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고물의 가치
오래된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고장나면 부품을 구하기 어렵고, 때로는 고칠 수 없는 수준이 되겠지만, 낡은 고물은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또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건 오랜 시간 세월의 때가 탄 것들만 할 수 있는 마법이다.
우리 집에는 오래된 전축이 있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카세트 테에프를 넣는 커다란 몸통부분과 상단에는 LP를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로 구성된 전축.
아빠는 젊을 때 잠자리 안경을 쓰고 기타를 치는 소위 말하는 '방구석 음악가'였다. LP 수집은 취미 중 하나였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초등학교때까지만해도 전축 옆에는 아바, 비틀즈, 이글스 등 팝가수들의 LP가 함께 꽂혀있었다.
어린 나는 '이렇게 큰 CD도 있구나. 신기하다'라고만 생각했지, 어떻게 듣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사하면서 엄마가 LP를 모두 내다버릴 때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버리면 절대 안된다'라고 사수했을텐데... 방 한 공간을 차지했던 전축도 LP를 모조리 버리던 날 같이 사라졌다.
성인이 되고, 회사원이 된 나는 가끔 LP바를 간다.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에 흘러나오는 옛날 노래들.
팝송이 흘러나올 때도 있고, 7080 쎄시봉 음악이 흘러나올 때도 있다.
그리고 어느 날, 홈쇼핑에서 빈티지 턴테이블을 판매하는 걸 봤다. '와, 저거다! 갖고 싶다'
턴테이블을 사고, LP도 모은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오는 날,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을 들으면서 휙휙 돌아가는 LP판을 바라본다면... 사고 싶어서 여러번 주저했지만 결국 구매하지 않았다.
무식하게 커다랗던 전축을 대신하기에 홈쇼핑 턴테이블은 너무나 세련됐고, 전축을 내다버릴 때 한번이라도 말리지 않았던 내 자신에게 약간의 배신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오래된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게 결론이다.
젊은 시절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구매한 전축과 LP, 아이가 태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구입한 카메라,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산 첫 자전거...
녹슬고 달아버린 것들이지만, 바라만 봐도 애틋함이 묻어난다.
그건 아마 그 때를 함께 보낸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떠올렸기 때문이겠지.
나 역시 언젠가 낡은 고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고장나면 대신할 부품 조차 구하기 힘든, 희소한 가치를 자랑하는 사람이 되겠지.
존재 자체로 빛을 발하고, 다른 무언가를 대신하는 일이 없기를. 그렇게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다.