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삶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은행에서 일어나는 업무들은 본인확인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보통 고객이 오면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이 신분증이고, 직업 특성상 자연스럽게 수많은 사람들의 신분증을 보게 된다.
십중팔구는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가져오시는데, 재밌는 건 두 경우 모두 신분증에 있는 사진은 어림잡아도 10년, 많게는 20년 전 사진이라는 점이다. 특히 주민등록증의 경우에는 운전면허증과 달리 갱신기간이 없는 탓에 더 오래된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스무살 때 사진을 지금까지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 속에 청춘들은 하나같이 빛나고 있다. 내 눈앞에 앉아 있는 현실에 치인 얼굴들이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던 순간이 있었구나 새삼 깜짝깜짝 놀란다. 모두 총명한 눈빛과 건강한 피부, 윤기 나는 머리칼을 지니고 있다. 왠지 모를 기대감과 자신감도 비치는 것만 같다. 조용히 신분증을 내리고 앞에 앉은 고객과 마주하면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저마다 크기는 다르지만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머리카락의 색이 바뀌고, 주름이 늘고, 배가 나왔다. 저마다 현실에 이리저리 치이고 부딪치느라 여기저기 닳고 닳아 많이 지쳐 보인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 신분증 사진 사이에서 몇 초간의 짧은 시간여행을 하고 나면,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고 힘이 있는 순간이구나. 다시 한번 상기시키게 된다. 나아가 열심히 살자고 스스로 다짐을 하게 된다.
누군가가 술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다. 우리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자고. 나이는 오십, 사업을 실패해서 모든 걸 잃은 남자가 어느 날 눈을 감았다 떴는데 지금의 나로 돌아왔다고.
낡은 주민등록증에서 웃고 있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와 많이 닮았다.
나는 아버지의 삶을 배워가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나는 아버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