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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Dec 20. 2024

미생은 미국 박사유학생의 약자일까

 Final Week다.

    그 말인즉슨, 학부생과의 전쟁을 치르는 시기라는 의미다. 학기 마지막 주마다 오피스 아워에 와서 울며 불며 학기는 끝났지만 과제를 방학 때 완성하게 연장해달라, 출석은 안 했지만 F는 주지 말라는 학부생들 때문에 참을 인을 새기고 또 새긴다. 되도 않는 이유로 찾아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 정말 당황스럽다.


     나도 늘 부족한 박사과정생으로서 우리 과 교수님들께 받은 친절과 스윗함을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내리사랑 전달하자고 늘 마음먹지만, 오늘도 인성이 파탄 나고 만다. 마음 같아서는 참을 인이고 나발이고 그냥 등짝 스매싱부터 날리고 노트북 모서리로 확 그냥 한 대 후리면 소원이 없겠다. 상상으로만 화풀이를 실컷 하고는, 이내 푼돈 박사 월급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친절한 말로 선을 그어본다. 백 번 정도 반복하고 돌려보내면 또 장문의 이메일을 보낸다. 한두 번도 아니고 학기 말마다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에혀, 오늘도 미생의 하루다.



     파이널 주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서 계속 일했다. 주말까지 일해야 해서 우울한데, 기왕 할 거면 학교에서 제일 좋아하는 예쁜 공간에서 하려고 나왔다. 학과 오피스나 심리 상담 센터와는 영 멀어서 평일에는 못 오는 건물인데, 공부하는 자리도 좋고 스타벅스도 바로 옆에 있어서 편리하다. 인테리어가 고전적이고 예뻐서 좋아라 한다. 낡았지만 클래식하고 어딘가 분위기 있다. 주말에 쉬지도 못하는데 기분이라도 내 본다.


  한참 할 일을 하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지나간다.



    요즘 블루밍턴 학교 안팎은 거의 이렇다. 겨우내 첫 번째 사진처럼 저렇게 을씨년스러우니 흐리멍덩하고 안개도 자주 낀다. 그래도 실내는 나름 아늑하고 예쁘게 장식해둔다. 학과 건물이 예뻐서 한 장 남겨보았다. 친구들과 조명이 제일 예쁜 테라스 자리를 차지하고 그룹 프로젝트를 했다. 파이널 프로젝트에서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넘어가기로 해본다. ^^ 결과론적으로는 좋은 성적으로  잘 마쳤으니 이쯤 하기로 해본다.



꿈과 환장의 파이널 주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바쁜 와중에 잠시 스트레스도 풀 겸 집안을 꾸며보았다. 각종 허영심이 넘치는 우리 집 거실 탁자다. 남편과 나의 취향을 나름 even 하게 반영하려다 보니 조금 잡다해졌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로 지적 허영심이 한참 심해져서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를 제일 전면에 배치해 보았다. 이번 겨울 방학에 귤 까먹으면서 전기장판에서 이 소설책 읽는 게 소원이다. 힘든 학기야 제발 빨리 좀 끝나라......! 나 로망 실현 좀 하자......


    그 뒤에는 미국심리학회(APA) 발간하는 월간 잡지를 구독해서 놓고 있다. 매달 재밌는 주제를 잘 뽑아서 구독하노라면 은근 재미있다. 하지만 순순히 고백하자면 학기 중에는 사실 워낙 읽을 게 늘 산적하기에 잘 읽지는 못한다. 순전히 방학 용이다. 왼편에는 술고래 남편이 마신 위스키들을 쌓아두었다. 비싼 술도 아닌데 왜 전시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취향 존중하기로 한다.


꼭 배우자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번엔 공간을 이동하여, 심리 상담 센터다. 종강에 근접할수록 체력과 에너지가 너무 달려서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 간식에 의존해 버티고 있다. 나의 성장형 슈퍼바이저 때문에 종강 한참 이후까지도 출근을 하게 생겼다. 학기 말 행정 업무가 많은데, 다른 트레이니들은 슈퍼바이저가 알아서 딱 종강 때 모든 것을 끝낼 수 있게 해주더구먼, 나의 성장형 슈퍼바이저는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챙겨야 한다. 그마저도 내가 모르는 것은 빠지기 일쑤라, 다른 스태프가 뭐 빠졌다고 일러주면 다시 가서 또 해야 한다. 쒸익쒸익, 부들부들


    노트북을 집에 가져가서 못다 한 부분을 마쳐도 되냐고 했는데, 의료시스템을 보안 서버에서만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안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크리스마스이브 전날까지 나가게 생겼다. 스태프들도 다들 휴가 쓰고 없는 사람이 태반이라던데 말이다.


