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시즌2, 합격과 탈락을 가른 결정적 한 가지

의도 없는 창작은 들킨다

by 엘리사
출연자들이 탈락하는 순간은, 맛을 보기 전에 이미 정해져있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2가 연일 화제다. 화면 속 접시들은 요리라기보다 하나의 장면 같다. 셰프들은 재료를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사를 쌓는다. 소스 한 방울의 위치, 채소가 기울어진 각도, 고기 위에 올라간 허브의 방향까지. 맛을 넘어선 그 모든 것에 계산이 있고, 이유가 있다. 눈으로 먼저 먹고, 이야기를 씹고, 그 다음에 맛이 온다. 보는 맛, 듣는 맛, 읽는 맛. 접시 하나가 한 편의 짧은 소설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흑백요리사 시즌2에서 발견한 영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사진 넷플릭스



셰프 안성재는 묻는다.

의도가 뭐죠?

시즌1 때 밈처럼 퍼졌던 그 질문은, 시즌2에서도 여전히 날카롭게 살아있다.

그는 출연자에게 왜 이렇게 했느냐, 왜 이걸 만들었느냐고 묻는다. 당신은 이 접시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느냐고.


그 질문 앞에서 출연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어떤 셰프는 눈빛부터 다르다. 자신이 왜 이 재료를 골랐는지, 왜 이 방식을 택했는지, 물 흐르듯 말한다. 자신감은 디폴트다. 거침이 없다. 확신이 있다. 마치 그의 손과 머리와 접시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의도와 결과가 완벽히 싱크된 사람의 눈빛은 다르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안성재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싱크가 어긋난 요리에는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미션을 수행하기 급급했거나, 마감에 쫓겨 손이 먼저 움직였거나, 아이디어가 고갈된 채 억지로 채워 넣은 접시라거나. 본인이 안다. 이게 진짜 내 의도인지, 그냥 만들어낸 것인지. 찝찝함은 숨길 수 없다.


그리고 그건 화면 너머로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셰프 안성재는 그러한 작품 앞에서 아무리 맛있어도 탈락을 외침에 거침이 없었다.


진짜는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고, 그게 아닌 것은 아무리 설명해도 들키는 법이다.



의도는 어디서 오는 걸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의도는 결국 질문에서 온다. 내가 왜 이걸 만들고 싶은지. 이걸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그 질문에 먼저 답해야, 비로소 의도가 생긴다.


안성재가 셰프들에게 "의도가 뭐죠?"라고 물을 떄, 그건 단순한 심사가 아니다. 당신은 이 요리를 만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했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 질문 없이 만든 요리는, 아무리 맛있어도 어딘가 허전하다. 기억에 남지 않는다.


AI아트도 마찬가지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이미지를 뽑아내도, 그걸 주도한 사람이 "왜"를 묻지 않았다면, 그건 그냥 예쁜 출력물일 뿐이다.


흑백요리사 셰프들이 만드는 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접시 위에는 재료가 아니라 그 사람의 철학이 올라간다. 그래서 어떤 요리는 한 입에 그 사람이 읽힌다.


나도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

화려한 AI 기술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기교가 아니라 질문을. 트렌드가 아니라 관점을. 누군가 내 작업을 보고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AI 시대의 예술, 더이상 도구는 중요하지 않다.

AI든 붓이든 카메라든.

중요한 건 그 도구를 들기 전에, 내가 어떤 질문을 품었느냐가 아닐까.





AI 포토그라피 작품을 시도해보고자 스케치하던 시기에 작업했던 습작이 하나 떠오른다.

이 작품을 하나 올려두고 마무리하겠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질풍노도의 감정을, '청소년기'라는 시각적 메타포로 포착한 작품이다.



Messy Vibes - Edition 01
Messy Vibes - Edition 01, 2024, AI artist Elissa

혼란 속에서 건네고 싶은 말 - "엉망진창이어도 괜찮아 그냥 쉬어. 뭐 어때?"


삶의 어느 순간, 바닥에 널브러진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 방향을 잃은 생각. 그 한가운데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 오기도 한다.

이 작품에선 조금 다른 시선을 표현하고 싶었다.

어지러움 속에서도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는 눈. "그래서 뭐?" 라고 물으며 결코 표정만은 무너지지 않는 반항적인 청소년의 표정.


엉망인 채로 괜찮다고 말하는 것.

쉬어도 된다고 얘기해주는 것.

이 작업에서 말하고 싶었던 "긍정적 반항"이다.


가장 날것의 혼란과 반항이 공존하는 '청소년기'라는 메타포를 시각화하여, 누구에게나 필요한 자기 허용의 순간을 담았다.



*이 작품은 Midjourney로 생성한 작품입니다. 실제 인물이 아니며 연출된 이미지 입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