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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a Jun 09. 2024

Goodbye 60! 나의 마리오네트

잃어버린 어릴 적 풍선을 찾아 떠나다

“새로 준비한 공연을 처음 선보이는 날 아침의 설레임, 한 손에 표를 꼭 쥐고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아이의 표정, 무대의 막이 올라갈 때 보이던 관객들의 표정, 그 행복한 시간을 평생 너희와 함께 하고 싶었단다.”  

                                          - <마리오네트> 늙은 인형사가 마지막 무대 공연 전 인형들에게 –


세상에 나서는 게 무섭고 어려웠다. 

성공은 남이 하는 것이고 나는 그들의 무대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좋았다. 

나는 성공보다 평범, 도전보다 안정, 이상보다 현실을 더 중히 여겼다. 

“이만큼이면 돼, 더는 나아가지 마.”

나에게는 늘 거기까지라는 선이 있었고 그 선은 나를 막아서는 강력한 의지로 작용했다. 


글을 깨우치면서부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 집 대청마루에 걸린 ‘시’다. 

자개 무늬가 박힌 낡은 액자는 내가 태어나 고향을 떠나올 때까지 늘 그 자리에 걸려 있었고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집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변한 후에도 걸려 있었다.


“ 할머니, 삶이 무슨 뜻이에요? ” 할머니는 먼 산만 보고 계셨다.                            

“ 엄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이 무슨 말이야? ” 엄마는 흘려듣듯 웃으시기만 했다.             

“ 언니, 삶이 왜 그대를 속이는 거래? ”                                                 

“ 으응, 나도 잘 몰라 그런 게 있겠지 ” 언니마저 시큰둥한 대답이었다.


아들 귀한 종갓집에 반기는 이 없는 다섯째 딸 막내로 태어난 나는 하루를 엎어두어도 살아있었다고 한다. 

목이 비틀어지도록 볏단을 머리에 이고 나르던 큰 언니들과 달리 나는 도시로 유학을 떠났다. 

만리동 언덕 언니의 단칸 신혼 방에 끼여 살며 낮엔 일하고 밤엔 학교에 다녔다. 

눈물 젖은 빵이라도 실컷 배불리 먹고 싶었던 시절 세상은 모질고 참 아팠다.


국어 선생님을 동경하다 나는 문학소녀가 되어갔고 푸시킨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시집을 잘 가야 한다는 언니의 걱정으로 가정학과를 택했다. 

매일 종종거리는 출퇴근에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다. 

수많은 계절이 오고 가는 사이 아들딸 유학도, 어느새 딸은 결혼도 시켰다.


“얘들아~ 좋은 데서 밥 먹자! 드디어 네 엄마 예순 생신날이다”                         

“어머! 어느새 엄마 예순이네! 생신 축하해 엄마!”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응 고마워 …. 나….  벌써…. 그렇네….  60….”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깬 듯, 기다리던 것이 오고야 만 듯 나는 예순에 도달했다. 

축하를 받으며 떠밀리듯, 무엇을 먹었는지 모를 식사 한 끼와 최신 핸드폰이 관절염을 앓는 내 손에 

최고 비싼 선물로 난생처음 쥐어졌다.


말로만 듣던 그 고개를 드디어 넘은 셈인데……. 갑자기 눈앞은 정지 동영상이 되었다. 

기분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일상이 텅 비어버리고 주변엔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떠 있는 조각배에 혼자 타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처음 생, 어렵고 힘든 목숨을 건 불모지, 

그 멀고 먼 여행지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안전하게 돌아온 것이라 하자던 내 생각은 무너졌다.

미리 세뇌시켜 두었던 각오가 완전 백지상태가 되었다. 

나에게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던 마음이 무너지는 인생 한 바퀴의 지점이었다.


“효심아, 잘 지내?” “응, 난 잘 지내지!” “너도 잘 지내지?” 

“아니, 난 아파 많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어디가 많이 아파?”...  

“효심아, 넌 괜찮아?” “뭐가 괜찮아?" “무슨 말이야 왜 그래?,.. "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거리로 나갔다. 걷고 또 걷고 세상이 캄캄해질 때까지 걸었다. 

나는 매일 방황했다. 내가 왜 그러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햇살은 여전히 온 세상을 비추고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바삐 나를 지나갔다. 


“빨리 식사 오세요! 다 식어요.” 

아침과 저녁 매일 서너 번씩 부르다 끝내는 언성을 높여 전쟁을 치르던 그 말,

40여 년 동안 8만 번도 넘게 했을 그 말이 나오질 않았다. 


새로운 마법사가 인형극장에 찾아와 관객을 바꾸던 날, 평생을 인형들과 함께 살아온 인형사의 마지막 공연 날, 비보이 크루의 뮤지컬 속 장면이 나의 마지막 공연 무대가 되었다.


평생의 공연을 끝낸 인형사가 깊은 잠 속에서 시간을 되돌릴 때, 잃어버린 어릴 적 풍선을 인형들이 나타나 다시 찾아주는 그 장면과 함께, 나는 한국을 떠났다.     

 

관절마다 묶인 실을 푼다.

Goodbye 60! 나의 마리오네트.   

   

이제, 시작이다.    

       



Goodbye 60! 나의 마리오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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