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게 업인데, 쓰는 게 싫어진 건에 대하여

by 화햇


브이로그 포스트가 뜸했다.

근래 '쓰기'에 질려버렸다.


강의를 듣는 여름 계절학기 수업에서 질리도록 페이퍼를 쓰고 있다. 한 학기 커리큘럼을 6주에 압축해 둔 수업이라, 거의 페이퍼 쓰는 공장과 다름없다. 양심상 '써 제낀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잘 쓰는 것은 바라지도 않은 지 오래고, 마감 쳐내기만으로도 바쁘다. 거기에 지도 교수님이 잔잔-히 재촉 중인 각종 연구 프로젝트 논문들까지......! 매일 '쓰기'의 의무에 압도되어 있다. 쓰는 것 자체에 너무나 피로감을 느껴서, 평소 힐링으로 쓰던 브이로그 포스팅마저 버겁다.


원래 논문 읽고, 생각해 보고, 쓰고 이런 시간을 제일 좋아했기에 의아하기도 하다. 아마도 1) 쉴 틈 없이 2) 홍수처럼 3) 시간과 교수님에 쫓기며 하다 보니 급속으로 질리고 지친 게 아닌가 싶다. 언제쯤 내 속도로 내 인생 살 수 있는 것인가 답 없는 물음을 던져본다. 그러다 문득 나는 자유와 독립의 몸이 아닌, 서양 도비 대학원생에 불과하다는 자기객관화에 도달하였다.



지겹도록 무료한 여름을 보내고 싶었는데, 되도 않는 꿈이었구나 싶다.

할 게 너무 많아 학과 오피스에도 계속 나갔다. 하루는 가기 싫은 마음을 강제해 죽상이 되어 오피스에 갔는데 위의 사진처럼 학교 전체가 불도 안 켜지고 아무도 없었다. 뭐지? 세상이 나를 왕따시키나 생각하던 차에, 교수님 한 분이 나타나 독립기념일 날 놀러 안 가고 왜 여기 있냐며 의아해했다. 독립기념일인 줄도 몰랐던 외국인 1인이요.....! 독립기념일이고 나발이고, 어차피 그 문제의 빡센 수업 데드라인이 있는 날이라 휴일 밤 자정까지 페이퍼를 제출해야 했다. 혼자 고독하게 불을 켜고 무한 쓰기의 굴레에 빠져있다가 왔다는 후문이다.


어째 방학이 학기 중이랑 다를 게 없구나하

요즘 내 상태 한 장 요약이다.


할 건 늘 많은데 어쩜 이렇게 하기 싫은지 모르겠다. 빡셈으로 응축된 이 계절 수업이 빨리 끝나야 삶이 조금 살만해지려나 모르겠다. 평안한 여름을 보내고 싶으면 이 수업을 넣지 말라던 고년 차 선생님들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한국이나 빨리 가서 놀고 싶다.





한국 면 음식이 근래 당겨서 냉면도 해먹고, 재료 듬뿍 넣고 짜장면도 해먹었다. 그나마 맛있는 집밥해 먹는 것이 위로고, 낙이다. 한국 살 때는 집에서 짜장면을 직접 해 먹는 것은 상상도 안 해봤는데, 미국 나오니 선택지가 없다. 먹고 싶으면 별 수 있나. 춘장부터 볶는 거다. 편하게 먹던 우리 집 앞 동보성 너무나 그립다...... 각종 면옥들도......



한국이 그립다


그래도 미국 시골 생활의 이점 중 하나는 달리기에 최적화된 환경이라는 것이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공기, 늦게 지는 해, 잘 닦인 트랙, 건조하고 바삭한 내륙의 습도 -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이 환경은 확실히 그리워할 것 같다.


잘 닦인 학교 트랙에서 보통 뛰는데, 요즘 뛰는 거리와 시간이 서서히 늘어날수록 트랙에서 뱅뱅 도는 것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풍경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달리면 조금 덜 지겨우려나 싶은데, 동네가 워낙에 작은 동네다 보니 내달릴 곳이 마땅치는 않다.



하여, 요즘 코스에 대한 고민이 많다.


한국에 갈 날 만을 손꼽으며 친구들 선물을 미리 주문해 두었다. 계절학기 수업을 마치고 한국에 가야 비로소 조금 쉴 틈이 생길 것 같다. 그전까지 하기 싫은 마음을 꽁꽁 잘 캐리 하며 힘들지만 조금만 더 가보도록 하겠다. 죽지 못해 할 일을 해 나아가고 있는 모든 영혼들에게 삼삼한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포스팅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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