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탭 럭키펜 캠페인 비하인드 스토리
고객이 감동해서 울었다는 피드백만큼
우리를 기쁘게 할 말이 또 있을까요
설탭에 입사한 지 벌써 1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첫 출근 날, 우리 팀(브랜딩팀) 코너 한편에 빼곡히 쌓여있던 택배상자들과 지퍼백에 개별 포장되어 네임텍이 붙여진 각종 펜들을 발견했을 때의 순간을. "이게 뭔가요?"라고 물었던 내 질문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나는 정신없이 첫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2024 수능을 앞둔 설탭의 고3 학생들을 위한 '럭키펜 캠페인'. 이것은 수능 30일 전 설탭 선생님들이 자신의 소중한 펜에 행운을 담아 학생들에게 전하는, 작지만 특별한 응원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우리는 선생님들이 보내준 그 소중한 펜을 고이 포장해서 학생들에게 깜짝 선물로 전달하는 전달자 역할이었다.
'진정성'이라는 키워드를 담아 시작한 이 캠페인은 예상보다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지금도 내 가슴 한편에 감동으로 남아있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감동해서 울었다는 한 학생의 진심 어린 피드백 덕분에.
*설탭은 회사명이 아니라 (주)오누이라는 회사의 서비스명이자 브랜드지만 이 글에서는 인지도 편의상 '설탭'이라고 표기함
* 설탭은 명문대 출신 선생님들과 1:1 비대면 과외를 제공하는 교육 플랫폼이다. 학생들이 태블릿을 통해 실시간 소통하며 맞춤형 커리큘럼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기출문제와 교과서 자료 제공, 스마트 인강, 자동 채점 문제집 등을 통해 효율적인 예습과 복습을 돕는 서비스다.
수험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 팀은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답은 단순했다. 수험생들에게는 비싼 선물이나 거창한 이벤트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겪어본 누군가의 진정한 응원과 위로가 필요하다.
팀의 유일한 디자이너였던 나의 역할은 이 프로젝트의 모든 시각적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200명이 넘는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마음과 그것을 기다릴 수험생들의 기대를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 특별한 감동을 전달하는 비밀 프로젝트의 시각화를 맡았다는 설렘도 컸다.
나는 한 가지 도전적인 과제와 마주했다.
어떻게 하면
'진심 어린 응원'이라는 무형의 감정을
물리적 패키지에 담아낼 수 있을까?
단순히 예쁜 상자에 담아서 전달하는 것이 아닌, 선생님의 진심과 학생을 향한 응원을 온전히 담아내야 했다.
수능을 봤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자. 불안하고 막막하며, 때로는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외로움. 수많은 고민 끝에 찾아낸 해답은 '망망대해에서 만난 유리병 편지'라는 메타포였다. 디자이너로서 나는 항상 시각적 은유가 가진 힘을 믿어왔다. 추상적인 감정도 적절한 시각적 메타포를 만나면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기에. 이 메타포에 확신이 들었다.
수능을 준비하는 시간은 마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이런 수험생들의 마음에 가장 와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엄마도 학교 선생님도 아닌 바로 이 여정을 먼저 겪어본 선배의 진심 어린 응원이 아닐까?
그렇게 탄생한 것이 '유리병에 담긴 편지와 럭키펜'이라는 컨셉이다. 마치 망망대해에서 발견한 반가운 메시지처럼, 선배가 건네는 따뜻한 응원의 마음을 담고 싶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 누군가 네 곁에 있다는 작은 희망. 이 모든 마음이 '유리병에 담긴 행운'이라는 키 비주얼로 구현되었다.
우리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설탭이라는 브랜드의 존재감을 최소화하기로 한 것이다. 패키지에서 설탭의 심볼마크나 브랜드 컬러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았다.
학생들이 가장 처음으로 마주할 패키지 상자 뚜껑에는 럭키펜 워드마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뚜껑을 열고 가장 처음 눈길이 닿는 것은 오로지 유리병과 펜 뿐이도록 설계했다. 즉 유리병에 달린 학생의 네임택(이름이 손글씨로 쓰여진), 그리고 투명한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선생님의 펜이 가장 먼저 보이도록 했다.
모든 프린팅 요소는 화이트 컬러로 은은하게 처리했다. 설탭의 로고는 최 하단에 작게 들어가도록 디자인했다. 로고는 설탭이 전달해 준 것이라는 '신뢰성'의 요소로써만 존재했다. 이는 학생과 선생님의 진심이 만나는 그 순간에 기업의 존재가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리의 철학 때문이었다.
브랜드의 존재감을 지우는 것. 보통의 프로젝트라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메시지의 본질을 살리기 위한 디자인적 결단이 중요한 순간이었다.
수험생들의 예민한 마음을 고려했을 때, 파손된 제품이 배송되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제작 비용이 더 들더라도 이중 구조의 지기구조를 채택했다. 내부 구조는 덮개 패드와 골판지 합지의 이중 조합으로 유리병이 흔들리지 않도록 견고하게 고정되는 구조로 디자인했다. 작은 디테일 하나가 수험생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로서 나는 '견고함'을 단순한 내구성의 문제가 아닌, 사용자 경험의 일부로 보았다. 패키지 제조 업체에 가장 당부했던 부분이었다.
