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 여자
최병창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표제작 「메타포, 여자」는 한 편의 서정시라기보다, 여성을 둘러싼 시대의 언어와 통념을 해부하는 짧고도 강렬한 철학적 선언에 가깝다. 2001년 충남 중도일보에 발표된 이 작품에서 ‘여자’는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메타포’, 곧 은유로 제시된다. 여자는 타고난 속성이라기보다, 사회가 오랜 시간 덧씌워온 의미와 기대, 규범의 집합체로 드러난다.
“여자야, 그대는 아득한 산을 올라보았는가.”
한국 시문학 전통에서 산은 인내와 침묵, 초월과 고독한 자존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시인은 묘한 역설을 던진다. “저 널럴하고 질펀한 산울림들은 다 알고 있는데 / 그대는 왜 아직도 모른 체 하고 있지.” 산은 멀고 높아 쉽게 오를 수 없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모든 소리를 품는 공간이다. 그 산으로 비유된 여성은 오히려 “모른 체” 하고 있다.
여기서 모른 체하는 이는 여자 개인이라기보다, 여자를 규정해 온 사회적 시선이다. 산보다 더 슬기로워야 한다는 요구, 꽃잎 영혼 같아야 한다는 주문은 찬사처럼 보이지만 실은 또 다른 족쇄다. 지혜로우면서도 부드러워야 한다는 이중 요구. 강인하되 상처받지 말라는 모순. 그것이 “변증 속설”로 각혈처럼 다가온다. 피를 토하듯 내면을 훼손하는 통념의 폭력이다.
20대 화장, 30대 분장, 40대 치장, 50대 환장, 60대 단장. 가볍게 흘러가는 언어유희 같지만, 이는 여성의 생애를 외양의 단계로만 환원해 온 사회적 프레임에 대한 신랄한 풍자다. 화장과 분장은 타인의 시선에 맞추는 전략이고, 치장은 생존의 기술이 된다. 환장과 단장은 과장된 어휘 속에서 생애의 피로와 균열을 드러낸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연출’을 요구받는 존재. 생애는 축적되는데, 평가는 늘 외면에 머문다.
이 시가 끝내 거부하는 것은 정의다. 여자를 산에 비유하는 일조차, 또 다른 규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메타포, 여자」는 묻는다. 우리는 왜 여성을 언제나 은유로 불러왔는가. 왜 한 존재를 찬사와 비유 속에 가두어 놓고도 그것을 존중이라 착각했는가.
여자는 산보다 슬기로워야 할 이유도, 꽃잎처럼 여려야 할 의무도 없다. 다만 은유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읽혀야 할 존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