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샌프란시스코 여행기 2
신나게 작성해둔 여행기 2편 포스팅이 검토만 앞두고 다 날아가 버렸다. 덕분에 여행기를 쓸 동기를 순식간에 잃어버려 방치해두고 있었다. 그러다 험악한 미국 중서부의 날씨를 겪고 있자니 무릇 샌프란시스코의 연중 온화한 기후와 쨍한 볕이 그리워졌다.
그리하야 다시금 마음 다잡고 돌아온 3월 봄방학의 샌프란시스코 여행기 에피소드 2편을 (다시) 시작해 본다.
여행 내내 사촌 언니네서 신세를 졌다. 언니가 내준 침대가 정말 포근했다. 묵직하고 따뜻한 이불과 그 안을 가득 채워주는 전기장판의 온기란! 전날 관광의 피로와 안락한 침대의 시너지 효과로 진한 숙면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개운하게 한 잠 푹 자고 나오니 언니가 한식 아침을 차려주었다. 아침부터 소갈비를 구워주는 것은 너무나 치명적인 플러팅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갈한 곤드레 밥과 비지찌개, 양념 갈비, 배추김치와 고들빼기 김치까지! 중서부에서 보기 힘든 한식을 한 끼에 다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한식파인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아침이었다. 언니의 바지런한 보살핌에 아침부터 배를 든든하고 따뜻하게 채우고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디선가 퍼 온 것만 같은 정석적인 금문교의 사진이다. 막 찍어도 그림이 되는 느낌이다. 날씨가 다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코발트블루색으로 대칭을 이루는 바닷물, 그리고 그 가운데에 대비되는 바알간 금문교의 색감이 아름답다. 햇살이 좋아서 춥지도 않고 폼폼-하니 적당히 들뜨는 봄가을 날씨였다. 때로 금문교 주변으로는 안개도 많이 끼고 흐리고 궂은 날들도 은근히 많다고도 한다. 운 좋게 너무나 쨍한 날씨와 탁 트인 시야가 허락되었다.
한 가지 놀랐던 점은, 이곳 비스타 포인트 앞 주차장에는 차에 물건을 두고 내리지 말 것을 당부하는 푯말이 붙어있다. 일부 관광 스팟에서는 차량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훔쳐 가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부는 아니지만 실제로 샌프란시스코 일부 지역에 주정차를 할 때 온갖 짐을 다 가지고 내려야 하는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이곳의 치안이 실감되었다. 사실 이는 훨씬 크고 복잡한 서울에서 근 30년을 살면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레벨의 치안이었다.
낭만적인 도시의 풍경과 사뭇 대비되는 현실이었다.
모쪼록 경치가 끝내주게 좋은 커피숍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며 한동안 금문교 주변의 풍경을 눈에 꼭꼭 담았다. 실제로 가보면 사진보다도 더 탁-트이고 시원시원한 느낌이 든다. 아름다운 풍경과 딱 적당한 날씨, 맛있는 커피와 평일 오전의 여유가 기억에 남는다. 케이블카 탑승에 이어,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 TOP3 중 하나로 꼽히는 순간이다.
벌써 또 가고 싶다.......!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금문교를 차를 타고 지나가보았다. 위의 포인트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금문교를 바라볼 수 있는 호크힐에서 잠시 정차했다. 반대편에서 바라보니,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렇듯 한 발 떨어져서 보니 첨단 테크를 달리는 빌딩 숲 지역과 주거 지역들, 그를 둘러싼 큼직한 바다와 천혜의 자연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것은 그 안에 있는 것과 늘 다른 느낌을 선사하곤 한다.
위 사진은 사촌 언니가 호크힐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찍어준 사진이다. 이번 여행의 인생 사진이 되었다고 한다. 휴대폰 카메라의 쨍함과는 또 다른 바이브를 선사한다. 이 사진이 주는 어딘가 센티멘탈하고도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다. 낭만을 담는 카메라다.
그렇게 금문교에서 호크힐을 지나 차로 조금 더 들어가서 뮤어 우즈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엄밀히 말하면 국립공원인 National Park와는 또 다른 단위인데, 구글맵에 국립공원이라고 번역되어 있으니 그냥 사용하도록 하겠다. 이곳에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나무족들을 연상케하는 큼지막-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나이테를 분석해 봤을 때 A.D. 800년 경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들도 있다고 한다. 나무들 근처에 가면 어찌나 작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중간중간 쓰러진 나무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단면의 지름이 거의 내 키만 하다.
자연에 압도되는 기분은 퍽 나쁘지 않다. 지난해 그랜드캐니언을 여행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낸 거대한 자연물들을 보면 우리네 삶은 얼마나 작고 찰나일 뿐인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매일을 사로잡는 고민과 걱정거리들이 사소하게 느껴진다. 일상에 파묻혀있노라면 그런 고민과 걱정들이 당연스럽게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곤 한다. 잠시 그곳을 벗어나 더 크고 먼 시각에서 바라보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는 것을 말이다.
자연 앞에서는 겸손해지게 된다.
이곳은 샌프란시스코 여행 코스로 꽤 알려진 소살리토다. 마찬가지로 금문교를 넘어가서 머지않아 나오는 동네다. 다운타운에는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아기자기한 것들을 파는 상점이 즐비해있다.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가게, 옷 가게, 기념품 가게, 사탕 가게, 젤라또 가게 등등이 줄지어있다. 구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 바다가 보이는 뷰가 아름다운 곳에는 야외 테라스 석을 갖춘 음식점들이 있다.
이곳에서 젤라또를 하나씩 사서 당을 충전하며 천천히 거닐었다. 다운타운을 지나 세상 요트들은 다 정박시켜놓은 듯한 요트 주차장을 맞닥뜨렸다. 저 요트를 사서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산다. 도대체 부자가 얼마나 많은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대체 언제쯤......? 하는 무용한 생각도 한 번쯤은 해보게 되는 곳이었다.
소살리토에서 조금 더 가면 플로팅 하우스들이 나온다. 바다 위에 부목을 덧대어 주택을 지은 동네들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사진을 찍었지만 실제 주민들이 사는 개인 주택인 관계로 업로드하지는 않았다. 집들마다 개성이 뚜렷해서 둘러보기만 해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소살리토에서 조금 더 가면 티뷰론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소살리토보다도 티뷰론이 훨씬 아름다웠다. 소살리토는 살짝 관광지의 느낌이 난다면 티뷰론은 조용-하고 한적한 부촌의 느낌이었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영화 극장도 있고, 샌프란시스코가 한눈에 들어오는 공원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벤치에서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 애완견과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등 조금 더 현지인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뷰를 자랑하는 티뷰론의 한 레스토랑에서 일몰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저 멀리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도 보이고, 조금 전까지 있었던 소살리토의 집들도 보이는 아름다운 레스토랑이었다. 또 바다를 가만 보다 보면 온갖 야생동물이 보이기도 했는데, 돌고래 가족들이 무리 지어 지느러미를 뽐내며 노니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었다.
천천히 여유롭게 저녁을 먹으며 일몰이 지는 것을 구경하니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이었다. 세상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언니와 수다를 떨며 별 얘길 다하며 즐긴 저녁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 TOP 3의 마지막 세 번째 조각은 티뷰론과 레스토랑이었다.
돌이켜보니 이번 여행 내내 너무나 운 좋고 감사하게도 로컬인 사촌 언니들 덕분에 더 알차고 특별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보낸 옹골찬 이틀이 이렇게 저물었다. 그 뒤에는 근교의 천혜의 자연을 찾아 탐험하게 되는데......! 또 어떤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