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수감사절 연휴에 시카고를 방문하면서, 시카고 근교에 있는 U of Chicago를 구경하기로 했다. 남편이 공부하는 경제학과가 특히 유명한 학교라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고 한다.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남쪽으로 30-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동선도 퍽 괜찮았다.
학교 가는 길 주변은 조금 황량하고 아주 안전한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교정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주변이 깔끔하고 단아하게 조성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클래식하고 고전적인 느낌의 저층 건물이 많았다. 멋스럽게 나이 든 건물들이 흐린 겨울 날씨와 잘 어울렸다. 겉으로 보기엔 되게 오래되어 보이는 견물들이 내부로 들어가면 세상 현대적이고 깔끔했다. 리모델링을 잘 해두는 것 같다. 미국답게 난방도 펑펑 나오고 있어서 오래된 건물이라 춥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기우임을 알게 되었다. 서울의 오래된 캠퍼스 건물의 랩실에서 생활하노라면 추위와 단열 안되는 창문은 기본이었는데 말이다.
캠퍼스 건물들이 높지는 않으나, 도시의 블록을 형성하듯 꽤나 빼곡하고 촘촘하게 붙어 세워져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인디애나는 건물 하나하나가 널찍하게 떨어져 있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었다. 부지가 단연 더 비싸서 그랬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건물이 촘촘해서 더 도시 같은 이미지를 주는 반면에, 시골 주립대 특유의 널찍한 여유는 없었다.
학내 서점에도 들어가 보았다. 자랑스러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영어 번역본이 벽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어 뿌듯했다. 얼마 전 동네 책방에서도 채식주의자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디피되어 있는 것을 보고, 연달아 이곳에서 두 번째로 본다. 이곳은 전공서적 이외의 대중서도 그 주제가 다양하게 많고, 고즈넉한 서점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어디 나다니기 추운 겨울, 주말 한낮에 따뜻한 커피 한 잔 들고 와서 책들 사이를 기웃거리기 좋겠다.
남편이 고대하던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 건물을 찾아 구경해 보았다. 역시나 외관상으로는 꽤 오래되어 보이는 클래식한 건물이었다. 들어가자마자 건물 1층에 노벨 경제학상을 비롯해 해당 학과의 경제학자들이 휩쓸어온 상들을 진열해둔 자그마한 특별 기념관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위의 메달이 노벨경제학상이라고 한다. 노벨상을 배출한 학교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멋지다. 솔직히 인정이다.
학생들을 위한 공간들이 문밖에서도 이렇게 훤히 다 들여다보였다. 문이 통유리로 만들어진 탓에 본의 아니게 구경할 수 있었다. 남편과 둘이 어느 곳이 박사생을 위한 공간이고, 어느 곳이 포스닥의 공간인가 토론을 펼쳤으나, 답을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고 한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학생들이 어떤 공간을 사용하는지는 지대한 관심사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
연휴라 학생들은 드물었지만 가득 놓인 짐이 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애잔하고도 공감 어린 마음을 살포시 보내보고 돌아섰다.
세상의 모든 박사과정생 화이팅...! (오열)
위의 첫 번째 사진은 니가다가 드물게 현대적인 건물이 특이하고 예뻐서 한 장 남겨보았다. Biogeology랬나 하여튼 조금은 생소한 학과의 건물이었다. 바로 아래 짝을 지어 학내 공유 자전거를 타는 학생들 모습마저도 어여뻤다. 두 번째 사진은 오래되어 보이는 문과 그 아래 계단, 그리고 덤불의 삼박자가 다 좋아서 또 한 컷 남겨보았다. 클래식한 바이브와 모던함이 공존하는 시카고 대학교다.
내가 공부하는 상담 심리 전공은 없었으나, 학생 심리상담소가 있음을 확인하여 방문해 보았다. 창문 너머로 보니 시설이 되게 크고 좋아 보였다.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추수감사 연휴 기간이라 열지 않았다. 아쉬워라! 문밖에서 열심히 훔쳐다 보는데, 여느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클래식하고 고풍스러운 외관과 깔끔하게 리모델링 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학교는 심리 상담 센터와 상담실을 어떻게 조성해두었는지 보고 싶었는데 퍽 아쉽다. 남의 떡을 부러워하고자 하였거늘 구경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
아, 그리고 시카고 대학에서 느낀 점 하나. 학생들이 옷을 비교적 더 차려입는다는 것이다. 블루밍턴에서는 요즘 날씨에 코트나 로퍼를 장착한 학생은 볼 일이 없다. 대부분 펑퍼짐한 운동복을 어그 부츠에 아무렇게나 넣은 채 패딩을 걸치고 다니는 것이 국룰이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모직 코트를 입은 사람들도 많이 봤고, 로퍼를 신은 이들도 여럿 보았다. 무려 바지가 대부분 청바지 아니면 면바지였다. 운동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블루밍턴에서 보던 캠퍼스 착장이 아닌데 하고 생각했다.
