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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r 23. 2023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뭔데

박노해의 '이유 따윈'

원작  이혜민,  모작  무아



이유 따윈


박노해


나한테 왜 이러는데

도대체 이유가 뭔데


이 세상엔

이유 따윈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저 감내하고 감당해야 하는

그것이 인생이다


이 세상엔

이유 없는 고통이 아주 많다


인생은 연습도 없이 던져졌고

불운은 예고도 없이 기습한다


돌아보면 내 인생은

일종의 사고였다


정직하게 노력한 만큼 된 건 하나도 없고

그럼에도 의미를 찾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러니 이유 따윈 그만 묻고

이렇게라도 하자고 했다


'어찌할 수 없음'에 순명할 것

'어찌해야만 함'에 분투할 것


난 이유 따윈 몰라도

사랑하고 상처받고

다시 죽도록 사랑할 테니




그런 날이 있다. 나의 진심이 배반당하고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나의 선함이 이용당하고 나의 가진 것 없음이 무시당하는 날. 살다 보면 그런 날들은 반드시 우리 눈앞에 닥쳐온다. 오늘이 내겐 그런 날이었다. 이유 따윈 없다는 박노해 님의 말에 눈물과 함께 조용히 고개를 떨군다. 맞다. 그 모든 억울함에 이유 따윈 없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연습도 없이 무작정 출발한 항해와 같다. 어떤 날은 날카로운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고 깨지고 어떤 날은 미풍에 유유히 떠가기도 하면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이 살아간다. 폭풍우 치는 날에도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이유 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유를 찾기 위해 노상 밤잠을 설치곤 한다. 나에게 이런 일이 왜 생겼을까? 도대체 왜 내게 이러는 걸까? 하며 혼자서 수만 가지 이유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짝이 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을 붙잡고 언젠가는 완성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채 이리저리 끼워 맞추느라 끙끙 댄다. 오늘이 내겐 그런 날이었다. 나는 나에게 벌어진 억울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하나부터 열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가장 적합한 이유를 찾고 있었다. 이 시를 읽기 바로 직전까지도 머릿속은 온갖 그럴싸한 이유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유 따윈 없단다. 내가 그 이유를 찾으려 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갈 뿐이다. 생각을 많이 하면 이유의 개수도 한 가지씩 더 늘어난다. 그렇게 해서 수십 가지의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낸다 한들 내게 벌어진 일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이유를 안다 한들 내게 벌어진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살아야겠다.


'어찌할 수 없음'에 순명할 것

'어찌해야만 함'에 분투할 것


내게로 온 모든 상실, 고통, 배신, 좌절, 실패, 비난, 모욕, 무시 그 어떠한 것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면 순응해야만 한다. 뒤늦게 이유를 찾기 위해 매달리거나 받아들이지 못해 몸부림치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이유 따윈 몰라도 된다. 신은 공평하게도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은 삶'을 주었다.  


나는 오늘의 이유를 더 이상 묻지 않겠다.

어찌할 수 있는 내일의 일에 고군분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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