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나의 진심이 배반당하고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나의 선함이 이용당하고 나의 가진 것 없음이 무시당하는 날. 살다 보면 그런 날들은 반드시 우리 눈앞에 닥쳐온다. 오늘이 내겐 그런 날이었다. 이유 따윈 없다는 박노해 님의 말에 눈물과 함께 조용히 고개를 떨군다. 맞다. 그 모든 억울함에 이유 따윈 없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연습도 없이 무작정 출발한 항해와 같다. 어떤 날은 날카로운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고 깨지고 어떤 날은 미풍에 유유히 떠가기도 하면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이 살아간다. 폭풍우 치는 날에도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이유 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유를 찾기 위해 노상 밤잠을 설치곤 한다. 나에게 이런 일이 왜 생겼을까? 도대체 왜 내게 이러는 걸까? 하며 혼자서 수만 가지 이유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짝이 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을 붙잡고 언젠가는 완성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채 이리저리 끼워 맞추느라 끙끙 댄다. 오늘이 내겐 그런 날이었다. 나는 나에게 벌어진 억울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하나부터 열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가장 적합한 이유를 찾고 있었다. 이 시를 읽기 바로 직전까지도 머릿속은 온갖 그럴싸한 이유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유 따윈 없단다. 내가 그 이유를 찾으려 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갈 뿐이다. 생각을 많이 하면 이유의 개수도 한 가지씩 더 늘어난다. 그렇게 해서 수십 가지의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낸다 한들 내게 벌어진 일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이유를 안다 한들 내게 벌어진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살아야겠다.
'어찌할 수 없음'에 순명할 것
'어찌해야만 함'에 분투할 것
내게로 온 모든 상실, 고통, 배신, 좌절, 실패, 비난, 모욕, 무시 그 어떠한 것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면 순응해야만 한다. 뒤늦게 이유를 찾기 위해 매달리거나 받아들이지 못해 몸부림치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이유 따윈 몰라도 된다. 신은 공평하게도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은 삶'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