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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Aug 03. 2022

좌충우돌 미국 시골 운전연습기

오래된 운전 로망, 그리고 좌절의 이야기

블루밍턴 중고차 매장

  드디어 블루밍턴에서 중고차를 샀다. 직접 발품을 팔아 중고차 매장을 돌며 시승을 해보고 어렵사리 데려왔다. 연식이 꽤 된 차였지만 쪼들리는 우리 예산에 맞는 괜찮은 아이였기에, 귀하게 모셔오게 되었다. 뙤약볕을 걸어서 1시간 걸려 갔을 거리를 차로 15분 만에 가니까 너무 기뻐서 어이가 없었다.


  한국에서 도로연수를 15~16회 정도 했었다. 나름 자부심이 있었는데, 차가 없었던지라 연수가 무색하게 운전을 할 일이 없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이곳은 기회의 땅 미국 아닌가? 중고 SUV를 데려왔으니 신나게 탈 일만 남은 것이다.



  처음 운전대를 잡고 매우 설레었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은 탓에 감이 조금 없고, 어려웠다. 사방이 유리창이긴 한데 시야가 높고, 안 보이는 곳이 은근히 많아서 좀 답답했다. 어깨가 귀까지 닿을 정도로 경직되었다. 그러나 웬걸? 막상 길에 나가서 천천히 적응해 보니 탈만 했다.



  학교에 일정이 있던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학교까지 운전연습을 해보았다. 생각보다 서울에서 연습을 할 때보다 수월했다. 시골이라 그런지 확연하게 교통량이 일단 적다. 차선을 바꾸려 해도 빽빽하지 않고 부담이 없다. 도로도 어찌나 널찍한 지 차선 깔아뭉갤 걱정이 없다. 남편을 학교에 내려다 주고, 주차를 하러 갔다. 혼자서 차까지 돌리고 후면 주차를 했더니 성취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와..... 내가 가족을 등교시켰다! 후진해서 주차도 했다!'



  너무 기뻤다. 타지에서 이토록 기능적인 나라니...! 혼자 기념사진도 남기고 차 안에서 기쁨의 춤사위도 펼쳐보았다. 금방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과 밥을 먹으러 이번에는 조금 더 큰 도로로 나가보았다. 이 햇볕, 구름, 속도. 모든 게 조화로워.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하며 속으로


뭐야 나 잘하잖아?
할 수 있잖아?!

라고 생각하던 순간, 좌회전하는 포인트를 놓쳐버렸다.




  갑자기 멘붕이 왔다. 눈앞에 맞은편 좌회전을 기다리는 차가 정면에서 가까워지고 있었다. 멘탈이 나가서 급하게 오른쪽 차선으로 옮겨갔는데, 사이드로 뒤차를 확인하지 않고 급하게 틀면서 들어가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나도 너무 놀랐고, 남편도 식겁해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멘탈이 나가서 그 뒤로도 좌회전 타이밍을 연달아 두 번인가 세 번을 놓쳤다. 그때마다 급 오른쪽 차선 침범하기를 시전했고, 정신이 정말 나가버렸다. 차가 잘 없는 동네이기에 망정이지. 내가 미쳐 진짜, 미쳐부러......



  자신감이 바닥까지 급 떨어지고 위축되어 자책의 쓰나미가 시작됐다. 갑자기 너무 긴장이 되니까 시야가 좁아져서 봐야 할 표지판이 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이런 시련이....... 뚝 떨어진 자신감에 운전대를 잡기 어려웠다. 속상함에 마음이 착 가라앉고 먹구름이 짙게 깔렸다. 너무 방심했던 건지, 운전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건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잠시 동안 남편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조수석에서 침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동안 심란해서 조금 쉬다가, 콜라로 당 충전 겸 심기일전을 하고 연습을 재개했다. 이제 뭐가 문제인지 알았으니까 차분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다시 해보는 거다.





  겸손한 마음으로 무탈하게 운전을 마쳤지만, 완전한 녹초가 되어 귀가했다. 하루에 성취감과 실패감이 다 들어 있었다. 처음 운전을 시작할 때는 스스로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는데 말이다. 이전부터 워낙에 해보고 싶었던 운전이었기에, 직접 해보고 너무도 들떴던 것 같다. 정말 글자 그대로 좌충우돌이 아닐 수 없다. 반성한다.......


  첫 술에 배부르랴. 앞으로 차근차근 더 익숙해지면서 블루밍턴 베스트 드라이버로 거듭나리라. 운전도 수련한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천천히 늘려 나아가야겠다. 깜짝 놀랐던 가슴을 잘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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