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디디아 Aug 20. 2020

눈물 젖은 행복

사별을 하게 되면 지인들에게 ‘잘 지내냐? 지금은 괜찮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나는  한동안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죽었는데 잘 지낼 리가 있겠나?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잘 지낸다고 말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잘 지내지 못해. 난 괜찮지 않아’라고 말하기는 더욱 싫었다. 사실 내가 괜찮은 건지 괜찮지 않은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공식적인 나는 아주 잘 지내는 듯 보이지만 나만 알고 있는 비공식적인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간간이 소식을 전해주어야 하는 가족과 지인들에겐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오늘 어떤 일이 있었고, 나는 어떤 생각을 했노라’고 하루의 일상을 되도록 솔직하게 쓴 글을 보내곤 했다. 내가 괜찮은지 아닌지는 글을 읽은 후 그들이 결정할 테니 내가 나를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어제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을 받고 잠시 멍해졌다.

 ‘행복’,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항상 소망하는 단어. 나는 내게 물었다.

“너는 지금 행복하니?” 선뜻 ‘YES’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너는 지금 불행하니?” 그 질문에도 'YES '라고 말하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한 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지금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해"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평균적 정의를 내릴 수 있을 만큼 나는 똑똑하지 못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행복한 순간들은 알고 있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연둣빛 새순이 돋은 봄 산과 낮게 핀  제비꽃과 노란 민들레에서 봄의 행복을 느낀다. 햇살이 반짝이는 호수를 보며 아름다운 벚꽃과 노란 개나리가 어우러진 길을 지날 때도 나는 행복하다. 아이들이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그간 있었던 일을 조잘대며 들려줄 때  딸의 연애담과 새내기 아들의 학교 적응기를 들으면서 솜사탕처럼 달콤한 행복을 느낀다. 허물없는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 삼겹살에 맥주 한잔을 들이켤 때도 행복하다. 초를 가득 꽂은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신이 난 듯 생일 축하송을 부를 때도 나는 행복했다. 세련된 동작은 아니지만 춤을 출 때도 행복하다. “난 여기만 와요”라고 생색을 내는 오래된 단골들과 웃음 진 수다를 주고받을 때,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들에게 강한 신뢰와 인정을 받을 때, 일상을 탈피해 여행을 떠나 낯선 길을 걸을 때도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누군가 나로 인해 행복해할 때 나는 더불어 행복하다.


남편이 떠난 후에도 여전히 내 삶은 사소한 행복들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엄마와 전보다 더 많은 일상을 공유하고, 친구들은 혹여 내가 외로울까 싶어 모임의 횟수를 늘렸다. 봄이 오면 꽃들이 경쟁하듯 피어나고, 연녹색 새순을 입은 산이 나를 유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지금 행복하니?”라는 질문에 나는 왜 바로 yes라고 말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것일까? 왜일까 생각해보니 그건 지금 나의 행복에 슬픔이 젖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떠난 후 누군가와 웃고 떠드는 사소한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엔 슬픔이 존재했다. 다시 찾아온 봄날의 꽃들은 더없이 아름답지만 마음이 시렸다. 여전히 산을 오르지만 남편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이 동행한다.

나는 다시 내게 물었다.

“슬픔 젖은 행복은 행복이 아닌가? 눈물 젖은 행복은 거짓 행복인가?”  

내 대답은 ‘아니! 그 또한 행복이지. 더 진한 행복이지, 묵직한 행복이지’다. 눈물 젖은 빵도 뱃속의 허기를 채운다. 진하고 묵직하게 배고픔을 채운다. 눈물 젖은 행복도 마음의 허기를 채운다. 진하고 묵직하게 시린 허기를 채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는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농담을 하곤 한다. 나는 이제 '눈물 젖은 행복을 모르는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자'라고 말하고 싶어 진다. 나는 눈물 젖은 행복을 아는 이들과 구부러진 길을 걸은 후 뜨거운 국밥에 붉은 깍두기를  올려주고 싶다.      


‘이 순간 또한 쉬이 지나가리니’라는 말은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행복할 때는 오만함을 잠재우기 위해서, 불행할 때는 견디기 위해서 이 말이 필요했다. 나는 그날 이후 이 순간들이 어서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이 말을 수없이 읊조렸다. 지금 나는 단연코 너무 행복해서 그 순간의 오만함을 잠재우려고 이 말을 읊조리는 날이 어서 다시 오길 소망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속히 지나길 바라는 ‘눈물 젖은 행복’의 시간들이 내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귀중한 시간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래서 빠르게 지나고 있는 상실의 시간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마주 보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야 알게 되는 엄마의 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