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남지 못하는 자가 될 수 있지

by 소위 김하진

흐릿한 새벽빛이 방안으로 점점이 스며들 무렵 너는 앉은 채로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 재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알코올 냄새가 재이가 누워 있던 자리에 방농했다. 서둘러 출근을 했다. 회사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권태롭고 무심한 눈빛들이 각자의 자리에 못이 되어 박혀 있을 뿐이었다. 너의 기척이 누구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걸어 들어갔다. 일부러 재이의 자리 근처로 빙 돌아갔다. 재이의 뒤통수가 다림질한 듯 반듯해 보였다. 옷차림도 어제와 달랐다. 혼몽을 말끔히 지워낸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며칠 후 사장은 전보다 살이 잔뜩 내린 얼굴로 복귀했다. 홀쭉해진 사장은 얼핏 보면 이 대리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보여 섬뜩했다. 기름을 발라놓은 듯 번질거리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얼굴 가득 허연 마른버짐이 피어 거칠거칠해져 있었다. 도무지 예전의 사장 같지가 않았다. 부모를 일찍 여읜 사장은 어려서부터 동생인 이 대리와 단둘이 살아왔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 대리가 황망히 떠난 후 큰 충격을 받은 사장이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이 대리가 죽으면서 자기 영혼을 형의 몸에 덮어씌우고 간 거 아니냐며 오싹한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이 대리가 없는 회사는 생각보다 빨리 위기에 봉착했다. 사장은 경영의 상당 부분을 꼼꼼하고 두뇌 회전이 빠른 이 대리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 대리 후임으로 들어온 직원은 본인에게 주어진 일을 쳐내기에도 급급할 지경이었다. 말만 앞서는 사장의 빈 구석을 티 나지 않게 채워 주던 건 동생인 이 대리였다. 이제 사장의 뒤를 세심하게 봐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회사의 경영난은 암세포처럼 직원들 사이에 불안을 키웠다. 그만두는 사람의 속도를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따라가지 못했다. 여기저기 업무에 공백이 생겼고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남은 직원들이 무리하게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한계에 달한 직원들이 한 명씩 탈출하듯이 회사를 떠났다. 너 역시 연일 계속되는 야근에 시달리다 급기야 몸에 탈이 나고 말았다.


사무실 바닥에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던 날, 마지막으로 본 건 재이의 눈동자였다. 재이는 너에게로 달려와 괜찮냐면서 쇳소리 같은 고함을 질러댔다. 시끄럽게 귓전을 때리던 재이의 목소리가 모기처럼 윙윙거리더니 어느새 하얗게 멀어져 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본 것도 재이의 눈동자였다. 잘 익은 머루알처럼 검붉은 눈동자가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당혹스러워하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몸뚱이가 말을 듣지 않았다. 재이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면서 일어나려는 너의 어깨를 가만히 눌러 다시 눕혔다. 이럴 때라도 좀 쉬어요. 평소와 달리 단호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너는 안절부절못했다. 너마저 자리를 비우면 회사는 더 엉망이 될 게 분명했다.


병원에서는 일주일 정도의 입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간 무리한 탓인지 빈혈이 심했고 염증 수치도 높아서 몇 가지 추가 검사를 더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밀린 업무들을 떠올리면서 당장에 퇴원하려고 했다. 그러자 재이가 나서서 꼼짝도 못 하게 막았다. 보호자를 자처하며 매일같이 병원에 찾아왔고 혹시라도 퇴원해 버릴까 봐 감시했다.

“재이 씨, 매일 찾아오지 않아도 돼요.”

“대리님, 가족 없어요? 이렇게 아픈데 왜 아무도 와보질 않는 거죠?”

“엄마 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연락 안 했죠?”

“그게…….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필요가 있어야 알리나요? 그리고 그걸 왜 대리님이 결정해요?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별거 아닌 일에도 전화를 걸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무턱대고 내 편을 들어주고 내 말을 믿어주는 가족 말이에요. 근데 대리님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예요? 왜요?”


