어야겠다......







    좋은 소식 하나 - 봄 학기에 작성하고, 여름 방학에 틈틈이 리비전하며 공저자로 참여한 저널 논문 중 하나가 Accept  되었다! 온라인 퍼블리쉬가 되면 흥미로운 내용에 대해 수요 없는 공급을 해보도록 하겠다. 직장인들에 퇴사 욕구에 기여하는 요소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아직 최종 수정이랑  행정이 일부 남아있어 나오려면 시간은 좀 걸릴 듯하지만 모쪼록 지난 학기 번아웃에 시달리며 작업한 터라 감격이다.


   BTS가 부릅니다, 피 땀 눈물.






     가르치는 수업의 오리엔테이션 동영상 녹화를 완료했다. 곧 동기 결혼식 때문에 여행을 앞두고 있고, 복귀해서는 곧바로 위에 언급한 지옥의 오리엔테이션 위크가 시작되기 때문에, 준비할 시간이 안날 예정이라 조금 미리 셋업을 해 나아가고 있다.


   어째 여름 방학에 한국말만 썼더니 영어가 더 퇴화한 것 같기도 하다. 녹화하는데 역시 말은 잘 안 나온다. 외국인의 숙명이다. 그럴수록 더 천천히 또박또박 당황하지 않고 이야기하도록 노력해 본다. 당황하면 말이 빨라지는데 그러다 더 엉킨다. 영상에 녹화된 얼굴은 언제 봐도 어색해서 최대한 작게 해놓고 눈에 띄지 않게 해둔다.  몇 가지 온라인 플랫폼 수정만 마치면 바로 Publish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보자고.









  딱딱한 일 생각은 여기까지였고, 여기서부터는 다시 말랑한 여름방학 라이프다.


   지난번 포스팅에는 크루아상에 한창 꽂혀있었는데, 이번에는 업그레이드해서 요거트 볼에 매료되어 있다. 플레인 요거트에 그래놀라와 견과류, 생딸기와 블루베리를 올려 자비 없이 비벼 먹는다. 어차피 종국엔 개밥처럼 섞일 요거트 볼이지만 괜히 예쁘게 만들고 싶어 요란을 떨어본다. 학기 중엔 또 언제 이렇게 요란을 떨어보겠냐며. 보기에 예쁘면 일단 기분이 좋다 - 그렇다, 나는 순도 99.99% F다-.


    시나몬과 꿀이 들어간 그래놀라와 베리들의 조합이 훌륭하다. 여름에 먹기에 시원하고 상큼하하다. 미국 마트에 오트밀과 그래놀라 종류가 진짜 많다. 앞으로 이것저것 실험을 좀 해볼 생각이다.






    아침을 느리게 먹고 먹은 자리에서 노닥거리는 취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베프가 추천해 준 <오렌지와 빵칼>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근래 <초역 부처의 말> 뭐 이런 수수하고 섬섬한 책들 위주로 읽다가 갑자기 고자극 소설을 읽으니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양극단을 오가는 롤러코스터 같은 소설이다. 심리 상담을 무슨 소시오패스가 진행하는 신경외과적 시술처럼 묘사해 두는 황당함도 있었다. -저희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렇지만 현대 한국인의 여러 민낯들을 직면한 부분은 공감이 가기도 했다.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이 직면이 주는 불편함은 어찌 보면 스트라이크의 지표일지도. 다분히 한국적이고 서울적인 소설이라 재미있었다.







    올여름 개인적으로 너무 뿌듯한 것 중 하나는 이 운동이다. 매해 새해 다짐 중 빠지지 않았던 것이 '규칙적으로 운동하기'였다. 매해 빠지지 않았다는 것은 매해 지키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올여름방학 살면서 처음으로 운동을 꽤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는데 성공했다. 조금 부끄럽지만 워낙 운동을 안 하고 저질체력이었던지라, 여름 방학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에는 트레드밀 달리기 속도를 시속 3.8 마일(6.1km)로 해놓고도 숨을 헉헉대고 멈췄다 달리다를 반복했다. 조급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한 주에 0.1마일씩 속력을 높이며 연습을 하다 보니 지금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5.0마일(8km)로 30분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뿌듯하던지!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이다. 빠샤!




       잠시 동안 학교 운동센터가 닫은 주에는 야외 트랙 달리기도 해보았다. 여름이라 더웠지만 흐린 날을 선택해서 달리니 그래도 할 만했다.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운 여름이다. 트레드밀보다 맨땅 달리기가 훨씬 더 힘들었다. 스마트워치로 속도를 보아하니 맨땅에서 달릴 때 더 오버페이스 해서 빠르게 달리고 금방 지쳐 나가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맨땅에서 뛰는 게 조금 느리게 느껴져도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페이스를 연구해 봐야겠다.


쓰다 보니 갑자기 뭐지, 이게 인생인가?라는 생각에 도달했다고 한다. 도래하는 학기는 반짝하고 꺼지는 페이스 말고, 천천히 오래가는 페이스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여름에 우리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팟인 아웃도어 풀장에 다녀왔다. 칸쿤에 다녀온 이후로 피부가 너무 타서 되도록 안 가려고 했지만, 이 여름에 방문하지 않으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늘진 선베드에 앉느라고 수영 레인은 사진에서 잘 보이지 않으나, 길게 펼쳐진 50m 레인에 푸르른 주변 환경이 정말 아름답다.


    수영을 조금 하다가 중간에 잠시 쉬러 선베드에 나와서 선글라스를 낀 채로 깜빡 졸았다. 헤드뱅잉을 하며 깼을 때는 약간 부끄러웠지만 기분 좋은 낮잠이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지만 그 나름의 북적임도 괜찮았다.


좋은 여름이다.






   무지막지한 개강이 아침형 인간 사이클을 들이밀며 불도저처럼 다가오고 있다. 두렵지만 차근차근 준비를 해보려 한다. 여름에 무지하게 잘 쉬고, 소소한 성취도 이루며 나름 즐겁게 보내서 새 학기를 씩씩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학기가 오기 전까지 알차게 여행도 하고 즐기려고 한다. 다음 포스팅은 미국 결혼식 후기 겸 여행 수기로 돌아오도록 하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