무슨 차이일까 궁금해졌다.
시카고 대학에서 예쁘기로 유명한 도서관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 반구(?) 모양 유리 내부에 열람실이 있는데 통유리라 뷰도 아름답고 인테리어도 잘 해두었다고 익히 들었다. 역시나, 추수감사절 연휴로 인해 닫은 상태라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밖에서 봐도 예뻤다. 디자인이 워낙 특이해서 지나가던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예쁜 장소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 학교에 다녔다면 왠지 이곳을 되게 좋아하지 않았을까 상상도 해보았다.
남의 떡을 실컷 구경하고 나와서는 학교로부터 10분 거리에 있는 한식집을 찾아왔다. 날씨가 쌀쌀해서 국물이 거하게 끌렸다. 부대찌개와 제육볶음을 시켜서 정신없이 먹었다. 너무 배고팠던 나머지, 몇 입 먹어버리고 사진을 찍은 것은 함정이다. 한식집은 블루밍턴에서 접할 수 있는 여느 한식집의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랄까, 특유의 미국물을 살짝 바른 한식 맛이랄까? 제육볶음에 청양고추 대신 할라피뇨가 들어있는, 미묘하지만 지대한 차이랄까? 고춧가루에 맵칼함이 잘 없는 맛이랄까.
되게 미식가인 척 해봤지만 그래도 추운 날 한식만 한 것이 없다.
여행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라가(Saraga) 안에서 순댓국을 파는 소공동 순두부집을 하나 찾아서 순대 국밥을 한 사발 하고 왔다. 귀도 아낌없이 들어있고, 들깻가루와 새우젓, 다진 양념까지 완비된 순대 국밥이었다. 밥을 말아서 먹는데 와-. 진짜 행복했다. 제대로 된 순대 국밥을 얼마 만에 먹어보는지 모르겠다. 함께 나온 무짠지와 김치, 무채도 맛있어서 신나게 곁들여먹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일상에 또 어찌 복귀하나 마음이 무거워지던 찰나였다. 세상만사 근심 걱정이 팔팔 끓는 순대 국밥에 녹아버리는 순간이었다. 든든하게 한 사발 하고 나니, 몸도 열이 나겠다 조금은 더 힘이 나는 느낌이었다.
배를 두드리며 바로 옆에 있는 사라가 인터내셔널 마켓에서 냉동 음식 위주로 한국 음식도 왕창 샀다. 신선한 정육과 해산물도 더 사 오고 싶었는데, 집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거린데 도로에 눈까지 오는 상황이라 선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섭섭한지고.....! 집 가까이에 H 마트나 사라가가 하나 있으면 참 좋으련만 싶었다. 남편과 다음 번에는 아이스박스를 사 가지고 가서 사올까 생각도 해보았다. 고등어랑 낙지, 한우 등등을 사올 수 있으면 밥상에 날개를 달 것 같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집에 잘 도착하여 사라가에서 사온 초야(Choya) 매실주와 여러 밑반찬을 펼쳐놓고 차돌박이를 구워 먹었다. 오랜만에 밑반찬 잔뜩 사다 먹으니 사람 사는 것 같았다. 추수감사절 연휴 덕분에 여행도 다녀오고, 돌아오는 길에 한식도 잔뜩 사와서 이렇게 힐링을 할 수 있지 않나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본다.
일상으로의 복귀다. 의심의 여지 없이 집에 돌아온 날부터 바로 본업으로 복귀를 해야만 했다. 추수감사절 직후 파이널 프로젝트들과 기말고사의 데드라인이 촘촘히 하루 단위로 지뢰밭처럼 깔려있는 까닭이다. 덕분에 연휴 직후 월요병을 겪을 새도 없을 듯하다. 초인적인 스피드로 일단 열 페이지 기말고사 페이퍼 하나를 미션 컴플릿하였다. 기뻐하긴 이르다. 아직 여러 개의 파이널들과 여행 가기 전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그레이딩도 쌓여있다.
그래도 이번 연휴 주간 시카고에서 찬바람도 코에 넣고, 도시의 북적 한과 화려함으로 환기를 잘 시키고 와서 마음이 좋다. 할 일을 다 미루고서라도 바람을 넣고 오길 잘했다 싶다. 이 힘으로 남은 학기 마지막 피날레로 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