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아티스트로 킨텍스에서 첫 전시를 했던 날
1년이 조금 넘은 시간이 지났다. '작가'라는 어색하기만 한 호칭을 달게 된 지.
그날의 설렘이 아직도 피부에 남아있는 것 같다.
2024년 10월, 킨텍스. 2024 대한민국 첨단기술대전 - THE AI SHOW에서 열린 'Originated from HI X AI' 전시에 참가했던 날이다.
20명의 AI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나는 처음으로 내 작품을 세상에 내보였다.
'고통의 소비학'과 '스페셜 특집'. 두 점의 작품을 떨리는 손으로 이젤에 올려두었고,
괜스레 뿌듯해서 별 차이 없는 구도임에도 몇 번이나 셔터를 눌렀는지 모른다.
목에 건 아티스트라는 명찰이 괜히 어색해서 자꾸만 만지작 거렸다.
맙소사.
내 작품 앞에 낯선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내가 만든 작품을 들여다보는 타인의 눈동자들.
그 시선 속에 어떤 생각들이 담겨있을지 혼자 상상하며 심장이 조금씩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떨렸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다.
머릿속 한편에서 나를 불안하게 하는 목소리가 계속 끼어들었다.
"네가 예술을 말할 자격이 있어?"
"프롬프트로 만든 걸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생각해 줄까?"
3년 전, 미드저니를 처음 만났을 때,
프롬프트 창에 문장 하나를 넣고 엔터를 눌렀고, 몇 초후 이미지가 피어올랐다.
내 머릿속에만 있던 것이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드디어 내 머릿속의 것을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는 시대가 왔어!
아, 이걸로 뭔가 할 수 있겠다.
예쁜 이미지는 세상에 넘쳐난다.
그리고 AI가 하루에 쏟아내는 그림의 양은 인간이 평생 그릴 수 있는 것보다 많다.
그런데 모두가 쏟아내는 AI 그림 속에서 내 그림이 가진 의미는 뭐지?
내가 작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을까?
작품을 만들 때마다 이 질문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박혔다.
전시를 앞둔 시점, 어떤 작품을 먼저 선보일지 고민하던 중. 과감히 방향을 틀었다.
내 작품 중 가장 예쁜 것 말고, 가장 불편한 것을 데뷔작으로 삼기로 했다.
나는 '인간 욕망의 페르소나'라는 주제로 몇 가지 작품들을 만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현대인의 시선에 집중했다.
이 주제에서 팝콘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게 된 이유다.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스크린 속 비극을 구경하는 것처럼,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안전한 거리에서 관람한다. 그 무감각을 화려한 팝아트 색감으로 포장했다.
불편함을 예쁘게 만들어서, 더 불편하게 만들고 싶었다.
출품작 중 하나인 '고통의 소비학'.
자극적인 이야기일수록 더 많은 관심을 얻는 시대.
누군가의 비극이 가벼운 즐거움으로 포장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 장면을 몇 초만에 지나쳤는가.
'고통의 소비학'은 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얼마나 쉽게 씹고 삼키는가.
전시장에서 한 관객이 내 작품 앞을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이건 팝콘을 뱉는 거야? 먹는 거야?"
약간은 퉁명스럽기도, 비아냥거리는 것 같기도 했던 그 말이 나는 너무 기뻤다.
내 의도가 닿은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스페셜 특집(Prime Time Special), 2024'.
비극이 뉴스가 되고, 상처가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현시대를 담은 작품이다.
자극적인 사건일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고, 더 쉽게 잊힌다.
누군가의 아픔은 동정받기보다 특집으로 포장되어 소비된다. (접시에 예쁘게 담겨서)
그런데 여기서 완전한 가해자는 없다.
누군가에게 강제로 먹여지는 것 같기도, 스스로 삼키는 것 같기도, 뱉어내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한
독이 든 팝콘. 우리는 피해자가 될 수도 동시에 그것을 자초할 수도 있다.
그 경계 없는 불편함, 바로 그게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토크쇼에서 한 작가님이 말했다.
입문은 쉽지만 완성은 어렵습니다.
프롬프트만 넣으면 작품이 나온다는 건 오해예요.
그렇다.
AI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달고 뭔가 작품이랄 것을 만드는 과정은 직접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의도한 이미지 하나를 얻기 위해 수백 번 생성 버튼을 누르는 밤들을.
거의 다 왔다 싶으면 미세하게 어긋나는 결과물 앞에서 느끼는 절망을.
어쩌면 도예가의 심정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가마에서 꺼낸 도자기에 아주 작은 균열 하나를 발견했을 때, 과감히 깨뜨려버리는 그 마음.
거의 다 왔는데, 거의 완성인데, 그래도 아니라서 버리는 것.
수많은 실패를 겪어야 탄생하는 것.
그 수많은 깨뜨림 끝에 남은 하나를 세상에 내보이는 것.
의도와 우연 사이, 통제와 내려놓음 사이.
그 경계에서 탄생하는 것을 창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이것도 창작이 아닐까.
전시 현장에서 장웅조 홍익대 교수님의 말이 인상 깊게 남는다.
"맥락이 없어 보이는 것에 의미와 서사를 부여하는 행위, 그것이 인간 상상력의 본질입니다."
AI는 이미지를 생성한다.
그런데 거기에 왜, 무엇을 어떤 마음으로 담을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한동안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멈춰있던 시간 속에서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완벽함이 아니라 진정성이 먼저라는 것.
화려한 기술보다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어렵고, 더 가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아티스트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가?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답은 못 내리겠다.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것보다, 그 질문을 품고 계속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닌지.
나는 아티스트로서 여전히 불완전하다고 느끼며, 여전히 두렵다.
그런데 일단 첫 발을 내딛고 나니 알 것 같다. 그 두려움을 안고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AI 아티스트 엘리사.
2024년도 킨텍스의 이젤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작가라는 호칭을 갖게 됐다.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그런데 그 어색함이, 점점 나를 그런 사람으로(작가답도록) 만들어가고 있다.
작품 아카이브 인스타그램: @elissa.ki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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