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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여행자 Aug 20. 2020

서운한 마음

(서운한 마음)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별한 지 오래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보니 가족과 친구들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 마음을 이해해주고 미리 알아서 배려해 주면 좋겠는데 가족도 친구도 그러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나도 그러한 불만이 있었기에 사람 마음이 다 똑같은가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 이해받고 더 배려받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사별 후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많은 위로와 적극적인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보았다. 수시로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어봐 주고, 식사를 같이해 주고, 주말을 같이 보내주고... 내가 보기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덜 힘들고 더 빠르게 사별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도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면 덜 슬프고 덜 외로울 텐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왔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나를 걱정하고 도와주려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나의 슬픔에 무관심해 보였다. 나의 괴로움과 아픔은 남이 도와줄 수는 없는 문제이니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 같았다.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는 것이 무척 섭섭했다. 반면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안부를 묻는 것은 오히려 짜증이 났다. 하루는 실제로 나와 별 친분이 없는 옛 친구가 안부 전화를 했는데, 전화조차 받기가 싫었다. 그 친구는 정말 내가 걱정이 되고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어서 전화를 했을까? 아니면 그냥 약간의 동정심의 발로였을까? 다음번에는 전화를 받지 않을 것 같다.


“잘 지내니?”라는 질문은 내가 아주 불편해하는 질문이다. 평소에 친구끼리 그냥 물어보는 상투적인 인사말이지만 나는 이 질문이 싫다. 예전과 같은 경우라면 그냥 잘 지낸다고 답하고 지나가면 되지만, 와이프를 잃고 나서도 ‘잘 지낸다’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잘 못 지낸다’고 답하면 구구절절 왜 그러한지를 설명해야 하니 더 짜증이 난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지내는 것이 잘 지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질문은 정말 그만 받고 싶다. 상대방은 별다른 생각 없이 묻는 질문이겠지만, 나는 마음이 상한다. 항상 그럭저럭 지낸다고 답변을 하지만 사실 어떻게 답변을 해주어야 할지 당황스럽다.


가족도 친구도 내 마음을 잘 몰라주니 사별자는 옛친구보다 새롭게 만난 사별자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역시도 사별을 경험한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위로를 받았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사별자끼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소통이 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고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서 좋다.


그런데 왜 훨씬 더 나를 잘 알고 나에 대해 더 많은 애정이 있을 가족이나 친했던 친구들과는 소통이 어렵고 섭섭한 마음마저 드는 것일까? 차분히 생각해 보니 물론 그들은 사별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그들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쌍히 여기는 말을 들으면 동정받기 싫다고 화가 나고, 위로의 말은 들으면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짜증이 나고... 실상은 상대가 어떻게 나와도 나는 만족하지 않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더구나 나는 배우자 사별이라는 인생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으니 나보다 나은 조건에 있는 친구들이 내심 부러워서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느끼는 이 서운한 감정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을 겪은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내 생각과 감정을 적극적으로 알려준 것도 아닌데,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다 알아서 이해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마음은 너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싶다. 만약 내 친구가 사별하게 된다면 사별 선배로서 나는 제대로 된 위로의 말을 해 주고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해 봐도 별로 그럴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만 서운해하기로 했다. 나도 가끔 내 감정이 이해가 잘 안 되는데 타인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아서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남의 이해와 도움을 기대하기보다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물론 적절한 도움이 손길이 있으면 고맙겠지만 없더라도 그것 때문에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운한 마음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아무런 이득을 주지 않는다. 인생은 원래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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