그래. 재이는 늘 ‘왜’를 묻는 사람이었지. 너는 힘들다거나 아프다거나 외롭다는 걸 누구한테도 말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에게는 더욱더. 엄마는 자신의 고통도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빠가 떠나고 오빠까지 죽고 나자 엄마는 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처럼 절망했다. 엄마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어린 딸이 여전히 곁에 살아 있는데도. 엄마가 몇 차례 자살 시도를 하고 정신병원을 오락가락하는 동안 너는 엄마에게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결론을 내렸다. 엄마는 너를 보면 사라져 버린 남자들을 떠올렸고 그건 오히려 엄마에게 독이 될 뿐이었다. 엄마는 금방이라도 질식해 버릴 것 같은 얼굴로 쉬지 않고 같은 말만 중얼거렸다. 아니야. 몰라……. 아니야.


너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를 이 세상에 살아 있게 하려면 네가 엄마 곁에서 사라져 주어야 했다. 집에서 멀리 있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엄마와 떨어져 살 수 있었다. 엄마는 가까운 곳에 사는 이모가 보살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주 가끔 전화를 걸거나 일 년에 한두 번 집에 찾아가는 게 전부였다. 엄마 쪽에서 먼저 연락해 오는 법도 없었다. 너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얇고 희미한 실을 손가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고 있을 뿐이었다. 천륜이란 올가미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으니까. 원망이나 억울함 같은 것도 품지 않았다. 들어주는 이 없는 목소리에 감정을 싣는다는 건 애초에 시간 낭비일 뿐이다. 우주에는 공기가 없어서 소리의 진동도 없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고 한다. 볼 수는 있지만 들을 수는 없는, 황막한 단절이 너와 엄마 사이에 놓여 있었다.


퇴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나가던 찰나에 들이닥친 이 대리의 죽음은 사장의 발목을 붙잡고 말았다.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갈 만큼 충성심 있는 직원들은 없었다. 사장은 십 년쯤 늙은 얼굴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너는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사무실을 정리하던 날, 서랍 깊숙이 넣어놓았던 사직서를 꺼냈다. 어찌나 오래되었던지 봉투의 색깔이 누르스름해졌고 모서리도 바짝 찌그러져 있었다. 사직서를 꺼내 보지도 않고 봉투째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너도 이 대리처럼 ‘남지 못하는 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절망스럽다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직도 희망이란 게 남아 있을까? 가슴이 뜨끔했다.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이직을 위한 그럴듯한 스펙도 갖추지 못했다. 연극판을 얼쩡거리는 동안 너는 대책 없이 나이만 들어 있었다. 이상하게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전화와 컴퓨터를 붙들고 씨름하는 일 말고는.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여기저기에 입사 지원서를 넣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이전보다 시간은 많아졌지만, 극단에 다시 나가기는 싫었다. 이제야말로 엑스트라가 아닌 주인공에 도전해 볼 수도 있을 텐데 이상하게 그럴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연극은 너에게 도대체 뭐였을까? 꿈이 아니었다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주변을 맴돌기만 했던 것일까? 문득 너는 원래‘왜?’를 고민하지 않던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느새 재이에게 전염되어 버린 것일까?


모래시계 안의 금빛 모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빠와 다비드가 동시에 떠올랐다. 다비드에게서 찾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아빠의 그림자 같은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낯선 의심이 뒷골을 타고 찌릿하게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너는 내내 갈망하고 동경하고 때로는 가까워질 수 없음에 증오하고 절망하면서 다비드에게서 아빠의 존재를 복기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말도 안 돼. 백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쓸데없는. 너는 모래시계를 구석으로 밀쳐두고 다시 구직 사이트로 눈을 돌렸다. 지원서 넣을 만한 곳들을 빠르게 스캔하기 시작했다. ‘경력 무관, 나이 제한 없음, 정규직.’ 그 세 가지 조건만 갖춘 곳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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