"유리병이 단단히 고정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절대 깨져서 도착하면 안 돼요"
유리병이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고정 방식, 박스를 열었을 때의 첫인상, 더스트백을 꺼내는 순간의 촉감까지. 모든 순간이 섬세하게 설계된 경험 디자인이었다.
우리는 한 가지 확고한 원칙을 세웠다. 모든 레터링 작업을 디지털 폰트가 아닌 진짜 손글씨로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단순히 손글씨체를 모방한 폰트가 아닌, 우리가 직접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쓴 진짜 손글씨였다.
이는 단순한 고집이 아닌, 손글씨가 가진 특별한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직접 써준 글씨를 마주하는 순간의 감동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207명의 학생 하나하나의 이름을 네임택에 손수 적으면서, 각 학생이 자신의 이름이 적힌 네임택을 발견하는 순간의 설렘을 상상했다.
더불어 우리는 물성의 선택에도 깊은 고민을 담았다. 적절한 사이즈, 그리고 우리의 상상속 '유리병 편지'의 감성을 잘 전달할만한 최적의 형태를 가진 유리병을 찾고 선정하는 일, 최적 사이즈의 코르크마개를 찾는 일 등등
무엇보다 차가운 유리병에 따뜻한 감성을 더하기 위해 자연스러운 질감의 노끈을 선택했는데 이 결정은 우리의 포장 공수를 복잡하게 만드는 (다소 고통스러울) 결정이었지만,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을 결정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 노끈을 유리병 목에 정성스레 감아 네임택을 달았다.
그리고 유리병 안에는 선생님의 소중한 펜과 함께, 설탭 CEO의 편지를 담았다. 이 모든 요소들이 만나 하나의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완성하길 바랐다.
이렇게 손글씨와 자연스러운 물성에 집착한 것은, 디지털 시대에 더욱 소중해진 아날로그적 감성과 정성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완벽함보다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불완전함이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휴먼터치(Human Touch)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블렌디드 러닝 플랫폼을 추구하는 설탭의 리브랜딩과도 일맥상통하는 전략이다.
'고급스러움'을 추구한 것은 단순한 있어빌리티(있어 보이려는 시도)가 아닌, 소중한 선물을 받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였다. 해변의 모래사장에 놓인 유리병이 연상되도록 박스의 컬러와 크기, 지류를 신중하게 선택했고, 명품을 포장하듯 고급스러운 더스트백에 한 번 더 포장했다.
*지류 선택: 밝은 백사장의 컬러감을 가지고 있고 두께감이 있는 친환경 지류인 E보드를 선택했다.
*더스트백: 고급스러움을 위해 그레이 컬러의 더스트백을 제작했다.
택배 박스에는 특별히 '학생이 직접 열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는 스티커를 부착했다. 이는 단순한 스티커가 아닌, 이 선물의 주인공이 바로 당신이라는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작은 메시지였다.
'고급스러움'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과하지 않음'이었다. 화려한 장식이나 특별한 가공이 아닌, 재료 본연의 물성과 정제된 디테일로 품격을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해변의 모래사장에 놓인 유리병이 연상되도록 박스에 배치하는 레이아웃과 사이즈를 스케치하는 과정은 수십 번의 시도와 실패를 거쳤다.
패키지 디자인의 각 요소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택배 박스의 '학생이 직접 열어주세요' 스티커는 이야기의 시작을, 더스트백은 기대감 어린 중간 단락을, 그리고 마지막 유리병은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를 담당한다.
프로젝트 이후 우리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럭키펜을 받은 수험생들이 선생님께 보내온 감동의 메시지들. 그들의 진심 어린 피드백은 다시 우리에게 감동으로 돌아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한 학생의 메시지였다.
요즘 힘들었는데
이거 보자마자 감동받아서 울었어요.
이런 피드백만큼 우리를 기쁘게 할 말이 또 있을까.
이번 럭키펜 캠페인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때에 따라서 브랜드를 감추는 것이 브랜드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과감히 설탭이라는 브랜드의 존재감을 지웠고, 대신 수험생을 향한 진심을 전면에 내세웠다. 우리가 집중한 것은 브랜드의 표현이 아닌,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주인공이 되었을 때, 설탭이라는 브랜드는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기억될 수 있었다.
최근 읽은 책 <또 하나의 호빵맨 이야기>에서 발견한 문구가 이 프로젝트의 본질을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어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낄까. 오랜 시간 고민해 왔습니다. 그리고 결국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란 다른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실로 단순한 이치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걸
가장 기뻐합니다.
럭키펜 캠페인의 감동을 담은 필름 영상은 (유튜브 링크)에서 볼 수 있다.
럭키펜 캠페인 풀 스토리는 여기(설탭 블로그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럭키펜 그 후 학생과 선생님의 사연은 여기(설탭 블로그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