     쓰다 보니 주어진 여러 역할마다 어째 포스팅이 전부 기승전분노로 끝나는 것 같다. 어쩐지, 이번 주에 소진감도 심하고, 기력도 딸리고, 사소한 것에도 불같이 화가 나더니 이렇게 쓰면서 돌아보니 여러 영역에 걸쳐 쌓이는 것들이 참으로 많았구나 싶다. 안 되는 것들을 다 해내려고 용쓰고 무리하고,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로 내일의 활력과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한 주였다. 여러모로 속이 쓰리다.



종강하면 커피와 몬스터부터 끊고 몸 건강과 마음 건강부터 되찾으리라.


    늘 그렇듯 이번 주까지도 열일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퇴근했다. 돌이켜보니 이번 학기 내내 거의 이랬던 것 같다. 일 마치고 퇴근하는 길, 주차장에 늘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있는 차를 볼 때마다 어딘지 애잔하고 처연하달까, 조금은 서글프달까 그런 마음이 든다. 고생했다, 나 자신. 인생은 고되고,  타지에서 살아남는 게 거저 되진 않는다.


   그래도 뭐 어떡하나 - 삶이 계속되는 한 버티고 버텨야지. 삶이 또 항상 나쁜 건 아니니까. 힘든 얘기 실컷 썼으니 이번엔 괜찮은 부분도 균형 있게 들여다보자.  


    생일이었다. 심리 상담 센터에서 트레이닝 디렉터 선생님께 소소하게 선물과 카드를 받았다. 뜨거운 우유에 녹여먹는 핫 초콜릿이라나 엄청 귀엽게 생겼다. 아까워서 먹겠나 싶다. 직장 티셔츠도 받고, 소소하게 축하도 받아 기분이 좋았다. 이 직장이 이번 주 주된 스트레스원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직장이 좋고, 내 일이 좋다.




     어쩌다 보니(이라 쓰고 남편이 내 생일을 까먹어서라 읽는다) 생일 당일 친목 모임을 잡게 되었다. 전생에 무슨 복을 쌓았는지, 타지에서 친구가 미역국과 한식 어마어마한 밥상을 차려주었다. 이렇게 많은 종류 음식을 혼자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움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가득해서 그런지 너무나 맛있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밥을 싹싹 비웠다. 타지에서 이런 정과 마음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박사 동기들이 생일에 진심인지라, 바쁜 와중에도 다들 어렵게 모여 외식도 했다. 학기 말이라 다들 절여진 상태로 만나서 같이 하소연도 하고 그랬다. 사실 이번 생일은 파이널 직전에 있어서 다들 바쁘고 힘들 것 같아서 조용히 넘어가려고 하다가 동기들에게 딱 걸려 원성을 들어야 했다.


    곧 크리스마스라 다들 또 가족들의 품으로 뿔뿔이 돌아갈 텐데 그전에 다 같이 볼 수 있어 좋았다. 소소한 카드와 선물, 꽃으로 마음도 전해 받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타지에서도 같이 생일을 기념할 친구들이 있다는 게 새삼 감사하게 느껴진다.



태어나길 잘했네!


    생일날 받은 꽃다발들을 모아서 화병에 새로 꽃꽂이를 해서 식탁에 장식해 두었다. 꽃 줄기 길이를 다르게 해서 높이를 다양하게 해서 꽂아놓으니 어여쁘다. 통통-한 꽃잎들이 집에 한껏 피어 있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볕이 드는 낮에 보면 색감이 쨍-하니 생생하고, 저녁에 식탁 조명 아래에 있을 때에는 색이 은은하니 어여쁘다.


   어서 이 전쟁 같은 학기의 막바지가 잘 지나서, 꽃을 원 없이 바라보며 식탁에서 한가롭게 한강 작가의 책을 볼 여유가 생기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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